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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 숲에서 우주를 보다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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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란 밀교(密敎)에서 발달한 불화의 하나로 여러 상징을 통해 우주 법계(法界)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眞髓)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우주의 법칙을 한 장의 그림에 나타내다보니 자연스레 우주의 핵심과 합일하려는 수행자들이 깨달음의 안내도로 삼았다. 그러나 단 한 장의 그림으로부터 우주의 법칙을 탐구하는 만다라는 극히 작은 것으로부터 우주를 탐구하는 여러 문화권의 다양한 수행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 따르면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시 '순수의 예언'에서 '한 톨의 흙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리라'고 적었으며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 요한네스, 노리치의 성녀 율리아누스 등에게는 동굴과 지하감옥과 개암이 나름의 만다라였다. <뉴욕타임스>에 의해 '생물학자처럼 생각하고 시인처럼 쓴다'는 찬사를 받은 지은이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에겐 테네시주 남동부의 오래된 숲 속 1제곱미터의 땅이 만다라였다.

돋보기로 만다라를 관찰하는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 숲에서 우주를 보다 돋보기로 만다라를 관찰하는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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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숲에서 뻗어나간 커다란 생각들

​미국 시워니대 생물학과의 교수로 일하는 저자는 시워니대 소유의 숲 가운데 1제곱미터의 땅에 '만다라'라는 이름을 붙이고 틈나는 대로 이곳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만다라 안에서 어떠한 인위적인 행위도 배제한 채 오직 한 해 동안 벌어지는 자연의 순환을 깊이 관찰하고 사색하며 기록했다.

커다란 히코리나무부터 땅 속 작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만다라 안 모든 생명이 그의 관찰의 대상이 되었다. 생명의 탄생과 생장, 죽음의 순간들이 저자의 깊은 지식과 상상력을 만나면 좁은 숲을 벗어나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변하고는 하였다. 정말 만다라는 그를 우주로 이끈 것일까?

'어떤 생물학자는 균류가 조류를 덫에 빠뜨려 착취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해석은 지의류의 구성원이 개체이기를 포기하고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음을 간과한 것이다. 사과나무와 옥수수 밭을 돌보는 농부처럼, 지의류는 생명의 혼합물이다. 개별성이 사라지면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득점표도 의미가 없다. 옥수수가 피억압자일까? 농부가 옥수수에 의존하면 옥수수의 희생자인 것일까?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 구분을 가정한 질문이다.

인간의 심장일까?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 구분을 가정한 질문이다. 인간의 심장박동과 작물의 개화는 하나의 생명 활동이다. '혼자'를 선택할 수는 없다. 농부의 생리 구조는 식물을 식량으로 삼도록 형성되었으며 이는 벌레를 닮은 최초의 동물이 등장한 수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물은 인간과 더불어 산 기간이 1만 년밖에 안 되지만, 그 사이에 자신의 독립성을 포기했다. 지의류는 진화의 손길에 의해 몸을 섞고 세포막을 엮음으로써 이러한 상호 의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옥수숫대와 농부가 한 몸이 된 격이다.'

첫 장에서 균류와 조류가 결합한 지의류를 보며 농부와 작물의 관계까지 사고를 확장하는 저자의 통찰력은 만다라에서의 한 해가 지난 후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확인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만다라에서의 1년은 그에게 우주적 깨달음을 주지 못했지만 그를 당연하지만 쉽게 무시되곤 하는 자연의 진실로 이끌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식물과 동물, 온갖 균류와 곤충 등을 아우르는 저자의 박식한 지식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 주변의 익숙한 자연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 있다. 익숙하지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자연이 실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진실은 이 책이 전하는 가장 크고 간절한 메시지다.

'나는 숲에서 불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깨달으니 외롭다. 내가 숲과 무관한 존재라는 사실이 아프다. 인류 문화와 땅의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기기 일보 직전이다. 초등학생들에게 기업 상표 20개와 우리 주변의 흔한 생물 20종을 맞혀 보라고 했더니 기업 상표는 대부분 맞혔는데, 생물 종은 거의 못 맞혔다. 난 숲을 관찰함으로써 나 자신을 더욱 뚜렷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과 우리를 연결하는 고리는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감자와 고구마가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았다는 요즘 아이들의 대답은 우리사회와 자연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아이들은 숲과 자연보다 도시와 기계에 더욱 친숙하며 더이상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는 자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자연을 어떻게 대하게 될지,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 인간은 또 어떤 잘못들을 저지르게 될지 우리는 저자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작은 책이 남긴 간절하고도 중요한 메시지다.

덧붙이는 글 | <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씀 |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4.7. | 2만원)



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2014)


태그:#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노승영, #에이도스,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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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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