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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흐를 만큼 맛있는 사과라는데 먹고는 싶지만 벌레와 잡초 천국에서 기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 책 표지 눈물이 흐를 만큼 맛있는 사과라는데 먹고는 싶지만 벌레와 잡초 천국에서 기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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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지만 그 논리를 구구절절 밝히려면 꽤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해서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앞으로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순간은 좀 뜬금없는 타이밍일 때가 많다. 상대가 듣기 좋은 소리라 해도 때를 잘못 맞추면 핀잔을 들을 텐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은 들어봤어도 낫 한 번 갈아보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농사짓겠다고 하면 당황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당황 뒤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는데 요약하자면 '낭만적인 꿈을 꾸나 본데 한가한 소리랑 하지 마라'다. 한결같다.

왜들 그럴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농촌의 미래를 어둡게 보기 떄문일 거다. 왜 아니겠는가. 몇 년에 한 번씩 외국과 FTA를 맺을 때마다 농업을 내주고 자동차를 얻지 않나. 최근에는 농사의 근간이라는 쌀에 대한 수입을 완전 개방하겠다고도 했다. 농촌 말살 정책을 편다고 단언은 못하더라도 정부가 농업을 장려하겠다고 팔 걷어붙인 상황이 아닌 건 확실하다. 그래서 요즘 같은 시대에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이제 윤택한 삶은 포기하고 생존 투쟁에 나서겠다는 선언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나 역시 확실한 상황 판단을 할 처지가 못 된다는 거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부모님의 제법 큰 텃밭농사를 일군 덕분에 가을에는 고구마를 부족함 없이 먹고 있으며 귀하디 귀한 국산 참기름을 아낌없이 듬뿍듬뿍 먹는 호사를 누리기는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텃밭을 가꾸는 것과 생계를 땅에 거는 것과는 딴판이라 부모님을 통해서나마 농업의 현실을 체험하기는 어렵다. 올해 내가 직접 주말농장을 가꿔보면서 농산물 가격이란 게 턱없이 싸다는 실감을 했지만 그것만으로 농촌의 현실을 알았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농촌에 사람이 살아 가고 있지 않느냐. 농촌에 아이 울음소리 끊긴지 오래라지만 귀농하는 젊은 사람들도 분명 있지 않느냐.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농촌 생존의 비법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만 안다면 농촌 서바이벌 해 볼만한 거 아닐까?

일본에서 자연농법으로 10년 가까운 고초 끝에 사과를 길러낸 기무라 아키노리의 유명한 실화라지만 <기적의 사과>는 결코 농촌 생존의 비법서는 되지 못했다. 우리와 환경이 다른 일본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태도가 이미 경외와 추앙에 가깝기에 실전의 지식을 전해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분히 감상적이다.

다만 확실해지는 건 있다. 농촌도 생존이라는 문제를 푸는 데에는 도시와 마찬가지로 지옥이며 전쟁터이기는 매한가지라는 사실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싱싱한 야채를 먹는달 뿐 원래의 계획이 틀어지고 평균보다 큰 꿈을 꾸다가는 인생 비참해지기 쉽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가족에게까지 외면당한다. 그 와중에도 남에게 굽실거리는 걸 생활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도 못한다.

확실히 내가 꿈꾸었던 농촌 생활에는 <기적의 사과>가 맺힌 후에 기무라 아키노리가 주목받았던 영광은 있지만 그가 견뎌내고 버틴 뚝심이나 기술은 빠져 있다. 그런 점에서 내 계획은 수정되어야 한다. 낭만은 걷어내고 생존의 엄중함을 더 고려해야 한다. 그 답을 얻지 못한다면 계획은 언제까지고 계획에 머물러 있는 게 여러모로 좋겠다. 그 만큼 이 시대의 농촌은 도시인이 살기에 살벌한 곳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저자 이시카와 다쿠지|역자 이영미|김영사 |2009.07.17|1만 1000원



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김영사(2009)


태그:#기적의사과, #농촌,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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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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