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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결혼을 했어요? 잠깐, 애 엄마라고요? 아이가 몇 살인데요?"

다급하고 격앙된 목소리, 튀어나올 듯 커진 눈. 그 젠틀하던 면접관이 침까지 튀긴다. 면접에 왔다는 건 이력서, 자기소개서, 경력기술서 상 채용에 적합하다 판단되어 사람을 부른 자리가 아닌가? 내 이력서를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은 걸까?

눈을 껌뻑이며 "네, 이력서에 쓰여있는 대로 기혼자이며 이력서상 가족관계에 밝힌 것처럼 곧 돌이 되는 아들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나를 앞에 둔 면접관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우호적이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면접관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대했다.

뭐 이제 더 이상 이 풍경이 놀랍거나 불쾌하지도 않다. 벌써 일곱 번째니까. 출산휴가와 약간의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온 직장. 그곳에 있던 내 원래 자리에는 다른 사원이 채워져 있었다. 어찌 그 상황을 원망하겠는가? 내가 없는 동안 회사는 나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혔고 그렇게 해야 업무가 굴러갈 수 있었을 테니.

대신 나에겐 새로운 발령지가 정해졌다. 법인영업이었다. 처음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웹 콘텐츠를 제작하는 에디터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고객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후에 인디라이터가 되어야지 라는 꿈이 있었다. 처음 난 내가 생각한 보직에서 일을 했다.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였고 상품기획 업무가 맡겨졌다. 다소 다른 성격의 일이었지만 글을 쓸 일도 많았고, 책을 볼 시간은 더욱 많았다. 역시 좋았다.

아이 낳고 돌아오니 사라진 내 자리... 이직도 힘든 '애 엄마'

아이 엄마라는 이유로 일곱번이나 이직 면접에서 탈락했습니다.
 아이 엄마라는 이유로 일곱번이나 이직 면접에서 탈락했습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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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아온 지금,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자리, 생각지도 않은 일을 하게 되었다. 바로 영업일. 그래도 지난 4개월간 열심히 배웠다. 그래서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4개월간 제대로 독서를 한 적도, 제대로 된 글 한 편 써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꿈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임신, 출산, 육아 그 후로부터.

회사에 요청을 했다. 다시 예전 일을 할 수는 없는지.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상 사업부를 늘려가고 콘텐츠 제작과 같은 지원 일을 줄여가는 상황이라 옮겨주긴 곤란하다는 답을 들었다. 받아들이고, 일을 했다. 이 땅의 모든 가장들, 모든 직장인들이 가족을 위해 그렇게 일하고 있을 것이니. 나라고 불만을 표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이직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필요한, 그 자리에 사람이 필요한 회사가 있으리라. 오랜만에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회사를 뒤지고 하는 일을 검토하고 이력서와 경력기술서,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작성했다. 포트폴리오도 만들었다. 서류를 제출하자 면접을 보자는 답이 상당수 들어왔다.

나를 쓰고 싶어 하는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하고 싶은 일을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 면접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아시다시피 회사 입장에서 여직원을 들인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모험이에요, 무슨 말씀인지는 아실 거예요, 아이도 어리고, 둘째 생각은 있나요? 또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기간이 좀 남은 것 같은데, 언제쯤 쓸 예정이에요?" 며칠이 흘러도 답은 오지 않았다. 일곱 번째.

"그냥 있는 곳 다녀, 애 엄마가 일 있으면 감지덕지지"

많은 연봉을 바라지 않았다. 아니 지금보다 다소 적더라도 상관없었다. 상장회사든 비상장 회사든, 규모가 크든 작든, 갑이든 을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이있는 엄마가 회사에겐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존재였고, 그런 무서운 존재인 나에게 회사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직이 이렇게 쉽지 않은 건지 몰랐다고 푸념하는 나에게 후배는 이런 말을 했다.

"선배, 그래도 선배는 아이 낳은 엄마죠? 저는 더 사각지대예요. 제가 이직 시장에서는 가장 약자예요. 얼마 전에 결혼했잖아요. 면접 보러 가면 '아이 계획이 언제예요?'라고 물어요. 그건 양반이에요. 가끔 아이 봐줄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있는지를 묻는 곳도 있어요. 아니 왜 남의 가족계획과 호구 조사까지 면접관이 한대요? 정말 어이 없다니까요."

"야, 우리 시댁 아가씨 있지? 서울대 경영학과 나오고 서울대 대학원 나왔는데 대학원 재학 중에 결혼해서 아이 낳았거든. 대학원 졸업하고 원서내는데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모든 서류에서 광탈('광속 탈락'의 줄임말. 매우 빠른 속도로 탈락함을 의미) 당했어. 지금? 7급 공무원이다. 시청에서. 공무원은 점수대로 자르니까."

"난 아가씨 때는 이직하려 서류 내면 냉큼냉큼 잘 됐거든? 지금은? 면접 보라 오라 그런 곳 한 군데도 없어."

"면접관이 아이 엄마라 하자마자 얼버무리더니 회사 현관 나서자마자 문자 오더라. '귀하의 경력은 훌륭했으나 지원자가 다수인 관계로……' 어떻게 문 앞을 나서는데 바로 떨어뜨릴 수 있니?"

"그냥 있는 곳 다녀. 못 옮겨. 하고 싶은 일이 어딨니? 애 엄마가 일 있으면 감지덕지지."

주변 아이 엄마들의 사연은 끝이 없었고 나는 점점 침울해져갔다. 오늘 아침에도 난 어제 얼마나 판매되었는지 일 판매량 매출 보고를 한다. 다음달 판매 계획을 세우고 매출 목표 중 얼마나 채웠는지 분기 경과율 대비 매출은 얼마큼이나 나왔는지, 이번 분기에는 달성을 할 수 있는지.

워드 파일보다 엑셀 파일에 가까워지고 타자를 치는 일보다 계산기 두드리는 일이 많아지고 점심을 먹으면서 이 메뉴는 마진율이 얼마나 될까? 라는 말을 대화 주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읽지도 못하고 잠들 책 한 권을 옆에 끼고 퇴근한다. 난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아이있는 아줌마니까.

PS. 이 글을 쓰고 얼마 뒤, 한 면접장에 갔습니다. 시니컬한 얼굴로 자기 소개를 하라는 면접관의 말에 이름보다 "돌된 아기 엄맙니다"라는 말을 먼저 한 나에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게 왜요?"라고 물어봐 주신 선한 인상의 사장님을 만났고 그 회사에 입사 예정입니다. "그게 왜요?"라는 질문을 가진 회사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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