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42번가 에서 줄리안 마쉬를 연기하는 김영호

▲ 브로드웨이 42번가 에서 줄리안 마쉬를 연기하는 김영호 ⓒ CJ E&M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연출가 줄리안 마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연출가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표현을 잘 하지 못한 것일 뿐, 배우들의 애환과 노고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마음씨를 간직한 연출가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배우 김영호는 "줄리안 마쉬와 싱크로율이 100%"라고 김영호는 이야기한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김영호에게 힘을 주는 에너자이저 같은 공연이었다. 공연장에 들어설 때마다 앙상블의 화려한 탭댄스를 보면 힘이 저절로 솟는다고. 그에게 샘솟는 에너지를 어디에 쓰는지 물으니 "역시 공연장"이라고 답했다. 극을 이끄는 줄리안 마쉬 역을 하면서 보통 연기보다 에너지를 많이 쓴다고 한다.

- 2006년 <애니> 이후 중간에 <드림 헤어>처럼 잠깐이나마 공연한 적은 있지만 8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섭외는 계속 있기는 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하느라 뮤지컬 무대에 오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줄리안 마쉬는 꼭 해보고 싶었다. 뮤지컬을 하는 남자 배우라면 줄리안 마쉬에 대한 갈망이 누구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서툴지만 일에 엄청난 열정을 쏟는 줄리안 마쉬는 표현을 못하는 남자다.  이번에 하지 않으면 뮤지컬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대사 분량이 많아서 암기하는데 살짝 애를 먹기도 했다."

- 8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애니>로 함께 공연한 전예지(줄리안 마쉬의 상대인 페기 역)씨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고 들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처음 저를 만나면 무서워한다. 그런데 예지는 보자마자 팔짱을 끼었다. <애니>에서 같이 공연한 줄도 모르고 당돌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저 모르시겠어요?' 하고 예지가 물어보았다. 애니에 출연했다고 그가 말했는데 한 달 이상 같이 공연한 예지를 알아보지 못한 게 이해가 안 되더라.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뽀뽀하는 장면도 있는데 쑥스럽다."

- 전예지씨가 김영호씨는 말도 자주 걸어주고 애교도 많이 부려주신다고 하더라.
"초등학생 때 저를 무서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 말을 안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스타일이다. 예지에게 일부러 말을 거는 건 무섭게 보이지 않기 위해 의도한 거다. 말을 걸어주니 이제는 후배들이 제게 귀엽다는 소리까지 한다. 허허"

브로드웨이 42번가 에서 줄리안 마쉬를 연기하는 김영호

▲ 브로드웨이 42번가 에서 줄리안 마쉬를 연기하는 김영호 ⓒ CJ E&M


- 역대 줄리안 마쉬 중에서 가장 남성적인 줄리안 마쉬인 거 같다.
"어머니는 저를 보면서 아들에게 '여성 호르몬이라고는 1%도 없다'는 표현까지 쓰신다. 줄리안 마쉬를 연기하기 위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 초반에는 에너지를 쏟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진짜 줄리안 마쉬가 된 것처럼 조율하고 있다. 줄리안 마쉬를 맡기 직전에 영화 연출을 했다. 35명 가량의 스태프를 조율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시나리오와 연출, 예산 집행도 혼자 해야 했다. 당시 경험이 줄리안 마쉬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영화 뿐만 아니라 뮤지컬, 가수, 화가, 작가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커다란 덩치 덕에 깡패로 진출하기 쉬웠지만 남을 괴롭히는 일은 천성에 맞지 않았다. 무엇으로 먹고 살까를 고민할 때 종교에 귀의할 뻔도 했다. 절에 오래 있었다. 그러다가 표현하는 직업이 잘 맞을 것 같았다. 주위 사람들의 반대가 많았다. 표현을 잘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표현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다행히 연기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한다. 어릴 적에 글짓기로 상을 많이 받았다. 오랫동안 철학 공부를 많이 했다. 30년 동안 글을 썼다. 한번은 기자에게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 글을 건네주니 어디서 베꼈냐고 묻더라. 얼굴과 다르게 너무 잘 썼다는 것이다. 그 때 글 쓰는 재주가 있다는 걸 알았다. 시나리오 작업은 시간이 남아서 누군가의 대본을 각색했는데 잘 한다는 평을 들어서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제게 그림을 가르쳤던 교수님이 제 그림을 보고는 '그림을 오랫동안 그린 사람처럼 필력이 좋다'고 해서 그림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사진은 제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걸 찍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아름다움과 어두움을 동시에 찍고 싶었다. 대신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피사체는 담고 싶지 않았다.

경각심을 주는 선과 악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악은 사람들 안에 숨어 있는 거라 찍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자연의 아름다움,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아름다움은 찍기 쉬웠다. 구도도 좋고 발상도 좋았는지 전시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주위 사람들 덕이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에서 줄리안 마쉬를 연기하는 김영호

▲ 브로드웨이 42번가 에서 줄리안 마쉬를 연기하는 김영호 ⓒ CJ E&M


- 만일 당시 종교에 귀의했다면 지금의 2세는 없지 않았겠는가.
"지금이라도 종교에 귀의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꼭 귀의하고 싶다. '삶에 대해 놓아야 할 시기가 되면 종교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가족에게 한 적이 있다. 일찍 귀의하지 않아서 2세가 생긴 거다."

- <기황후>에서 백안장군을 연기할 때 혹한기였다.
"지금까지 찍은 드라마 중에서 <기황후>가 가장 힘들었다. 갑옷을 입으면 갑옷 상의가 목을 건드린다. 머리를 땋거나 변발인 경우가 많아서 다른 헤어스타일을 했는데 머리에 두통이 올 정도로 추웠다. 고생하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데 거꾸로 10kg이 불었다.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 편이다. 거의 24시간 촬영하니 운동을 할 수도 없고 먹는 걸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막바지에 허리를 다쳐서 20여일동안 고생했다."

- '남자라서'라는 앨범이 나올 때, <기황후> 촬영과 겹쳤다.
"앨범을 내놓았을 때 <기황후> 촬영에 들어가서 앨범 홍보를 하지 못했다. 1집은 사람들이 아는데 2집을 언제 내놓았느냐고 할 정도였다. '앨범 홍보를 할 시간은 있겠지' 생각했는데 사극이라 일주일 내내 드라마에 매달려야 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앨범이었는데 아깝다."

브로드웨이 42번가 김영호 기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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