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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섬을 잇다>의 표지.
 <섬과 섬을 잇다>의 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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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뜬금없이, 회사에서 나를 부당하게 해고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심정일까. 조용하던 마을에 갑작스럽게 송전탑이나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통보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심정일까. 기업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당장 살던 지역이나 일하던 곳을 떠나라는 말에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섬과 섬을 잇다>는 한국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기투쟁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재능교육이나 코오롱,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면서는 교묘한 편법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이득을 챙기는 회사를 폭로한다. 콜트·콜텍과 쌍용자동차 사태에서는 실제와는 다르게 고용주가 경영악화를 핑계로 직원들을 한순간에 실직자로 만들고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의 상황도 닮아있다. 자연을 벗삼아 평화롭게 살아가던 마을에 해군기지와 송전탑을 건설해야 한다며 건설기업과 한전이 들이닥친다. 정작 해군기지를 해당 마을에 지어야만 하는 정당성은 없어보이고, 송전탑 건설경로는 유력인사의 집은 피해간다. 이에 주민들이 반발하자 수백명의 경찰 병력이 나타나서 강제로 밀어낸다.

고 이치우 어르신 삼형제의 땅에 세워질 송전탑은 원래의 경로를 이탈한 것이었다. 일직선으로 가던 송전탑 경로가 갑자기 'ㄷ'자로 꺾였다. 직선으로 갈 경우 하나면 되는 송전탑이 3개나 더 필요했다. 송전탑 하나를 세우는데 35억이 든다면서 경로를 우회해달라는 마을 주민들의 요청을 뿌리친 한전이었다.

소문이 돌았다. 원래 송전탑이 가야 할 부지에 당시 밀양시장 조카 소유의 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송전탑은 국회의원, 기업인, 재단의 소유지에는 세워지지 않는다. 남의 논 한가운데도 세워지는 송전탑이 그런 땅은 잘도 피해갔다. 언제나 그렇듯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사람들은 늘 정해져 있다. (본문 81쪽 중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은, 오로지 힘없는 서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수십년 전에 '경제개발'이 최우선 목표였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지금은, 정부가 자랑스럽게 'G20' 강대국 못지 않은 선진국이 되었다고 광고하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섬과 섬을 잇다>는 그런 부당함에 맞서, 권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개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화와 글로 엮은 장기투쟁 현장 이야기

<섬과 섬을 잇다>는 한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기투쟁 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코오롱, 밀양 송전탑, 쌍용자동차 사태, 현대차 비정규직, 재능교육, 콜트·콜텍, 제주 강정마을까지 총 7가지 사건을 직접 겪고있는 사람들의 사연들이다. 각 이야기마다 한 명은 글로, 다른 한 명은 만화로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인 쟁점과 자세한 심정을 엮었다.

재능교육의 경우에는 회사 측이 학습지교사를 고용하면서 '개인사업자'로 계약하도록 하여 기본급조차 지급되지 않는 특수한 고용형태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해당 교사들은 일을 하는 노동자이면서도 제대로 된 월급조차 받지 못하고 주말과 밤까지 초과근무까지 하면서 혹사당한다. 정작 사측은 고용부담이 없는 상태로 임금 지급을 줄였고, 많은 이익을 남기면서도 한 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꼼수' 계약이었던 셈이다.

콜트·콜텍의 사례도 충격적이다. 세계적인 뮤지션까지 사용할 정도로 품질 좋은 기타와 악기를 생산하던 건실한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노동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한다.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점유할 정도로 수출을 많이 하며 IMF 때에도 큰 이윤을 내던 회사였다. 한 해 100억이 넘는 순이익을 낸 적도 있고, 매년 수십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던 콜트·콜텍이 어느날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자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버린 것이다.

그 열악한 근무환경이란 "일하는데 딴 생각 말라"며 창문조차 만들지 않은 작업장과 냄새 지독한 화학약품, 일하는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임금이었다. 이런 요건들로 인해 일하던 이의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도 발생했으나, 다친 노동자는 별다른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정규직과의 차별대우에 맞서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다. 본문에 따르면 정규직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되는 임금을 지급하고, 직장 내에 비정규직을 무시하는 태도가 만연했으며, 정규직의 방패막이 삼아 비정규직을 대거 정리해고했다. 소속만 현대차 내부 하청업체에 속해있을 뿐, 업무는 정규직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부당한 정리해고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이에 항의한 것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하다가 경찰병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고 회사에 입힌 손해가 크니 거액을 배상하라는 판결까지 받았다. 경영악화를 이유로 수천 명을 정리해고 한다는 방침을 밝힌 회사는 회계조작으로 위장했을 뿐, 실제로는 재정에 큰 문제가 없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을 나올 정도로 충격이 컸던 쌍용자동차 사태는, 진압과정의 잔인함도 문제였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압박감에 시달리다 25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기도 하다.

섬이 되어가는 이웃들, 우리가 지켜야 한다

길게는 10년 가까이 불공정한 처사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사람들. 책을 읽어보면 그들이 단지 특이한 사람이라서 길고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독종이라서 오래 싸우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가 될만한 대단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평범하고도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이웃이며 하루하루를 웃고 울면서 힘겹게 이어가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본문에서 인터뷰하고 기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시 일할 수 있게 해달라", "이 곳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외칠 따름이다. 평생 살아온 작은 마을, 젊은 시절의 열정을 바친 일터에서 앞으로도 지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바람을 무참히 짓밟는 권력의 주장은, '효율'이라는 이름의 이기주의로 수렴된다. 생명과 노동의 가치보다 돈과 다수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요소들은 서로 양립되지 않는 것이고,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할 수 있는데도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다른 방안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그런 부당함을 그저 참거나 피하지 않고 싸울수록, 힘겨운 투쟁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점차 더 고립된다. 언론과 대중은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을 잃어가고, 사법체계는 때로 그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점차 더 가난해지고 생계가 어려워지며 결국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찾아온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마치 하나의 외로운 '섬'이 되어가는 것이다.

조금만 살펴보면, 이런 사건들이 언제든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사회가 이 사안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여기는 분위기를 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아직 당하지 않았을 뿐, 또 다른 누군가가 희생되더라도 쉽게 '타인의 일'로 치부되고 무시될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처럼, 지금부터라도 섬과 섬을 이으려는 노력을 다 같이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비록 개인은 나약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권력을 가진 대기업과 정부일지라도 함부로 강압적인 태도를 고수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섬이 되어가는 이웃을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도, 바로 작은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외로운 싸움을 돕는 작은 발걸음은, <섬과 섬을 잇다>를 읽고서 어떠한 일들이 우리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으로 시작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섬과 섬을 잇다> (이경석·이창근·유승하·하종강 외 씀 | 한겨레출판 | 2014.5. | 1만5000원)



섬과 섬을 잇다 - 여전히 싸우고 있는 우리 이웃 이야기

하종강 외 지음, 한겨레출판(2014)


태그:#섬과 섬을 잇다, #제주 강정마을, #쌍용자동차 사태, #밀양 송전탑, #현대차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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