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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를 싸지 않은 발아포도가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 포도밭 봉지를 싸지 않은 발아포도가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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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포도의 색깔이 살짝 나기 시작한다. 농부들은 아침저녁 포도밭을 둘러보다 하나둘 색깔이 나기 시작한 포도 앞에서 수확의 기쁨을 미리 맛보기도 한다. 올해는 봄날 고온 탓인지 마을 곳곳에서 "포도색이 벌써 왔어"라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농부들의 표정은 예년과 달리 어둡기만 하다.

1년 사계절의 정점인 한여름에 들어선 농촌의 색깔은 수채화를 펼쳐 놓은 듯 시리도록 푸르다. 이삭거름을 듬뿍 먹은 논 위의 모들은 시퍼렇게 커가고, 산과 들의 나무와 풀들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대지를 뒤덮어버리고 있다. 가뭄의 고통과 단비의 축복 속에 밭작물들도 서서히 붉은 색을 띠며 열매의 향기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듯 자연은 만물과 함께 생명의 기운을 만끽하지만 땅 위에 발 딛고 선 농부들의 얼굴엔 날이 갈수록 그늘이 짙어만 간다.

올해로 귀농한 지 8년차,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이지만 아직도 스스로 농부라고 하기엔 깊은 맛이 나질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른 직업 없이 부부가 농사만 지어 다섯 식구가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귀농 5년 되던 해에 가까스로 경제자립의 꿈(?)을 다졌다. 하지만 두 딸을 대학 보내느라 힘에 부치는 터에 지금 농촌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이제는 하늘과 땅이 내 눈에 익숙해진 경북 상주시 화서면. 해발 320미터 백두대간이 지나는 준고랭지인 이곳은 드넓은 논밭을 중심으로 벼농사, 곶감 농사 외에 포도와 오이 농사로 전국에서 명성을 떨치는 곳이기도 하다. 일교차와 토양 여건상 캠벨포도는 전국에서 고품질 포도로 인정받으며 농가 소득에 혁혁한 기여를 해주었고, 한여름 땀 속에서 단기간에 짓는 오이 농사 역시 고소득을 올리게 해주는 효자품목이다.

여기서 태어나 평생을 농사만 지어온 박아무개(61)씨는 이렇게 말했다.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지만 포도 덕에 그래도 이렇게 여유 있게 살지, 그 전엔 다 힘들었어. 돈은 많이 벌어도 인심은 옛날보다 훨씬 더 나빠졌어. 옛날엔 서로 어울려가며 일 좀 더 해주고 막걸리 한잔 얻어먹고 그랬는데, 그 인심은 개가 물어갔는지…."

개가 물어간 게 아니라 사실 괴물 같은 돈이 물어간 농심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해마다 줄어드는 논... 돈 안 되는 쌀농사 포기할 수밖에

하나둘씩 해마다 푸른 논이 포도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 논과 포도밭 하나둘씩 해마다 푸른 논이 포도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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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가격이 상한가를 치면서 많은 농부들이 논과 밭을 포도 과수원으로 전환하고 있다. 시설비와 투자비용 등 단일품목의 집중에 대해 주변의 우려도 있지만 그래도 쌀농사보단 낫다면서 평당 약 1만5천 원의 시설비를 투자하여 포도 농사로 바꾸는 실정이다.

평당 4천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는 쌀농사의 경우, 종자, 비료, 인건비, 기계 사용비 등을 감안하면 1만 평을 지어야 2천만 원 정도 남는다고 보면 된다. 논농사는 갈고 심고 수확하는 데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 등의 기계가 필요한데, 기계 값만 해도 1억 원을 훌쩍 넘어선다. 소농의 경우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럼에도 쌀농사는 농사의 근본이요 식량주권의 마지막 보루이자, 생태 자연환경을 지키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 세계 자유무역의 파도 속에서 역대 정부에서 겨우겨우 지켜온 쌀 개방 문제를 박근혜 정부는 무 자르듯 개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농민들은 반발했고 국민들도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5천 년 농업의 역사가 바람 앞의 촛불이 되고 만 것이다.

태풍이 오기 전에 하늘은 이미 징조를 보여준다고 했던가. 올해 들어 참외 가격의 하락을 시작으로 양파, 마늘 가격의 폭락, 근근이 지탱해오던 쌀값 하락에 올가을 농산물 가격도 최저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상 등이 농부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젊은 나이에 아내와 자식 셋을 데리고 귀농한 김아무개(40)씨는 포도와 오이, 곶감 농사를 지으며 쉴 새 없이 농사에 전념하고 있다. 포도 농사의 바쁜 일손을 내려놓기도 전에 들어가는 오이 농사는 무더운 여름날 그야말로 숨 가쁘게 지어야 하는 고된 농사 중의 농사다. 젊어서 조금이라도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고생을 마다 않는 김씨 부부는 올해 고온으로 인한 질병, 수확 부진에 가격까지 폭락하면서 땀에 젖은 얼굴로 한숨만 내쉬고 있다.

그 와중에 수천 년 농업의 마지막 명줄을 끊어버릴 한중 FTA가 밀물처럼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아무 생각 없이 카톡으로 받아본 한중 FTA 회담 현장 사진, 격렬하게 반대하는 농민단체들 사진…. 세월호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내 자신 역시 '앗차' 하면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농민에겐 재앙과도 같은 일이 또 다시 슬그머니 진행되고 있는데, 정작 농부로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나라에서 밀어붙여서 안 되는 일이 없어"... 체념과 한숨만 가득

마을 주민들이 어울려 올해 모판작업을 하면서 즐거운 웃음을 짓고 있다. 이 웃음이 불안해지는 시대다.
▲ 모판작업 마을 주민들이 어울려 올해 모판작업을 하면서 즐거운 웃음을 짓고 있다. 이 웃음이 불안해지는 시대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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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FTA가 체결되면 농사짓기는 거의 끝장이라는 것을 농부들은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체념과 순응에 익숙해진 가슴앓이는 한숨만 더할 뿐이었다. 얼마 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농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모두 50~60대 장년층으로 농사로 잔뼈가 굵은 농부들이다.

"한중 FTA 되면 앞으로 농사 10년 안에 거의 절딴날 겁니다."
"지금까지 나라가 밀어붙여서 안 된 일이 없었어."
"한 몇 년 보상이니 뭐니 해주는 척하다가 나중엔 농민들만 죽어나겠지 뭐."
"내야 이제 한 10년만 더 농사지으면 끝이지만 나중 사람들이 걱정이네."
"정미소 쌀 가격이 16만 원도 겨우 나온다는데, 나락은 받지도 않는다고."
"어떻게 살 길이 있겠지, 휴~."

한중 FTA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아는 농민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TV 정도를 통해 얻는 지식이지만 값싼 외국산 농산물이 대량으로 들어오면 앞으로 농사는 끝장이라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다만 어떻게 이 변화에 맞서 살아나가야 될지에 대해서는 그저 막막하고 고심만 깊어질 뿐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고소득 작물이 많아 '귀농 1번지'로 불리는 상주, 그 중에서도 귀농귀촌자의 발길이 더욱 잦다는 화서면 지역도 농산물 가격 하락과 한중 FTA의 파고 앞에서 결코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삶의 대안을 찾아온 귀농이었지만 이미 자본의 물력이 곳곳에 스며든 농촌이었다. 대부분 귀농자의 머릿속에도 소박한 삶이나 자급자족 같은 가치는 온데간데없고, 특작물에 고소득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런 귀농은 매우 위험하다. 땀 흘린 만큼 버는 농사에, 요행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일부일 뿐이지만 도시인이 소박한 삶을 찾아 귀농을 하듯, 시골사람도 다시 옛날의 농심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앞으로 다가올 경제상황의 변화에 그나마 무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수백 명의 목숨이, 그것도 채 피지도 못한 학생들이 죽어가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던 세월호 참사. 그날 이후 가슴 한 쪽에 덩어리처럼 뭉쳐진 속앓이를 풀기 위해 서울도 몇 차례나 다녀온 내게 귀농 후배가 한마디 던진다.

"형님, 세월호도 중요하지만 농부인데 한중 FTA도 신경 좀 쓰시죠."


태그:#귀농, #농산물가격, #한중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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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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