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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국정조사에 맞서 '대선 불복' 보호막 친 청와대

2013년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영상 4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가 연이어지는 가운데2013년 여름의 정국은 국회의 국정원 국정조사(아래 국조)로 달구어졌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순탄치 않으리라는 조짐은 국정원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아래 국조특위) 첫 회의가 열린 7월 2일부터 나타났다.

이날 회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인 김현·진선미 의원에게 특위에서 빠지라 요구하며 중간에 퇴장해버려 파행을 겪었다. 김현·진선미 두 의원이 '국정원 여직원 인권침해 의혹'으로 새누리당에 의해 고발된 상태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정문헌·이철우 의원이야말로 제척(除斥)사유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7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자체'개혁을 주문했다. 이는 사실상 대선개입·2차 남북정상회담록 무단공개 등 그간 국정원이 보여준 행태들을 용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 나아가 이 발언은 국회 차원의 국정원 개혁에는 반대하겠다는 뜻으로서 결국 국정조사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틀 뒤 국정원이 자체개혁 방향을 밝히면서 2차 남북정상회담록의 내용이 엔엘엘 포기라고 재차 강변한 것도 이러한 박 대통령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이날 국정원 자체개혁을 주문하며 "남북대치"를 운운하였고, 국정원은 북을 '적'으로 칭하였다. 북의 존재를 근거로 자신들의 반(反)민주행위를 정당화하는 언술이었다. 국조가 무력화될 것임은 이미 이때부터 예고되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발언 다음날, 새누리당 정문헌·이철우 의원이 돌연 국조특위 위원을 사퇴하는 선수를 쳐 야당을 압박했다. 이는 민주당의 김현·진선미 두 의원의 사퇴를 겨냥한 행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국정원 국정조사 기한이 8월 15일까지임을 악용한 의도적인 '지연 전략'이기도 했다.

또한 이 무렵 국가기록원 회담록 열람이 정국의 이슈로 부상하면서 국정원 국정조사는 묻히고 있었다. 새누리당의 물타기 전략이 민주당의 실책과 맞물리며 성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속에서 새로운 국면이 빚어졌다. 7월 12일 오전,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전날의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을 꼬투리 잡아 총공세에 나섰던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도전한 것"이라며 이를 '대선 불복'이라 규정했다. 동시에 새누리당은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며 시간을 끌었다.

청와대의 논리대로라면 국정원의 대선개입 진상을 규명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대선불복 프레임은 정권 퇴진, 재선거 요구 등을 원천 차단하는 구도를 창출해내는 데 효과적일 수 있었다. 이때 청와대가 꺼내든 대선불복 프레임은 2013년의 정국이 '긴 18대 대선', 즉 '18대 대선의 연장상황'으로 접어들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귀태 발언이 처음 나온 시점은 11일 오전이라는 사실이다. 즉,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귀태 발언 당일에는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다가 다음날 오전에야 일제히 들고 일어나 총공세 태세로 돌입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행태가 국조를 파행으로 이끌기 위한 의도된 꼬투리 잡기였음을 시사한다(<아시아경제>, 2013. 7. 12).

결국 민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의 성사를 위해 홍익표 원내대변인을 사퇴시키라는 여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럼에도 국조는 정상적으로 진척되지 않았다. 특히 7월 15일부터 여야의 2차 남북정상회담록 열람이 시작되면서 국정조사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끝내 이틀 후 민주당의 김현·진선미 두 의원은, 국정조사 특위 위원을 전격 사퇴함으로써 국정조사를 성사시키고자 하였다.

민주당, 양보에 양보 끝에 장외투쟁 선언

두 의원의 전격 사퇴로 일단 국정조사의 물꼬는 트였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7월 24일 법무부 기관보고를 시작으로 겨우 재가동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이 시기 수세에 몰렸어야 할 새누리당이 역설적으로 그리고 적반하장격으로 정국주도권을 장악했음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이무렵 새누리당의 의도적인 지연 전략과 함께 '2차 남북정상회담록 실종' 사태가 맞물리면서 국정조사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7월 22일 국가기록원에 회담록 원본이 없다는 사실이 확정되고, 새누리당이 참여정부가 의도적으로 회담록을 폐기했다며 문재인 의원 책임론을 거론됐다. 이러한 상황은 장기화될 조짐을 보였다. 3일 뒤 새누리당은 문재인 의원 등 참여정부 관련자들을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대거 고발했다. 새누리당의 회담록 동원을 통한 '물타기' 작전은 여전히 유효했다.

이런 속에서 이 무렵까지 여야 사이에는 국정조사와 관련한 청문회 일정, 증인과 참고인 채택 등 어느 것 하나 합의된 것이 없었다. 7월 25일에 열린 경찰청 기관보고에서는, 민주당 측이 경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증거 은폐 영상을 공개했던바, 이에 새누리당 위원들은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이성한 경찰청장을 옹호하고 집단퇴장을 반복했다.

아울러 이날 새누리당 특위 위원들은 원세훈·김용판에 대한 검찰 기소가 부당하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검찰 출신인 권성동·김도읍 의원 등은 "검찰에 실망했다, 참으로 의심스러운 수사 결론이다, 법 적용이 잘못됐다"라고 검찰에 맹공을 퍼부었고, "국정원의 댓글작업은 정상적인 업무이며 교묘한 댓글은 장려해야 할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김진태 의원은 부장검사 시절 후배였던 수사 주임검사의 운동권․진보단체 활동 전력을 거론하며 검찰에 대한 '색깔론'까지 제기했다. 또 같은 당 김태흠 의원은 "댓글 의혹 사건은 민주당이 공작한 제2의 병풍 사건"이라고 규정했고 이장우 의원은 "이번 국정조사는 민주당 친노세력이 계획하고 짜맞춘 웃기는 코미디"라고 비난했다.

이 무렵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결국 그것의 실체는 한국사회에서 보수적 사회집단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검찰이 졸지에 색깔론으로 몰리고, 국외 정보활동에 주력하며 국가안전을 챙겨야 할 국정원이 '교묘한 댓글활동'을 정상적인 업무로 여당의원에게 공인받는 '정상의 비정상화'였던 셈이다. 또 여당의원들의 이러한 발언은 여당 의원들 스스로 행정부와 국정원을 견제해야 하는 의회의 기능과 역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어 7월 26일에 예정된 국정원 기관보고에는 아예 국정원장과 새누리당 위원들이 불참해버렸다. 이때 새누리당은 국정원 기관보고 비공개 실시를 고집했다. 이로써 기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국정원 국정조사는 무력화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새누리당이 노린 것 역시 이것이었다.

결국 이틀 후 민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의 지속을 위해 다시 한 번 양보하게 된다. 새누리당의 주장을 전면 수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정원 기관보고를 8월 5일 전면 비공개 진행하며 증인·참고인에 대한 청문회는 이틀간만 실시하고, 국조 기한 3일 전에 결과보고서를 채택한다는 여야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때 국정조사 기한이 20일도 남지 않았음에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날이 더운 휴가철에 특위를 열 수 없다는 '기상천외'한 이유로 국정원 기관보고를 8월 5일로 주장해 관철시켰다. 나머지 사항 역시 사실상 국정원 국정조사의 무력화를 웅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다만 양당은 8월 초 국조 기한 1주일 연장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8월 초 청문회 개최를 위해 7월 31일까지는 마무리되어야할 증인·참고인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 대립이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이번에도 김현·진선미 두 의원을 걸고 넘어졌다.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혐의로 고발된 두 의원도 증인으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더 이상 몰릴 곳이 없던 민주당은 8월 2일, 원내외 병행투쟁을 선언하고 사실상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다만, 이후 여야 간 물밑 접촉이 진행된 결과 8월 7일 증인 채택이 마무리됐다. 그 결과 역시 새누리당의 주장이 관철된 것이었다. 즉, 민주당은 원세훈·김용판과 김무성·권영세를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의 강한 반대로 결국 김무성과 권영세는 국정조사 증인에서 제외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야당인 민주당이 국정원 국정조사의 성사 혹은 지속을 위해 여당에 대해 양보의 양보를 거듭하면서 국정원 국정조사 시도는 역설적이게도 새누리당의 정국주도권 장악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결국 국정원 국정조사는 출발부터 무력화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노컷뉴스>, <아시아경제>

민주당, <민주당 국정원국정조사 대국민보고서>, 2013.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박근혜 정권 1년 失政 보고서>, 2014.



태그:#국정원 국정조사, #새누리당, #민주당 장외투쟁, #정상의 비정상화, #대선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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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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