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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통합진보당을 향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종북몰이는 곧 한국사회 전반을 겨냥한 무차별적인 것으로 확대되어갔다. 특히 관권부정선거 문제의 진상규명을 거론하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및 사퇴 요구를 할 경우 극우단체의 폭력까지 허용되는 종북몰이가 연이어졌다. 심지어 1970∼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마저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한 직후 종북몰이에서 무사할 수 없었다.

'대선불복은 민주주의 부정'이라는 현수막 내건 새누리당

2013년 11월 22일 저녁, 쌀쌀한 날씨 속 전주 수송동성당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든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이곳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에 의해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미사'가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대선불복' 프레임을 선취해 부정선거 운운을 '금도'로 설정하여 "부정선거", "대통령 사퇴"와 같은 언어의 정치적 공론화를 차단하고 있던 터였다.

예컨대 8월 21일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3.15부정선거'를 거론하며 박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자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를 '대선 불복행위'라 규정했고, 청와대는 "금도를 지켜달라"고 하였다. 이로써 박 정권은 부정선거라는 언어 확산의 원천적 차단에 성공했다. 심지어 이 무렵 서울 도심 거리에는 대선 불복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라는 새누리당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기도 했다. 글쓴이의 경우 미아사거리에서 이런 현수막을 목격한 바 있다.

물론 대선불복 프레임이 유효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 민주당 지도부의 태도에도 원인이 있었다. 10월 중순, 문재인 의원의 불공정 대선 책임론 제기에 대해 새누리당이 대선불복 공세를 펴자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선거 결과를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진상을 규명해 대통령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하라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며 은폐에만 골몰하는 모습은 답답하고 갑갑하다"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대선불복 프레임은 '민주주의'와 '국민'을 '부당한 집권'에 전유하는 '기이한 논리'였지만, 한편으로 이 시기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정치행위가 '선거운동' 차원에 다름없음을 노출하고 있었다. 즉 '긴 18대 대선'의 속성이 투영된 프레임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논란의 예봉이 박 정권으로 향하는 것을 차단함에 있어 성공적이었다. 실제 이해 10월 들어 이명박 정권 시기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국내정치에 동원된 전모가 드러나고 국정원이 트위터를 통해 방대한 여론공작을 진행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공식적 정치영역이나 언론지상에서 '관권부정선거'라는 표현은 이상하리마치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대국민 선전포고에 나선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대표

그런데 이 '금기'가 2013년 11월 2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미사에 의해 최초로 깨졌던 것이다. 정국은 아연 긴장했고 언론의 취재열기 역시 뜨거웠다. 이날 미사에선 송년홍 신부의 취지 설명과 박창신 신부의 강론에 이어 시국선언문 발표가 이어졌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대통령 사퇴 표명을 요구했다. 공식적인 대통령 사퇴 요구는 사실상 이것이 최초였다. 한편, 이에 대해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이날 또 한 번 대선불복 구도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다음날인 11월 23일부터 새로운 국면이 전개됐다. 이날 조·중·동이 미사 당일 박창신 신부의 강론내용을 크게 부각시켜 보도하면서 부정선거에 대한 대통령 사퇴요구가 묻히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박창신 신부는 새누리당 정권의 종북몰이를 정면 비판하며 엔엘엘이 역사적·법적 근거가 없음과 더불어 북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한미 측의 책임을 지적했던바, 이는 종북몰이의 주요 근거가 된 '엔엘엘 이념'의 허구성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극우언론은 이 발언을 마치 '엔엘엘 부정'이라도 되는 양 강조하면서 정권 수호에 나섰고, 덩달아 청와대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며 포문을 열었다.

연이어 11월 25일, 이날 대통령·국무총리·새누리당이 일제히 총공세에 나섰다. 이날 대통령 박근혜는 "지금 국내외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이 많다. 앞으로 저와 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수석들은 결코 굴복하거나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또 국무총리 정홍원은 박 신부의 발언을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적에 동조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사제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본을 망각한 언동으로 북한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도발을 옹호하는 것으로, 결코 좌시할 수 없으며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의 조건을 위로부터 규정해 국민의 정치적·사상적 자유를 한정시키는 발언이었다.

이와 함께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는 아예 "북한이 최근 반정부 대남 투쟁 지령을 내린 후 대선 불복이 활성화된다는 지적이 있다"라는 허위 발언을 하며, 대통령 사퇴요구가 북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또 그는 "민주당과 정의당, 안철수 의원은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들과 소위 신야권연대를 결성한 만큼 이들의 활동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현해야 한다"며 야권 전체를 몰아붙였다.

부정선거 논란과 대통령 퇴진 요구를 차단하고자 대통령은 국내외 사회 전체를 향해, 총리는 국민을 향해, 여당 대표는 야당과 시민사회를 향해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권 지지자를 제외한 한국사회 구성원은 누구나 종북몰이의 대상, 즉 '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국민 위협하던 정권, 정작 국민의 생명을 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극우단체들은 수송동성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화형식을 여는 따위 공포분위기를 조장하는 한편, 박 신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수송동성당은 일시 폐쇄됐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일선 행동대인 극우단체, 여론을 조작하는 극우언론, 권력기관을 주무르는 극우정권이 짝을 이루어 비판세력을 '처리'하던 이명박 정권 시기 이래의 '폭력'적 메커니즘이 재차 발동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반유신투쟁,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등 민주화운동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일순간 '국가의 적'(실제로는 '정권의 적') 혹은 '비국민'으로 낙인찍혔고, 사제단의 존재와 대통령 퇴진 요구는 일방적으로 억압되었다. 이에 대해 어느 교황청 매체는 11월 26일 '정부가 민주화운동 성직자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다'라는 제하에 박창신 신부와 사제단에 대한 한국정부의 종북공세를 보도했다. 박근혜 정권의 '적'으로 규정된 박창신 신부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나섰다가 괴한으로부터 테러를 당한 분이었다.

하지만 위의 대통령·총리·여당 대표의 발언 속에는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문제, 대통령 사퇴 요구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실상 이들의 발언은 대선불복에 종북몰이를 결합시켜 대통령 사퇴 주장을 '비국민' 내지 '이적행위'로 치환한 폭력이자 위협이었고, 대선 자체를 둘러싼 논란에는 침묵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시적 국면전환에만 효과적이었을 뿐 근본적 대응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후자의 측면에 의해 종북몰이의 정치성·허구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될 수도 있었다. 실제 이후 대통령 퇴진 요구는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종단 전체로 확대되었다. 만일 대통령이 관권부정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가 이적행위라면, 지난 2004년 별다른 사유 없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행위야말로 이적행위일 것이었다.

한편, 박 대통령은 12월 2일 김진태 검찰총장을 임명하며 "어떤 경우라도 헌법을 부인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그런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일주일전 발언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러나 관권부정선거로 민주주의를 유린하며 집권한 정권이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결국 극우정권만이 영속할 수 있는 정치, 사회적 질서를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 2013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기소자가 11년 만에 최대를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경향신문> 2013. 12. 30)

이러한 정권 인사들의 발상과 종북공세는 사실상 민주화운동을 종북 행위로 몰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 북한 인민군의 소행이었다고 '믿는' 그들의 정신상태가 이런 식으로 표출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국민의 자격'을 운운하며 기세등등하던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정작 이번 세월호 대참사 과정에서 폭로되었듯 국민의 생명이 중대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선 아무런 조치로 취하지 않은 채 책임회피와 은폐, 방임과 여론조작으로 일관하였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저버린 진정한 헌법 위반 행위였다.

덧붙이는 글 | 참고 문헌

<경향신문>, <뉴시스>, <연합뉴스>, <오마이뉴스>, <한겨레>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종북몰이, #헌법, #대통령 사퇴, #대선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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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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