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치학을 전공한 정상호 서원대 교수가 '연합정치'의 측면에서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노회찬 정의당 후보의 단일화를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정 교수는 두 후보의 단일화는 "보수독점의 정치지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교정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이다"라고 진단했다. [편집자말]
서울 동작을 정의당 노회찬 후보(오른쪽)가 24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선거사무소에서 이날 후보직을 사퇴하고 방문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서울 동작을 정의당 노회찬 후보(오른쪽)가 24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선거사무소에서 이날 후보직을 사퇴하고 방문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식상한 얘기지만 연합정부와 연합정치는 정치학의 영역에서 항구적인 선악의 판단 기준이 아닌 득표 극대화와 정부 구성을 위한 전략적 개념이다. 고문과 위협, 회유와 매수에 의한 불법적 방법이 아니고, 관련법과 정당의 규율 안에서 이루어진 자발적이고 공개적인 결정이라면 하등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한때 아이들 도서로서 정글과 북극 등 '∼에서 살아남기 시리즈'가 대유행 한 적이 있었다. 극한 모험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익한 정보와 재미를 선사함으로써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생들에게는 아직도 과학·역사만화의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필자는 보수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에서 연합정치는 야권이 생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략이라 생각한다. 빗대어 말하자면, 일여다야(一與多野)의 혹한의 정당체제 하에서 연합정치는 야당으로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남기'인 셈이다.

남경필-원희룡의 연합정치 행보

6·4 지방선거 이후 인수위 구성에서 지방정부 출범까지의 과정에서 세간의 최대 주목을 받은 정치인을 뽑으라면 주저 없이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를 선택할 것이다. 두 사람은 선거 승리 직후 사전에 약속이나 한 듯이 연합정치라는 공동의 행보를 걷고 있다.

선거 승리 직후 닷새 만에 원희룡 지사는 낙선한 새정련의 신구범 후보에게 지사직 인수위원장을 제안(6월 8일)하였고, 야당내부의 논란과 일부 여론의 반대가 있었지만 신구범 후보가 '새도정준비위원회'의 위원장직을 수락(6월11일)하면서 제주발 연합정치의 실험이 가동되었다.

남경필 지사 역시 당선 직후 기자회견(6월 8일)을 통해 '사회통합부지사'를 신설해 야당에게 적절한 인사를 추천해줄 것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야당의 추천 거부에 따라 지난 주(7월 17일)에 있었던 '경기도 민선 6기 부지사'의 인선은 유보되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통합부지사의 야당인사 추천은 연정의 핵심이기 때문에 추천이 늦어지더라도 어느 정도 참고 기다릴 것이며, 선임 지연에 따른 행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확고한 의견을 나타냈다. 나아가 그는 "연정은 시대정신이고, 긍정적 효과가 분명히 크다"면서 이를 지속 추진할 뜻임을 밝혔다(7월 18일).

한쪽은 선거 승리를 위해 후보 단일화를 선택하였고, 다른 한쪽은 도정의 원만한 성공을 위해 협치를 선택한 것일 뿐, 모두 연합정치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연합정치는 적대와 대립의 한국정치에서 정치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합리적인 방도이다. 왜냐하면 원로정치인 남재희의 지적대로 정치란 "기울어진 축(軸)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축을 바로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2월 21일, <프레시안>).

기동민과 노회찬의 단일화는 보수독점의 정치지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교정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이다. 남경필과 원희룡의 연합정치의 실험은 첨예한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단초를 풀뿌리로부터 제공하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실험이 더 발전적인 방향에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용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뒷받침할 제도화가 절실하다.

결선투표제 도입 등 제도개혁으로 이어져야

이미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선거일을 며칠 남기고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는, 후보사퇴를 통한 단일화는 실제 효과와 정치발전의 측면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보수언론들은 선거를 왜곡하는 "통진당 후보들의 수상한 사퇴"(<중앙>), "보조금 32억 챙기고 투표 직전 후보 사퇴"(<중앙>) 등의 사설을 통해 후보단일화를 야합으로 비판했다. 또한 막판 단일화 방식은 경기도와 부산에서 대량 무효표가 발생하는 후유증을 낳기도 했다.

이번 단일화를 계기로 두 당은 유권자의 정치적 선호의 다양성과 대표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나 결선투표제의 전격적 도입과 같은 통 큰 제도개혁과 정당개편의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남경필과 원희룡의 연합정치 역시 신사협정의 관행이나 립서비스가 아니라 대표성을 갖춘 참여자들 사이의 협상을 통해 공동의 가치와 지향을 담은 정책협약(policy pacts)을 체결·공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연합정치의 묘미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행위자들의 전략적 결단이 빛을 발한다는 점에 있다. 남경필과 원희룡의 지방 공동정부의 실험은 이명박과 박근혜의 불통식 중앙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이다. 노회찬의 '선민후당'의 결단과 기동민의 사즉생의 용단을 발화점으로, 김한길·안철수 지도부가 망쳐 놓았던 7·30 재보궐 선거의 구도가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젠, 노회찬의 몫이 남아 있다. 그것은 동작을 지역구에서의 승리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연합정치의 청사진 속에서 야권 재편, 대한민국 정치 혁신의 마중물 역할을 당당하게 선도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도 살고 진보도 산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상호 서원대 교수입니다.



태그:#노회찬, #기동민, #서울 동작을, #정상호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