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율형 사립고가 기로에 섰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달 13일까지 서울시 자사고 25곳 중에서 2009년에 설립된 14개 고교에 대한 재지정 평가 결과를 내놓는다. 결과에 따라 14곳 모두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 '일반고 슬럼화' 등을 야기한 자사고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고 있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곧 칼을 빼들 것으로 보인다. 자사고 들어선 뒤 교육환경이 뒤틀린 지역 사회를 취재한 현장 기사와 일반고·자사고 교장 인터뷰를 통해 자사고 현 상황을 점검해본다. [편집자말]
울시교육청이 사실상 자율형 사립고 폐지 수순에 들어가면서 서울지역 자사고교장연합회가 공동대응에 나서며 양측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반고로 자진 전환하는 자사고를 '서울형 중점학교'로 지정하고 5년간 최대 14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울시교육청이 사실상 자율형 사립고 폐지 수순에 들어가면서 서울지역 자사고교장연합회가 공동대응에 나서며 양측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반고로 자진 전환하는 자사고를 '서울형 중점학교'로 지정하고 5년간 최대 14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서울의 한 일반계 공립고등학교(이하 A고)의 이형우(가명) 교장은 올해 첫 출근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결재 서류를 잊지 못한다. 이 학교의 신입생 10여명이 인근의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로 전학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교장은 학교에서 하루도 생활하지 않은 신입생 10여명을 자사고로 떠나보내야 했다. 이들은 중학교 때 내신 성적 상위 20% 이내에 든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이형우 교장은 24일 A고 교장실에서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최근 일반고 황폐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자사고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학교 구성원의 자존감 하락을 막기 위해 자신의 이름과 학교명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교장은 "지난해 자사고 신입생 모집 때 지역 내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자사고로 빠졌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자사고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우수한 학생을 또 데려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30명으로 이뤄진 한 반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겠다는 학생은 5~6명에 불과하다"면서 "나머지 학생들은 공부에 관심 없다, 자는 학생들이 많다, 교사들이 포기하는 상황에 이른다"고 말했다. "특목고는 1류, 자사고는 2류, 일반고는 3류라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면서 "학생들의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사고가 일반고 황폐화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 교장은 "일반고 황폐화는 대학입시제도에 따른 고교 서열화, 아이들의 행복은 고려하지 않고 서울대에 많은 학생을 보내는 고등학교만 선호하는 학부모 마인드, 자사고로 인한 문제가 합쳐져 생긴 것"이라면서 "대입 제도나 학부모의 마인드를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자사고 정책 전환을 통해 일반고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이 교장은 자사고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만약 당장 자사고를 폐지하기 어렵다면, 학생선발권과 교육과정편성 자율권과 같은 특혜를 없애야 한다"면서 "자사고는 처음부터 좋은 학생을 뽑아갈 생각을 하지 말고, 학생을 어떻게 더 잘 가르칠지에 대해 일반고와 경쟁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그는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해서 일반고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반고에는 공부에 뜻이 없고 직업학교를 원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 학생들의 소질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공부하려는 학생들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자와 이형우 교장의 인터뷰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한 반에 대학가겠다는 학생은 대여섯명... 교사도 포기"

- 자사고가 일반고의 우수한 학생들을 빼간다는 비판이 많다. A고는 어떤가.
"올해 첫 출근 때, 결재 서류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살펴보니, 우리 학교 신입생 10여명이 인근의 자사고로 전학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중학교 때 내신 성적 상위 20% 이내에 든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이미 지난해 자사고 신입생 모집 때 지역 내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자사고로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자사고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우수한 학생을 또 데려간 것이다."

- 결국 자사고와 일반고의 격차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적 상위 50% 이내 학생만 자사고에 지원할 수 있다. 상위 30% 밖의 학생들은 자사고에 합격해도, 경쟁에 밀려 일반고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배려대상자로 입학한 학생들도 못 버티고 나온다. 빈 자리가 생기면, 자사고는 일반고에 다니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자사고로 올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자사고는 수시로 전입학이 가능하다는 특혜를 받고 있는 탓에, 우수한 학생을 수시로 흡수하고, 우수하지 않은 학생을 내보낸다. 격차가 더 커진다."

- 일반고의 수업 분위기는 어떤가.
"한 반에 30명의 학생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겠다는 학생은 5~6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학생들은 공부에 관심 없다. 자는 학생들이 많다. 교사들이 포기하는 상황에 이른다. 교사들이 방과 후 자율학습을 할 학생들을 모집했더니, 전교생 800명 중에서 110여명이 신청했다. 이마저도 교사들이 노력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60여명에 불과했다. 일반고에서는 학력 저하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 학생들의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을 것 같다.
"'특목고는 일류, 자사고는 이류, 일반고는 삼류'라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요새는 전문계고·특성화고(옛 실업계고)도 많은 학생을 대학에 보내기 때문에, 이러한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일반고로 온다. 이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 학교시설이나 교사들 수준은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뭔가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학생들의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자사고 쪽은 우수한 교육과정을 통해 좋은 대입 성적을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똑같은 성적의 학생들을 입학시킨 후 우수한 대입 결과를 내놓아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나. 자사고에는 성적 하위권 학생들이 없으니까 수업 분위기가 좋다. 또한 자사고는 교육과정편성 자율권을 갖고 있다. 일반고는 전체 수업에서 국·영·수 과목을 50% 이상 편성하지 못하지만, 자사고는 가능하다. 70% 이상 편성하는 곳도 있다. 사실상 입시학원으로 변했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대입 성적이 3배 좋아진 것도 아니다. 학부모들이 일반고의 3배가량 되는 학비를 내는 게 아깝지 않겠나."

"자사고는 고교서열화·일반고 황폐화의 촉매제"

- 자사고가 일반고 황폐화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고 황폐화는 대학입시제도에 따른 고교 서열화, 아이들의 행복은 고려하지 않고 서울대에 많은 학생을 보내는 고등학교만 선호하는 학부모 마인드, 자사고로 인한 문제가 합쳐져 생긴 것이다. 대입 제도나 학부모의 마인드는 당장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자사고 정책 전환을 통해 일반고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 자사고 교장들은 자사고가 고교 다양화라는 설립 목적에 따라 운영되고 있고, 일반고 황폐화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사고가 만들어질 때, 교육다양성 부족과 획일화라는 고교평준화의 단점이 부각됐다. 하향 평준화됐다는 얘기다. 정부에서는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사고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교육과정편성 자율권을 줄테니, 건학 이념에 맞게 다양한 교육을 하라는 주문이었다. 수월성 교육에 대한 일부 학부모들의 욕구도 감안된 것이다. 하지만 자사고는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교육에 열을 올렸고, 자사고는 고교서열화와 일반고 황폐화를 가속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만약 당장 자사고를 폐지하기 어렵다면, 학생선발권과 교육과정편성 자율권과 같은 특혜를 없애야 한다. 자사고가 좋은 학생을 데려갈 생각을 하지 말고, 일반고와 같은 수준의 학생을 뽑아 어떻게 더 잘 가르칠지 일반고와 경쟁을 해야 한다. 자사고가 불평등하게 좋은 학생을 뽑아놓고 '우리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화된 것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자사고를 폐지한다면, 일반고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는 교실을 깨우고 수업을 활성화시키려면, 수업 방법이 개선돼야 한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교실을 주도해야 한다. 일반고의 설립 목적은 상급학교로의 진학이다. 일반고에는 공부에 뜻이 없고 직업학교를 원하는 학생들 있다. 이들 학생들의 소질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공부하려는 학생들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 일반고에서 직업학교를 원하는 학생들은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나.
"그렇다. 중학교 때 내신 성적 70% 하위의 학생들은 전문계고나 직업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3학년 때 작업학교 위탁교육을 시킨다. 하지만 60여명의 지원자 중에서 출결이 좋은 20여명만 혜택을 받는다. 결국 나머지 학생은 고3 교실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다. 당장 예산 때문에 직업학교를 지을 수 없다면, 특성화고나 전문계고가 이들 학생을 더 많이 받아안아야 한다. 예체능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있다면, 거점학교를 활용해 이들 학생을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

- 혁신학교가 일반고 활성화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조적으로 대학입시를 개편하지 않는 이상, 고등학교를 혁신학교로 운영하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다. 혁신학교는 입시교육만 하지 말고 창의적인 교육을 하자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현재와 같은 입시제도에서는 국·영·수 중심의 교과 위주로 편성할 수밖에 없다. 교과서 진도에 얽매이지 않도록 자율권을 준다 해도, 교사는 대학입시 출제범위까지 가르쳐야 한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는 학부모가 다수인 이상, 수업 진도를 안 나갈 수가 없다. 성공적인 곳도 있지만, 이를 일반화시키기는 어렵다."


태그:#자사고는 일반고 황폐화의 주요한 원인
댓글2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