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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유소에 취업해 다니고 있습니다. 일주일 후 주유소 주인이 사무실로 부르더니 "잘 읽어 보고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동네 주유소에 취업해 다니고 있습니다. 일주일 후 주유소 주인이 사무실로 부르더니 "잘 읽어 보고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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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유소에 취업해 다니고 있습니다. 일주일 후 주유소 주인이 사무실로 부르더니 "잘 읽어 보고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계속 다닐 생각이 있으면 서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유소 주인이 내민 근로계약서. 그냥 일반 공책에다 주인이 자필로 쓴 듯했습니다.

근로계약서라고 쓴 바로 아래부터 내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명, 주민번호, 주소를 쓰라고 그곳을 빈 공간으로 남겨두었습니다. 한 칸 아래엔 입사일자, 급여일자, 급여액, 급여통장번호를 쓰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급여는 입사한 날에서 일주일 후 지급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7월 13일 입사했으니까 일주일 후면 매월 20일이 월급날로 지정된 것이었습니다. 급여액도 정해두었는데요. 첫 달은 200만 원, 둘째 달부터 220만 원으로 미리 적혀 있었습니다.

그 아래는 근무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문항 또한 주유소 주인이 미리 적어두었습니다. 이어 휴일날도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근무시간은 07시부터 19시까지 또는 19시부터 07시까지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루 12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잡고 있었습니다.

근무시작 시간이 07시부터와 19시, 두 가지가 있는 거 보니 혹 가다 야간에 근무를 설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조항이었습니다. 제가 취업한 주유소는 24시간 365일 연중무휴 문을 연다고 했습니다.

오래된 종업원에게 알아보니 제가 일하는 게 손에 좀 익게 되면 야간 근무자가 일주일에 한 번 쉬는데 그날 야간 근무자 대체 근무자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휴일은 첫 달은 월 2회로, 둘째 달부터 월 4회로 지정해 두었습니다.

그 아래에 '수행업무'라는 조항에는 여러가지 할 일을 적어 두었습니다.

①유류배달 및 차량정비 ②주유 및 세차 ③주유소 청결유지 ④기타 주유소에서 지시하는 사항전부

다음으로 연락처를 적으라 했습니다. 이어 건강 상태에 대해 적으라 했습니다. 저는 "고혈압 약 복용, 다른 건 양호"라고 적었습니다.

마지막 조항으로 '기타'가 있었는데 제 입장에선 난감하게 여겨졌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①근무시간 철저 준수.
②유종구분 철저(주유자의 과실로 인한 혼유시 일체의 책임은 주유자에게 있음).
③퇴사시 45일 전에 서면으로 주유소에 통보하여야 하며 본항 위반시는 잔여급여액은 포기 하겠음.
④수습기간을 고려하여 3개월 미만 근무시는 전체급여(기 지급된분 포함)를 80%로 정산하여도 이의 없음.

그리고 입사한 날을 적고 아래 '위 약정자'라고 써놓고 제 이름을 쓰라 했습니다. 맨 아래엔 '○○주유소 귀하'라 되어 있었습니다.

<근로계약서>라는 것은 사용자와 종업원간 계약서로서 쌍방이 서로 협의하여 만드는 것이지 않나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임의로 작성하고 종업원에게 서명만 하라는 것은 합리적인 계약서라 할 수 없다고 여기지만 저는 주유소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당장 가족 생계를 위해 월급쟁이가 되어야 했으니까요.

2주간 경험한 주유소 일
길거리 무료 정보신문을 보고 찾은 직장이 주유소였습니다. '긴급 배달직원 모집'란을 보고 찾아 갔으나 아직 배달은 못 해보고 우선 기초부터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배달은 근처에 있는 기업에 필요한 유류를 유류 탱크 트럭에 싣고가 주유를 해주고 오는 일입니다. 일반 주유원은 월급이 160만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200만 원을 주는 것은 배달기사 일을 겸해야 하니 그렇게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지금 9개월 정도 된 종업원이 배달 일을 하는데 대기업에 쓰이는 건설 장비들이라 주유할 게 많아 보였습니다. 한번 주유 트럭을 몰고 나가면 길게는 두세 시간이나 걸려 돌아오곤 했습니다.

저는 초보로 들어갔으므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들어온 선배와 주유소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제가 취업한 주유소는 주유소와 세차장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고 가정집이 겸해 있었습니다. 부부가 공동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5시 일어나 씻고 밥먹습니다. 오전 6시경 버스타러 가서 주유소까지 갑니다. 06시 50분경까진 주유소에 도착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야 교대시 업무 인수인계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저는 도착하자마자 세차장 문을 열어야 합니다. 전기를 연결하고 자동세차 기계가 정상 작동되도록 조치를 취해 놓아야 합니다.

차량이 세차장 안으로 진입하면 세찬 물이 여러 곳에 설치된 수도를 통해 뿌려지고 특수 천으로 된 부품들이 돌면서 차량을 닦아 나갑니다. 세차용 물비누와 물왁스가 분사되면서 거품을 낸 후 다시 씻어 냅니다. 그 후 강력한 바람이 일자형 부품을 통해 나오면서 물을 밀어 냅니다. 차량이 나오면 마른 수건으로 남은 물기를 닦아냅니다. 저는 차량이 안정되게 진입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손님에게 중립과 브레이크를 밟지 말도록 부탁을 합니다. 차량이 나오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주는 일도 제가 하고 있습니다.

며칠에 한 번씩 물비누와 물왁스를 채워 넣어야 하고 세차실 안 카메라 유리를 닦아내고 바닥에 쌓인 흙먼지를 삽으로 떠서 모아 버려야 하는 일도 합니다.

새벽에 밥먹고 나와 바쁘게 뛰어 다니다 보면 오전 10시경. 배가고파 지지만 주유소 주인은 종업원에게 '참'을 주지 않았습니다.

낮 12시경. 먼저 오신 선배가 점심 때가 가까워오자 주유소 옆 구석으로 가더니 간이 식탁을 들고 왔습니다. 선배는 그 식탁을 손님이 잘 오지 않는 안쪽 주유기 옆에다 폈습니다. 잠시 후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탁자 곁으로 갔습니다. 음식점 배달원이었습니다. 그는 배달용 음식 통을 놓고 문을 열어 음식을 꺼냈습니다. 간단하게 빨리 먹을 수 있는 돈가스였습니다.

종업원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주유할 차량이 오나 안 오나 세차할 차량이 오나 안오나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느라 앞을 안보고 있다가 주유할 차량이나 세차하러 들어가는 차량이 있으면 사무실에서 당장 호출이 오기도 했습니다. 여주인이 소릴 질렀습니다.

"변 기사, 세차장 차량 들어가요."

그러면 저는 음식을 먹다말고 뛰어가서 손님이 몰고온 승용차의 세차 도우미를 해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주유소라도 그렇지 밥먹을 시간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세차장 문여는 것 외에 쓰레기통 비우기와 재활용 수거 분리하기, 화장실 물청소가 이어졌습니다. 기업체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무렵 많이 바쁘고 점심 전후로 일반 손님이 가끔 와서 조금 한가할 때면 주유소 여주인이 불러 일을 시켰습니다. 사무실 안 선풍기, 에어컨 청소와 가득찬 쓰레기 봉투 버려주기를 해주기도 합니다. 여주인은 가정 생활로 나온 쓰레기도 버리라고 저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그녀는 하루종일 사무실 안에 감시 카메라 모니터를 지켜 보면서 조금만 일을 더디게 해도 문을 열고 "변기사 뭐해. 빨리 가봐"라고 소리쳤습니다.

퇴근 무렵이 되면 다시 세차장 전기를 내리고 문을 닫고 하루 종일 차량 닦고 나온 수건을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하고 마감을 합니다. 우리 업소는 주유권과 상품권, 카드, 현금으로 주유를 계산합니다. 업자는 주유기로 빠져나간 휘발유와 경유를 일일이 주유기를 돌면서 기록하고 현금이 맞는지 확인합니다. 맞으면 각자 종업원은 출근부에 기록을 남기고 주유소 주인 부부에게 인사하고 퇴근합니다.

2주간 주유소 일을 경험해보니 이것저것 힘든거 같습니다. 더운데 주유소에 우두커니 있는것도 그렇고, 감시카메라를 사무실에서 지켜보며 종업원을 믿지 못하고 간섭하는것도 그렇고, 휘발유와 경유 냄새도 그렇고, 지나가는 차량에서 뿜어대는 매연도 그렇고, 점심시간도 별도로 없는 것도 그렇고... 이세상엔 쉬운일이 없는거 같습니다.  생계비 2백 벌기 참 힘드네요.



태그:#근로계약서, #종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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