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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5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유가족과 수만명의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문화제'를 마치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막아서 유가족들이 비가 쏟아지는 바닥에 앉아 있다.
▲ 비오는 길 바닥에 주저 앉은 세월호유가족 25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유가족과 수만명의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문화제'를 마치고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막아서 유가족들이 비가 쏟아지는 바닥에 앉아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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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아침,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만난 기자들은 전날 야당이 전달한 '세월호 특별법'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서한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물었다. 민 대변인은 "청와대의 공식 반응 같은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민 대변인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에서 "역사에 남을" 실패를 한 김진태 검찰총장과 이성한 경찰청장 등 검경 수뇌부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 책임론에 대해서도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다"고 잘랐다. 세월호 참사 101일째 아침 청와대의 태도는 참 냉랭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언급을 꺼리는 청와대 인사들의 태도는 사실 박 대통령의 침묵과 맥을 같이 한다. 2기 내각 출범을 계기로 박 대통령의 동선과 메시지에서 '세월호'는 사실상 사라졌다. 오히려 '경제 활성화'라는 국정목표 달성을 강하게 추동하면서 '세월호 참사 벗어나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2기 내각 출범... 세월호에서 벗어나기 안간힘

최근 들어 박 대통령의 공개 일정은 지난 21일 한·포르투갈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22일 국무회의와 중견기업인연합회 출범식, 23일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 실현 전략보고회, 24일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 주재 등 경제 관련 행사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박 대통령의 입에서는 '경제 활성화', '경제 부흥', '규제 혁파', '일자리 창출'과 같은 경제 이슈들만 반복됐다.

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월호라는 단어는 주로 경제 위축 우려와 연관돼 언급됐다. "세월호 사고를 기점으로 소비, 투자 등 내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 "세월호 사고 이후 경제심리가 많이 위축되고"(중견기업인연합회 출범식)라고 말하는 식이다. 25일 시도지사 오찬 간담회에서도 박 대통령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던 우리 경제가 세월호 사건 후 주춤하면서"라고 했다. 

또 '세월호'는 국회의 '비협조'를 탓하는 부분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세월호 후속조치와 국가혁신,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많은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데 여와 야, 국회와 정부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지난 22일 국무회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 후속 조치가 지지부진한 책임을 국회에 돌릴 때나 대통령은 세월호를 입에 올린 것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은 24일마저도 어떤 메시지도 내놓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자신이 직접 제안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 여야 대립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인데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야가 더 노력해 달라는 원론적인 당부도 없었다.

유병언 전 회장 검거를 여러 차례 독려하고도 뒤늦게 발견된 시신에 대해서도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정권에 불리한 사안은 아예 외면하는 '불통'은 여전했다. 

대통령이 휴가가라고 할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굶고 비 맞고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던 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눈물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던 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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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박 대통령은 2기 내각에 경기 부양을 독려했다. 또 "국민이 하루 휴가를 더 가게 되면 지출액이 1조4000억 원 는다"면서 내수 진작을 위해 정부 부처 공무원들에게 여름 휴가를 권장하고 장관들부터 솔선수범하라는 지침을 내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휴가를 말할 때 일부 희생자 가족은 곡기를 끊은 채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과 시민들은 거센 비를 맞으며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부터 국회까지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행진'을 벌였다. 희생자 10명은 아직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고통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침묵했고 새누리당 지도부는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라면서 다시 한 번 희생자 가족들에게 상처를 줬다. 경기부양 카드로 세월호 참사와 연이은 인사 실패, 유병언 전 회장 검거 작전 과정에서 드러난 검경의 총체적 무능이라는 과거를 덮겠다는 얄팍한 계산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째인 지난 5월 16일 청와대에서 희생자 가족 대표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근본부터 바로잡고 국가대개조라는 수준으로 생각하면서 사회의 기초부터 다시 세우는 것이 안타까운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 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참사 100일 만에 세월호 잊은 박 대통령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석 달여가 지났지만 박 대통령이 약속한 국가대개조의 첫 단계인 진상 규명은 한 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 수사권에 대한 여당의 반대 때문이다.

진상조사위가 청와대와 박 대통령을 조사하는 걸 막으려는 여당의 '몽니'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통령은 말이 없다. 오히려 유병언 전 회장 검거 작전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으로 불신만 커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경제 뒤에 숨어 세월호를 잊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 앞에서 보였던 눈물이 거짓이거나 지방선거용이었다는 비판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태그:#박근혜,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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