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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피서철이다. 바다로 강으로 정처를 알 수 없는 많은 이들이 모여들 것이다. 들고나는 바닷물과 빗물에 얼마가지 않아 지워지고 말겠지만 천차만별의 발자국을 남기고 피서객들은 제각기 삶터로 돌아갈 것이다.

피서지의 발자국들은 이처럼 뒤에 오는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삶의 여정에서 남겨둔 발자국들이 수많은 이들의 신호등이 되고 혹은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자식들, 평생을 무탈하게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여겨 영별(永別)을 준비할 시간조차 같지 못한 가족들을 잃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 그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상태에서 악몽 같은 100일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전후하여 온갖 언론매체들에는 유병언과 관련된 보도로 가득차고 있다. 몇 사람만 모였다 하면 유병언에 관해 한마디씩 하는 형국이다.

가뭄에 단비는 반갑지만 오염된 먹구름에서 내리는 황사비는 절대 달가울 수가 없다. 단 한 방울만 머리에 맞아도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없다. 

내리는 황사비의 폐해에 대해서만 보도하고 황사비가 내릴 수밖에 없게 된 원인에 대한 정밀한 진단은 외면하듯, 언론들은 "유병언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에 주목할 뿐 '유병언이 유병언이 되게 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단지 특정 종파의 우두머리가 된 것 만으로 오늘의 유병언이 될 수 있었겠는가? 현직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유병언의 안내를 받아 그의 사업체를 방문하는 장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부나방들은 불빛의 주인을 가리지 않듯, 권력의 단맛을 본 '권피아'들은 권자의 주인이 누구인들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권력층의 비호 없는 유병언은 없었을 터, 공권력이나 언론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유병언 단죄에만 열을 올릴 뿐 '유병언의 뿌리'에 대해 침묵할 것이 아니라 '유병언 뿌리 찾기'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러지 않으면 부나방 같은 하찮은 운명임을 망각한 채 권력의 불빛 주변을 맴도는 제2, 제3의 유병언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고, 우리사회는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통과 희생은 온전히 죄 없는 국민에게 짐 지워질 것이다.

많은 이들의 마음 밭에서 지워지기 힘들 유병언이 남긴 '패악한 발자국'들을 바라보면서 '인생 저렇게 살다 갈 것은 아니다' 정도로 혀나 차고 말 일이 아닌 것이다. '정경유착'이나 '권피아'라는 암초를 방치하는 한 대한민국호의 순항은 없다는 범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사에 따른 국가권력의 '순복'과 '통치기능'의 발휘가 뒤따라야함은 물론이다.

조문기 독립운동가님의 유일한 혈육인 조정화 여사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 참석자들이 동상제막식을 거행하고 있는 모습
 조문기 독립운동가님의 유일한 혈육인 조정화 여사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 참석자들이 동상제막식을 거행하고 있는 모습
ⓒ 홍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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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기 독립운동가님의 유일한 혈육인 조정화 여사와 부군인 김석화 선생(사진 좌측)이 참석자들과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조문기 독립운동가님의 유일한 혈육인 조정화 여사와 부군인 김석화 선생(사진 좌측)이 참석자들과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홍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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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일'의 아픔을 후비는 유병언 미스터리가 먹구름과 함께 내려앉아 침울함이 감돌았던 오늘, 1945년에 거행됐던 독립운동인 '부민관 의거일'을 맞아 부민관 폭파 사건을 주도한 바 있는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님의 동상 제막식이 선생님의 모교인 화성 매송초등학교에서 있었다.

일생을 '선공후사'의 삶을 살다 2008년 2월에 소천하셨지만 조문기 선생님의 그늘은 여전히 짙고 넓었다. 빗속에서도 전국 각처에서 모인 300여 명이 증손 같은 선생님의 후배들과 어울려 동상 제막식은 성대히 거행되었고, 대리석에 새겨진 선생님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 모두의 가슴에 촉촉이 스며들었다.

나그네길 같은 인생역정에서 우리는 무수한 두 갈림길을 만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고 했던가. 한 사람은 권력과 손잡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초근목피'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한 사람은 불의한 권력과 유착하여 호화호식하며 '혹세무민'의 삶을 살았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에 맞은 부민관 의거 기념일에 명암으로 대비되는 두 사람이 남긴 발자국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 경기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독립운동가 조문기, #세월호 100일, #범국민적 공감대, #유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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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법(통일헌법) 박사학위 소지자로서의 전문성 활용 * 남북회담(민족평화축전, 민주평통 업무 등)차 10 여 차례 방북 경험과 학자적 전문성을 결합한 민족문제 현안파악과 대안제시 * 관심분야(박사학위 전공 활용분야) - 사회통합, 민족통합, 통일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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