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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엄마 때문에 놀러도 못 가고! 이게 뭐야!"
"올해도 애들이랑 나만 가야 해?"
"돈 몇 푼 주지도 않으면서 부려 먹기만 하는 그 놈의 회사 당장 때려 치워!"

유쾌하고 설레야 할 휴가철. 하지만 우리 회사 직원들은 매년 휴가철만 되면 가족들의 짜증에 마음만 더 상합니다. 남들은 맞벌이를 해도 '휴가를 맞춘다' '여행 계획을 짠다' 법석인데, 여름 휴가는커녕 평소보다 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름 휴가가 없으면 연차 휴가라도 며칠 써서 다녀오면 안 되냐고요? 휴가시즌이 '대목'이라며 매출을 올려야 하니 휴무도 잡지 말라는 회사 때문에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직원들은 자신의 연차를 써 겨우겨우 어중간한 휴가를 다녀오긴 합니다. 그것도 6월 말이나 8월 말쯤 1박2일로 말이지요. 하지만 휴가철 벗어난 시기라 휴가지에는 적막감이 흐릅니다. 아이들도 김만 빠져서 오기 일쑤입니다.

단 하루의 휴가도 없는 홈플러스, 휴가비도 '0원'

여름 휴가를 하루라도 가 보는게 소원이라는 홈플러스 비정규직원들. 사측은 지난해 단체교섭 당시 "대체 휴가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여름 휴가를 하루라도 가 보는게 소원이라는 홈플러스 비정규직원들. 사측은 지난해 단체교섭 당시 "대체 휴가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 홈플러스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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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기업이자, 매출 10조 원대의 대형마트 홈플러스 직원들의 이야기입니다. 대기업 홈플러스는 직원들에게 단 하루의 여름 휴가도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휴가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에는 직원들에게 집중 근무를 강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홈플러스 한 점포의 직원 스케줄표.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연차사용 자제기간'이라 지정되어 있다
 홈플러스 한 점포의 직원 스케줄표.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연차사용 자제기간'이라 지정되어 있다
ⓒ 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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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별 회식, 야외 행사, 연차 휴가도 사실상 금지입니다. 여름휴가에 필요한 캠핌 용품이나 먹거리 등의 수요가 늘어 매출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감히 쉬거나 놀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많은 기업이 1년 동안 열심히 일한 직원들에게 휴가 잘 다녀오라며 지급하는 휴가비도 홈플러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휴가가 없으니 휴가비 한 푼 못 받는 건 당연한 일일까요?

매장 근무 직원의 대다수인 4,50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여름만 되면 아이들의 '맨날 엄마 때문에 놀러도 못 간다'는 얘기에 마음을 다친다고 한다.
 매장 근무 직원의 대다수인 4,50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여름만 되면 아이들의 '맨날 엄마 때문에 놀러도 못 간다'는 얘기에 마음을 다친다고 한다.
ⓒ 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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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초 한국경영자총협회가 483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하계휴가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여름 휴가 평균 일수는 4.3일. 여름 휴가비를 지급하는 기업들의 평균 휴가비는 47만5000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접한 직원들은 허탈해 합니다.

전에는 많은 직원들이 대형마트에 다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대형마트인 이마트나 롯데마트가 직원들에게 여름휴가 보장과 휴가비 지급을 책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폭발적으로 팔리는 삼겹살, 물, 술, 음료수, 과자, 수박, 일회용품들을 위해 직원들은 땀을 흘리며 매장과 창고를 뛰다시피 오갑니다. 휴가철 2주 정도 시간동안 이런 일이 계속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휴가철에 매장은 더 바삐 돌아간다. 몸도 힘든데다 연장 근무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휴가철에 매장은 더 바삐 돌아간다. 몸도 힘든데다 연장 근무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 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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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은 홈플러스 노동자에겐 악몽같은 시간

휴가시즌 내내 늘어나는 업무량 때문에 하루에도 몇 시간씩 연장근무도 합니다. 하지만 연장 근무 수당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법적으로 일주일에 12시간 이상은 연장근무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일주일에 20~30시간 연장근무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불법이 아니냐고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생기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음에도 아직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대형 유통기업 홈플러스의 어두운 단면이지요.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점포는 그나마 낫습니다. '연장근무 수당을 안 주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라며 따지고 싸워서라도 일한 대가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점포에서는 아직도 직원들이 몇 시간씩 연장근무를 하면서도 온전히 수당을 받지 못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홈플러스 직원들에겐 즐거워야 할 휴가철이 '악몽'입니다. 계산대에서 6년째 근무하는 한 직원은 비통한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화려한 꽃무늬 반바지를 입은, 딱 봐도 휴가를 맞아 여행을 떠나는 손님들이 계산대에 물건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으면서 이렇게들 얘기해요. '여기 분들은 휴가 안 가세요?' '아이고 우리만 가서 미안합니다~' '월급을 100만 원도 안 준다더니...그럼 휴가도 없겠네요?'라고 말이죠. 안타까운 마음에 그렇게 얘기들을 하시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더 울화통이 터져요. 남들처럼 휴가가고 싶은 가족들이랑 아침부터 한바탕 하고 나올 때가 많거든요. 휴가철엔 늘 그래요."

그러나 이후에도 홈플러스 직원들이 여름 휴가를 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2013년에 진행된 노사간 단체교섭에서 홈플러스 회사 측은 '연차를 사용하면 되니 굳이 여름휴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최근 회사 홍보팀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회사 측 홍보팀은 "교섭을 하고 있는 중이니 담당자와 연락하라"며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홈플러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해주세요!

홈플러스에서 10년을 일해도 월급은 100만원이 안 돼! 7월 22일 홈플러스 영등포점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홈플러스 노동자들
 홈플러스에서 10년을 일해도 월급은 100만원이 안 돼! 7월 22일 홈플러스 영등포점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홈플러스 노동자들
ⓒ 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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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노동자들은 이런 기막힌 현실을 바꾸고 싶어 올해 4월부터 회사 설립 15년 만에 첫 임금교섭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홈플러스 사측의 무시전략으로 임금교섭은 결렬됐고 7월 중순부터 파업을 포함해 1인시위, 유인물 배포 등 생전 해보지 않았던 낯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기가, 열심히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그런 와중에 휴가철을 맞으니, 더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휴가 한 번 제대로 가보고 싶은 것이 소원인 우리 여성 비정규직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싸워보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여름 휴가 중 홈플러스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홈플러스 직원을 보신다면 "힘내세요!"라고 외쳐주실 수 있나요?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매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홈플러스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힘을 모아 꼭 현실을 바꿔내고 싶다고 한다
 매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홈플러스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힘을 모아 꼭 현실을 바꿔내고 싶다고 한다
ⓒ 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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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홈플러스, #대형마트, #휴가, #노동조합,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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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30대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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