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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두산동 단군성전을 찾은 참배객이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있다.
 대구 수성구 두산동 단군성전을 찾은 참배객이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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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이래 농경 기술이 발달하자 좋은 땅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기기 위해 지혜를 짜내었고, 마침내 돌무기보다 훨씬 센 청동무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청동칼을 보유한 부족은 전쟁을 일으켰다. 청동 무기를 휘둘러, 돌도끼를 들고 저항하는 다른 종족으로부터 먹을거리와 보물을 빼앗았다. 전쟁에서 이긴 종족은 자신들이 하늘(天)에서 내려왔다(降)고 자처했다. 그들은 진 종족을 지배하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통치 철학을 내세웠다. (이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하늘에서 왔노라'는 논리였다.

물론 그들이 천강족(天降族)을 자처한 것은 당대가 농경사회였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 먹고살았던, 즉 경제가 비, 바람, 햇빛, 우박, 눈 등에 좌우되던 시대의,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청동무기를 들고 갑자기 나타나 천강족을 자처하는 낯선 종족들은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낼 수 없는 무서운 자들이었다. 그래서 단군신화에도 하느님(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은 구름(雲)을 다스리는 운사(雲師), 비(雨)를 다스리는 우사(雨師), 바람(風)을 다스리는 풍백(風伯)을 거느리고 땅으로 내려온다. (강화도를 제외하면 남한에는 단군 유적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찾을 맞한 곳은 대구 수성구 두산동의 단군성전이다.)
 
경북 군위 인각사

일연 스님 초상(인각사 박물관 게시화를 찍은 사진)
 일연 스님 초상(인각사 박물관 게시화를 찍은 사진)
ⓒ 인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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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 단군신화를 싣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건국 신화도 없는 민족이 될 뻔했다. 일연스님은 단군신화를 <삼국유사>의 첫머리에 올림으로써 민족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일연스님은 청도 운문사, 달성 인흥사 등 대구경북 소재 사찰에서 삼국유사를 구상하고 집필했다. 특히 보각국사(일연)정조지탑 및 비명(보물 428호), 석불좌상(유형문화재 339호), 미륵당 석불좌상(문화재자료 426호), 삼층석탑(문화재자료 427호) 등이 있는 군위 인각사는 일연스님이 81세 때 삼국유사 집필을 마친 곳이다. 스님이 책 집필을 시작한 때는 72세였다. 일연스님의 사례는 우리에게 용맹전진하는 성실한 사람의 전형을 잘 말해준다.


대구 두산동 단군성전, 군위 인각사를 둘러보고

단군, 주몽, 김수로, 박혁거세 등 고대의 건국 군주들은 모두 천강(天降)족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박혁거세 탄생 신화는, 박혁거세만이 아니라 6부의 조상들도 '모두 하늘天에서 내려온(降) 것 같다(似皆從天而降)'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박혁거세의 나정 출현 이전부터 경주 일대에 살았던 6부 사람들도 이곳의 원주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삼국사기는 이들을 '조선 유민'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조선 멸망 전후에 한강 이남으로 내려온 고조선 사람들은 철기인들이었다. 그들의 전투력은, 당시 남반부 원주민들이 볼 때 핵무기를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청동 무기를 가졌던 것으로 여겨지는 원주민들은 철제 무기로 무장한 채 외지에서 몰려온 6부 조상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으로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경주 양산재. 나정 뒤편에 있다. 박혁거세 출현 이전에 신라를 다스렸던 6부 조상들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경주 양산재. 나정 뒤편에 있다. 박혁거세 출현 이전에 신라를 다스렸던 6부 조상들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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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경주 나정 뒤에 있는 양산재에서는 6부 시조들을 제사 지내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높은 하늘에서' 박혁거세가 내려오자 6부 촌장들은 그를 '대장'으로 모시게 된다.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강력한 신무기로 무장한 외부 세력이 진입하게 마련인 고대 사회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경주 나정, 알영정, 양산재, 표암도 천강족 유적

청동기 시대에는 부족끼리만이 아니라 동일 부족 안에서도 높낮이가 생겨났다. 가장 많이 가지는 족장(族長), 많이 가지는 족장 주위 세력, 그리고 적게 가지는 자들로 구분되었다. 청동 무기는 인류 사회에 차별을 낳았던 것이다. 이제 함께 일하고 골고루 나눠먹던 원시(공동체)사회는 석기 시대로 끝나고, 청동기 때부터는 사유(私有)재산이 있는 계급 사회로 바뀌었다.

경주이씨의 조상 알평공이 하늘에서 처음 내려온 곳으로 여겨지는 경주 소금강산 표암(경상북도 기념물 54호)으로, 탈해왕릉 옆에 있다.
 경주이씨의 조상 알평공이 하늘에서 처음 내려온 곳으로 여겨지는 경주 소금강산 표암(경상북도 기념물 54호)으로, 탈해왕릉 옆에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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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혁거세 강림지를 나정이라 합니다(탑동 700-1번지). 그의 부인 알영이 온 곳은 알영정으로, 오릉 담장 안에 있습니다(탑동 77번지). 박혁거세 강림 이전에 신라를 통치했던 6부 조상들을 제사지내는 곳이 양산재로, 나정 바로 뒤편에 있습니다. 경주이씨의 조상 알평공이 처음 출현한 곳을 표암이라 하며, 동천동 507-7번지에 있습니다. 표암이 있는 곳을 소금강산이라 하는데, 아주 옛날에는 이 산이 사시사철 아름다워 마치 금강산과 같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소금강산을 찾으면 먼저 이차돈의 목이 날아가 떨어졌다는 백률사, 그 아래 굴불사터의 사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석조 사면불상(보물 121호)을 꼭 보아야겠습니다.



태그:#단군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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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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