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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을 걷노라면, 거리에 온통 붙어있는 'GUINNESS'에 눈이 간다. 술집, 레스토랑마다 간판처럼 달려있는 문구 때문에 순간 프렌차이즈인줄 알았다.

여느 발견이 그렇듯, '잠자는 사이 우연히' 맥주를 태운 데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흑맥주 기네스. 술을 좋아하는 아일랜드 인들에게 기네스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술이자 오랫동안 가난한 삶과 고달픈 노동을 이겨내는 힘이었다. 이 기네스를 제조하는 공장 옆, 자그마한 창고를 헐어 만든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를 찾았다.

우리가 머무는 스미스필드에서 리피 강을 건너 와틀링 스트리트를 걷다보면, 맥주를 발효하는 시큼한 효모냄새가 동네 가득 취할 듯이 코를 찌른다. 13.5유로의 입장료, 한 잔의 기네스 시음권. 거대한 맥주 컵 모양을 닮은 내부를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기네스에 쓰이는 재료, 특유의 제조 방법과 공정, 260년의 역사를 차례로 만날 수 있었다.

기네스, 맥주 공장 45파운드로 9000년간 임대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 앞에서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 앞에서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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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어하우스의 시작, 기네스의 시작은 그라운드 플로어 바닥에 박혀있는 라틴어 계약서이다. 1759년 더블린의 골칫거리였던 폐 맥주 제조 공장을 아더 기네스가 45파운드의 사용료로 무려 9000년간 임대한다.

이곳 사람들은 이 계약서를 '술에 취하지 않고서야 쓸 수 없는 계약서'라고 농담하던데 정말이지 싶다. 하지만 당시 아더로서는 4에이커의 부지와 공장을 푼돈으로 얻은 것이 횡제였고, 더블린 시로서는 늪지대의 폐공장을 돈을 주고 임대한다니 덥석 9000년을 계약할 수밖에.

계약을 체결한 후, 아더 기네스는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St. Jamess's Gate Brewery)'을 세워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재료는 볶은 보리, 호프, 이스트, 물 네 가지. 바로 이 맥주, 기네스가 현재 150개국 이상에서 하루에 1000만잔 이상이 팔리는 세계적 상품이다.

지상층. 기네스가 만들어지는 리피 강의 물, 호프 등을 직접 만지고 볼 수 있다. 볶은 보리를 한 줌 집어 맡아보니, 어디선가 맡아 본 냄새, 바로 동네 가득 풍기던 술향기다. 기타 첨가물을 추가하지 않은 보리 발효주 기네스. 구운 보리를 사용했기에 검은 색깔을 띤다. 이전에는 맥주의 발효를 장인들의 감에 의존했는데, 기네스는 업계에서 최초로 수학자를 고용해 수치를 정확하계 계산하고 연구해 맛을 향상시켰다고 한다.

맥주를 발효하면서 얻은 자료들과 연구들은 현대 통계학에서 중요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한다. 어디서나 무엇이든 열심히, 집중해서 꾸준히 하는 것들은 경계를 넘어 여러 분야에서 빛을 본다.

1층에는 맥주를 담던 오크통을 만드는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한쪽 벽에 전시되어 있는 도구들-끌, 망치, 철사와 곡괭이등-을 사용해서 판자 하나하나를 맞추고, 자로 재며, 손으로 하나하나 깎는 모습의 영상이 흐른다. 마치 옷처럼, 으레 보던 물건들이 하나하나 오랜 시간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졌음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놀랍다.

기네스, 제일 맛있게 먹는 법은?

오크 통 앞에서
 오크 통 앞에서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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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에는 기네스 아카데미 하우스가 있다. 이곳에서는 기네스  따르는 법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기네스는 제조법 만큼이나 마시는 법도 특이하다. 캔에 들어있는 상태로 마시면 맛이 가라앉거나, 붕 뜬 느낌이 있기 때문에 꼭 컵에 따라 마셔야 맛이 풍부해진 최상의 기네스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먼저 1차로 한 번 컵을 45도로 기울인 채로 80%정도를 따른 후 2분정도를 기다리자. 기네스의 독특한 맛을 만드는 2분을 기다리며 거품이 조금 진정되면 다시 조금 더 따라 잔을 가득 채우면 된다. 거품이 컵 속에서 아래로 흐르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폭포를 보는 듯하다. 직원이 바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국적을 묻는다.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영국, 같은 아일랜드 등.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들이 선뜻 나서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자기들이 마실 기네스를 따른다. 나도 손을 들었다. 아, 만 열여섯이면 이곳에선 맥주를 마시는 게 가능한데 가족할인티켓을 끊은 터라 신청자격이 안 된다.

아쉽다. 어머니 아버지가 기네스를 따른 후 '기네스 아카데미 수료증'을 받는다. 맥주 한 번 따르는 것 치고는 거창한 수료증이 나온다. 부모님이 직접 따른(?) 맥주를 얻어 마시니 쌉쌀하고 깊은 맛에 기분이 좋다. 엄마 아빠가 딴 데 보는 사이 얼른 한 모금 더 들이킨다.

다음은 시음관. 네 가지 발효의 향기를 맡으며, 마시는 방법을 소개받았다. 단순히 술을 파는 것이 아닌, 하나의 문화를 판다는 기네스의 철학의 개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념품점에 들른 아빠의 한마디.

"이 사람들은 이거 하나 만들어서 술도 팔고, 티켓도 팔고, 기념품도 파네."

거리에 기네스 간판이 즐비하고, 음식 메뉴에는 꼭 기네스가 붙어있는 요리가 있고, 기념품 가게에는 기네스 관련 기념품이 있다. 나라가 온통 기네스로 도배되어 있다. 기네스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문화에 녹아내려 있다. 심지어 국가의 상징으로까지 존경받는 기네스. 단지 기업일 뿐인 이들이 어떻게 이런 위치에 있을까. 아더 기네스의 갤러리와 3층의 전시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전 세계적으로 같은 맛을 내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캔에서도 통맥주와 같은 맛을 내기 위한 질소 발생기 '플라스틱 볼'의 사용부터 수출과정에서의 섬세함까지 신경을 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더 나은 제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장인정신을 느꼈다.

기네스의 경쟁력, 어디에서 올까?

기업 내에 의료진을 배치해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 대한 치료를 기업에서 최초로 해결했고, 1800년대 중반에 이미 복지를 개선하는 담당자가 있어 직원들의 가정을 방문, 환경이 열악한 직원들을 조사하고, 그들을 위해 직접 주택을 지어 이주하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여러 공익사업들과 자선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는 기네스. 착한 기업을 일찍이 실천했다고 할 수 있겠다.

뭐, 자신들은 기네스 성공과 인기의 비결이 단지 '밀도 높은 거품' 때문이라고 하는데, 홀짝 한 모금 마신 기네스의 맛으로 보아 이들의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아무리 여러 마케팅을 선보였다 할지라도 기본적인 기술과, 일찍이 제조 방법에 대한 합리적인 연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이런 인기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기초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의 원천인 셈인데, 그 기술은 결국 사람의 역량에서 나온다. 경쟁력을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와 교육, 훈련을 아끼지 말아야 좋은 노동력이 나오는 법. 결국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이들의 '탄탄함'의 비결이 아닐까.

우리는? 똑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도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다른 월급봉투를 받는다. 같은 '현대' 옷을 입고 같은 자동차를 조립하면서 누구는 통근버스를 타고, 누군가는 타지 않는 나라다.

학교에서는 대놓고 돈의 우월성을 가르치는 나라. 각도를 맞춰야 에어백이 터진다는 자동차, 6개월이면 버벅대는 플라스틱 스마트폰을 보며, 우리들이 조금 더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했더랬다.

우리 세대는? 친구들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었다. 열에 아홉은 '돈 잘 버는 직업'이란다. 우리들에게 직업과 진로, 꿈은 돈으로 등급이 매겨져 그 속에서 선택권이 주어질 뿐이다. 어느 기업에서 한 사람의 경제적 가치를 3000만 원으로 매겼다던가. 노동의 가치가 단지 돈으로만 환산되어지는 그런 사회에 우리가 있다.

이 건물의 맨 꼭대기 층. 기네스 맥주를 파는 스카이라운지가 자리 잡고 있다. 먼 곳에서 온 많은 이들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한 잔 부딪히는 소리가 섞인다. 더블린을 한 눈에 내려다 보는 통유리 창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본다. 효모의 향에 한껏 취하는 좋은 시간이다.

스카이 라운지에서
 스카이 라운지에서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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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기네스, #아일랜드, #아일랜드 여행, #기네스스토어, #기네스스토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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