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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동안 준비했던 작품을 내고 24년만에 졸업을 했다. 마지막 하나 남았던 곳의 초대작가가 되고 난 뒤부터 난 밀린 일들을 하나씩 하고, 턱을 내기 위해 지인들도 만나고 있다.또 오래 방치했던 창고와 작업실 구석구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딸과 <혹성탈출>을 보았다.

유인원이 나오는 영화라고 해서 처음엔 좀 내키지 않았지만, 유인원치고는 형형하게 살이있는 깊은 눈빛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자막이 나와 스토리와 대사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를 다 본 뒤 딸에게 "오랫만에 보는 영화인데 썩 괜찮다"며 "함께 영화보자고 해서 고맙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이번 주엔 <군도>를 보았다. 역사물을 좋아하지 않는 딸은 처음부터 안 보겠다고 했기 때문에 친구에게 연락을 해 같이 봤다. 친구는 자막이 없는 영화라면서 날 걱정했지만, 난 역사물을 워낙 좋아하는데다 하정우의 팬이라 괜찮다고 했다.

난 쉰 살이 훨씬 넘었지만,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본다. 팬카페 이런 곳에 가입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하정우가 단순한 영화인이 아닌 영혼이 펄펄 살아있는 예술가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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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는 전반적으로 음울한 장면이 많았다. 친구는 시작할 때 내레이션을 내가 못 들으니 "철종시대래" 라고 소근거렸고 중반 즈음에는 "홍길동의 후예들이래"라고도 해주었다. 대사를 전혀 못들었지만 영화를 보는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오랫만에 보는 강동원의 미색은 여자뺨치고 때론 귀기까지 느껴져 무섭기까지 했다. 많은 이들이 강동원의 존재감에 하정우기 묻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봤을 때 여전히 하정우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가끔은 홍콩의 성룡같은 그러한 코믹한 오버액션이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하정우니깐 넘어갈 수 있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버랩시켰다. 그리고 대사를 듣지 않아도 귀공자가  왜 이렇게  권력과 손잡고 백성을 괴롭히는 인물이 되었는지, 그리고 백정은 왜 복수의 화신이 되었으며, 백성들은 왜 홍길동의후예가 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조연들의 연기들은 정말 발군이었다. 영상이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백성들이 뭉쳐서 나쁜 사람들을 단죄하고 홀홀히 들판을 다시 달리며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마무리가 마음에 들었다. 백성들이 너도 나도 호미와 낫과 곡괭이를 들고 나쁜사람들을 향해 무리지어 향할 때 나는 그 사람들 중의 하나인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너무나 큰 고통을 안고 잠도 못 자면서 폭염과 비바람 속에서도 함께 뭉쳐서 진실에 접하고 싶어하는 우리 국민들과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여러 집단들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막이 있고 여러가지  액션과 영상이 걸출한 <혹성탈출>보다 <군도>가 내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역시 하정우는 멍청하기도, 성룡같이 오버액션이 코믹하기도 하고, 집념에 불타는 불세출의 담대한 남성미를 모두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하정우는 멋지고 강동원은 매력이 있었다. <군도>는 알고 있는 영화이론과 논리를 모두 버리고 텅빈 머리 속으로 본다면 그다지 음울하지도 복잡다단하지 않는 그냥 한 여름날 재미있는 영화이다. 청각장애인이 보기에도 무방할 정도로.

그래도 개봉되는 모든 한국영화는 자막이 붙어서 개봉이 되기를 간절히 오늘도 희망한다. 왜냐하면 이 땅의 청각장애인들이 모두 나처럼 눈치코치로 사는 것이 아니고 자막없는 영화를 보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자막이 있다면 더 행복하게 영화를 볼 것이므로.


태그:#군도 영화 소감, #청각장애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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