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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서울의 모 대학교 강의실. 사회자의 서두 멘트로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저희 단체부터 소개를 할게요. 저희는 2008년 학교가 재단이 바뀐 이후 인문학 계열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고, 학내언론의 탄압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교지가 배포 전에 수거를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재단의 횡포에 대응하기 위해 학교에서 뜻이 맞는 구성원들끼리 모여 만든 인문학 단체입니다. 저희는 매번 방학때마다 연속강좌를 진행하고 있고, 또 학기 중에는 공개강연을 통해 수강생 분들에게 저희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저렴한 수강료로 모집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학기중에는 독립저널을 발행하여 여론의 공론장 형성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눈치챈 독자분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이것은 중앙대학교 학술공동체 '자유인문캠프'이다. 이들은 학내에 실종된 민주주의와 인문학적 자세, 교양, 그리고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발행하는 독립저널 <잠망경>은, 중앙대 학내는 물론이거니와 학내언론이라는 이름을 달고 종사하는 학생들에게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자유인문캠프 수강생이다. 자유인문캠프는 매번 강연을 시작할 때마다 이러한 소개 멘트를 남긴다. 벌써 중앙대의 재단이 두산으로 바뀐지 6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이런 코멘트를 한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스스로 인문학 계열을 통폐합하고, 반대여론 억압한 이사장

지난 6월 30일 기고한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의 <조선일보> 칼럼을 보자. 그의 주장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인문학 열풍이 한창이지만, 인문학 계열에서 전과나 복수전공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다.
2. 경영학이나 공대에서 복수전공으로 인문학을 배우게 해야 한다.
3. 등록금을 4천만원이나 내고 취업이 안되는 인문학 계열은 필요없다. 대학원으로 올려보내야 한다.

이 기고문의 논조나 제목처럼 '인문학이 바로 서야 대학이 산다'는 맞지 않는다. 제목은 '바로 세우자'는 얘기를 하지만, 글의 내용은 '인문학이 독자적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박용성 이사장의 논리를 따르자면, 보다 실용적인 학문에 투자를 하거나 입학정원을 늘리고, 이와는 동떨어진 기초학문은 폐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학내의 수많은 인문학 계열(청소년학과, 아동복지학과, 비교민속학과 등)이 폐과 수순을 밟고, 어문계열은 독자적으로 생존하지 못하고 학부제로 개편되었다(이에 관한 사실은 이미 널리 퍼져있으며, 올해 초 발간된 <기업가의 방문>(노영수 저, 후마니타스)에 자세히 나오므로 생략하겠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실용적 학문에 보조적 역할로만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치자. 그럼 학문에 대한 연구는? 제아무리 사회과학적 명제 하나라도 이를 시험하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액수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즉, 인문학이란 학문은 단순히 경제적 요건이 충족하면 결과물이 나오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학문의 발전적인 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사회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사장이 생각하는 인문학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인문학이란 윤리나 도덕이 될 수도 있고, 단순한 어학능력이 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겨레21> 기사에 나와있듯이) '비판하고 성찰하는' 능력이 된다.

중앙대학교 학술공동체 '자유인문캠프'는 매 학기마다 공개강연을 진행한다. 사진은 지난 7월 초에 진행된 '세상을 바꾸려면' 공개강의 중 한 장면
▲ 자유인문캠프 공개강연 중앙대학교 학술공동체 '자유인문캠프'는 매 학기마다 공개강연을 진행한다. 사진은 지난 7월 초에 진행된 '세상을 바꾸려면' 공개강의 중 한 장면
ⓒ 정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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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그 교육을 담당할 인문학자는 대학원에서 양성하면 되기 때문에, 인문학 관련 학과는 대학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타당한 구조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학부에서 졸업하는 것은 헛된 배움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개론 정도의 내용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인가? 이런 당위를 얘기할 근거가 상당히 빈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만약 박용성 이사장이 말하는 것이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염두해두고 얘기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로스쿨은 진로가 협소하고 폐쇄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이 역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합의를 통해 학부 전공은 폐지가 된 반면, 인문학은 그 범위 자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이를 전부 석/박사 과정으로 대체한다는 주장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서두에서 박 이사장은 '문사철'(文史哲)을 얘기했는데, 문사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가 '윤리'이다. 단순히 경영 효율과 자본의 논리로 노동자를 잠도 안재우고 혹사시킨 사건이 만연했던 것이 19세기 초 자본주의의 비극이다.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노동자가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고,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역사가 증명해준다. 하지만 어떤가? 당시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손해배상 가압류를 통해 노동자를 파탄으로 만든이는 누구인가?

다시 자유인문캠프 얘기로 돌아가보자. 박 이사장은 '인문학이 바로서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과연 여기있는 이 자발적 인문학 공동체에 대해서는 왜 빗장을 걸어잠그는가?

얼마전 자유인문캠프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은 충격이었다. 교내 일부 건물에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알고 강의실 임대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존재조차 학내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들은 결국 교내의 다른 건물을 찾아가고, 또 그들의 이름이 아닌 학내의 다른 자치단체 명의로 대실을 한다. 물론 이것이 박용성 이사장의 지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 학내 커뮤니티인 '중앙인'을 학내 공론장이 아닌 학교 홍보 게시판으로 무력화시키거나, '안녕들하십니까' 열풍 당시 대자보를 강제수거하는 등의 사례로 미뤄볼 때, 이 사건 역시 반드시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

박용성 이사장에게 말한다. 인문학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우선 자유인문캠프의 존재와 가치부터 인정을 하고, 이러한 편파적이고 치졸한 행동을 지양하는 것이 옳다.


태그:#자유인문캠프, #박용성,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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