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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침 일찍부터 촬영 일정이 잡혀있었다. 도법스님이 이끄는 화쟁코리아 백일순례단의 도보순례 촬영이었다.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집을 나서 군산으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렘은 아니었다.

촬영 장소는 미군기지가 있는 군산 하제마을이었다. 하제마을은 한때 어업이 번창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미군 비행기의 소음으로 주민들이 다 떠나 '죽은 마을'이 되었다. 한때 바다를 활발히 누볐을 배들은 줄에 꽁꽁 묶인 채 쇠락해가고 있었고, 녹슬어있는 고기잡는 기구들은 기약 없이, 햇볕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문이 굳게 닫힌 집,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 백일순례단이 군산의 첫 출발지로 하제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하루빨리 이곳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순례자들은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바다에 내리쬔 햇살은 유리 가루를 뿌린 듯 눈부시게 빛났다. 바다는 빛나는 햇살을 안고 일렁였다. 이날따라 왜 그리 바다는 드넓고 평화롭게 보였던걸까. 청명하고 투명했던 봄날 아침이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날'

오전 9시 30분쯤 되었을까. 도보순례자들이 둥글게 앉아 본격적으로 절을 하며 명상하는데 머리 위로 미군 비행기가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미군 비행기의 소음을 들어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하늘의 한 조각이 찢겨져 나가는 듯했다. 마치,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기도를 훼방 놓겠다고 작정이나 한 듯, 순례단의 머리 위로 무시무시한 소음을 내며 지나갔다. 반복적으로 계속 날아드는 비행기의 굉음에 몇몇 순례단원은 절을 멈추고, 원망스러운 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디서 전쟁이라도 난 듯한 기분이었다. 이날 날씨는 청명했고 바다는 눈부시게 푸르렀지만, 이상하게도 내 심장은 계속 두근거렸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부터 시작됐던, 이유를 알 수 없는 걱정과 불안은 비행기 소음으로 더욱 증폭됐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속보를 접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 속보로 떴다.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곧 구조될 거라 믿었다. 4월 16일 오전이었다.

쇠락한 군산 하제마을 한켠에 피어있던 노란 민들레. 세월호가 침몰하던 4월 16일 아침에 찍었다. 그냥 무심코 찍은 사진이었다. 저 벽처럼 깨지고 부숴진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에 희망의 꽃이 다시 피어나길 바란다.
▲ 하제마을의 민들레 쇠락한 군산 하제마을 한켠에 피어있던 노란 민들레. 세월호가 침몰하던 4월 16일 아침에 찍었다. 그냥 무심코 찍은 사진이었다. 저 벽처럼 깨지고 부숴진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에 희망의 꽃이 다시 피어나길 바란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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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그 후 100일...

'세월호'를 생각하면 왜 그날 아침의 '굉음'이 먼저 떠오르는지 알 수 없다. 봄날 아침의 평화와 고요를 깨뜨리며 날아가던 그 무시무시한 파열음. 귀가 찢어지는 듯한 공포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은 그냥 우연한 일치일 수도 있다. 그날 이후로 100일이 지났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세상의 시계는 어김없이 돌아간다. 주위를 돌아보면 모두 바쁘다.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넘느라 숨 가쁘다. 이 와중에 세월호를 '잊지말자'는 얘기는 누군가에겐 개념에 그친 구호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가끔 잊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 뭘 하든 그 누구도 '세월호'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뒤 일주일 후쯤, 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출근했다. 실종자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그 날까지만 달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100일이 다 되도록 노란리본을 달고다닐 줄은. 직업 특성상,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곳을 다니는 까닭에, 나는 사람들이 내 가슴의 노란 리본을 보며 한 번쯤이라도 더 세월호 침몰사건과 억울하게 삶을 마감해야 했던 희생자들을 생각해주길 바랐다.

아직도 열명이 바다에 있다. 언제쯤 저 리본을 뗄 수 있을까.
▲ 노란리본 아직도 열명이 바다에 있다. 언제쯤 저 리본을 뗄 수 있을까.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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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면 나 역시 때때로 잊고 살기도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그냥 자연스레 잊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잠자리에 들 때나, 어둠 속에 있을 때, 어쩌다 창을 두드리는 빗물 소리에 잠을 깰 때, 억울하게 스러져간 희생자들을 떠올려본다.

내 가슴이 이렇게 미어지는데, 가족들은 어떨까.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애통할까. 죽은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절대 가슴에도 묻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진실이 다 밝혀질 때까지 그들은 자식을 그 어느 곳에도 묻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잊힐 때 죽는다는 말이 있다. 세월호 사건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세월호를 잊지 않는 내 주위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줌으로써, 기억하고 있는 이웃들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을 잊지 않으려는 나 나름의 노력이기도 하다.

유가족의 손목에 있던 노란 팔찌. 내가 맡고있는  TV프로그램에서 세월호 98일을 기념해서 제작한 영상물 <Remember0416> 의 마지막 장면.
▲ 리멤버0416 유가족의 손목에 있던 노란 팔찌. 내가 맡고있는 TV프로그램에서 세월호 98일을 기념해서 제작한 영상물 <Remember0416> 의 마지막 장면.
ⓒ 전주문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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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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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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