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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期)와 기(器)
 얼음氷이 큰 강河처럼 흘러다녔던 때期인 빙하기氷河期는 期(시기)를 쓰지만 구석기舊石器, 신석기新石器, 청동기靑銅器, 철기鐵器는 器(도구)를 쓴다. 인류의 역사는 도구의 변화와 더불어 발달해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기원 전 70만 년 전부터 구석기, 기원전 8천 년 전부터 신석기, 기원전 15∼10세기 전부터 청동기, 기원전 4세기경부터 철기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석기의 구분 청동기, 철기와 달리 석기는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눈다. 석기 시대는 변화(발전)가 늦어 기간이 아주 길었는데, 신석기 시대가 석기를 사용한 점은 구석기 시대와 같지만 농경 시작 등에서는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구석기인들은 도토리 등을 주워 먹는 채집과 사냥으로 생명을 유지했다. 따라서 줄곧 이동을 하며 살았다. 처음에는 앞으로 기울어진 커다란 바위그늘(岩陰) 아래에 머물면서 눈비, 바람, 추위, 맹수 등을 피하다가, 10만 년 전쯤부터는 동굴 생활을 했다.

2000년 12월 20일, 대구박물관은 높이 6m, 너비 10m, 폭 5m에 이르는 파동 암음(岩陰) 유적에서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걸친 다양한 토양층을 확인하고 각종 유물을 발굴했다. 특히 100만∼1만 년 이전에 조성된 최하층에서는 인공이 가해진 강자갈들이 다량 나타났다. 이 강자갈들은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되는 구석기 유적일 가능성이 높아 전문가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바위그늘은 바위가 만든 그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구석기인들이 그 아래에서 거주했을 만한 암음의 바위는 일단 거대해야 하고, 앞으로 경사가 심하게 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물가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맹수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으며, 먹을거리도 구할 수 있다.

대구 앞산 파동 바위그늘(암음)
 대구 앞산 파동 바위그늘(암음)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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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오진리 바위그늘 발굴 장면(부산대박물관 발굴조사보고서 사진)
 청도 오진리 바위그늘 발굴 장면(부산대박물관 발굴조사보고서 사진)
ⓒ 부산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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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그늘로는 본래 청도 오진리에서 발견된 거대 암음을 최고로 쳤다. 이곳 바위그늘은 각종 교과서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발굴조사를 한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1994년 조사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도 운문댐이 건설되면서부터는 현장을 찾아볼 수 없는 유적지가 되고 말았다.

오진리 바위그늘과 달리 대구 수성구 파동에 있는 바위그늘은 지금도 바로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곳 바위그늘을 답사하려면 파동에서 앞산 장암사로 들어가는 다리부터 찾아야 한다. 다리를 건넜으면 장암사로 올라가지 말고 곧장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신천 물가를 따라 걷는다. 이내 고가도로 아래 앞산 비탈에 있는 파동암음에 닿는다.

바위그늘 위와 아래, 반드시 올라보고 들어가보아야

하지만 아무런 표식이 없기 때문에 무심코 걷다가는 눈앞에서 목표물을 놓칠 수도 있다. 거대한 바위, 앞으로 기울어진 바위, 물가에 위치 등 암음의 조건을 생각하면서 유심히 살필 일이다. 그렇게 하면 파동암음을 찾을 수 있다.

파동암음을 찾았으면 그 아래에서 구석기인처럼 한번 퍼질러 앉아볼 일이다. 암음 위로 올라가 바위 아래에 숨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지도 확인할 일이다. 과연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살 수 있는 곳인지도 확인할 일이다.

대구 월성동 발국 구석기 유물(대구박물관 소장)
 대구 월성동 발국 구석기 유물(대구박물관 소장)
ⓒ 대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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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신상리 발굴 구석기 유물(왼쪽 3점), 안동 마애리 발굴 구석기 유물
 상주 신상리 발굴 구석기 유물(왼쪽 3점), 안동 마애리 발굴 구석기 유물
ⓒ 상주박물관 안동마애선사유적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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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본격적인 구석기 유물이 출토된 곳은 월성동이다. 2006년 아파트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후기 구석기(2만∼1만 년 전) 유물로 추정되는 좀돌날(잔석기를 만들기 위해 떼어낸 아주 작은 돌조각), 좀돌날몸돌(좀돌날의 몸통돌), 격지석기(돌조각 석기) 등은 대구박물관에서 가면 볼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2009년 8월 10일 출간)은 '석기 시대의 경주'를 설명하면서 "현재까지 확인된 증거로 보아, 경주를 비롯한 영남 지방에 처음 사람이 살았던 때는 후기 구석기 시대이다. 경주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감포 바닷가에서 발굴되었으며, 인근 지역으로는 밀양, 상주, 고령에서 확인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대구경북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눈으로 직접 보려면 경주박물관이나 대구박물관을 방문해야 한다. 물론 상주박물관, 대가야박물관, 안동 마애선사유적전시관 등을 찾아도 좋다. 다른 어떤 곳보다도 더 충실하게 시대별 유물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결론은, 구석기 시대 여행은 현지 답사에 앞서 박물관부터 찾고, 현장으로는 대구 파동 바위그늘을 답사해보자!

우리의 조상은 누구?
우리나라는 기원전 7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 동남쪽 상원군 상원읍의 검은모루 동굴유적과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유적 등이 대표적인 전기 구석기 유적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적어도 450∼400만 년 전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를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주먹도끼, 찍개 등 돌을 깨서 만든 석기를 사용하던 전기 구석기와 달리 10만 년 전 무렵부터는 받침돌인 모루에 돌을 쳐서 깨트린 다음 다시 손질하여 만든 석기를 사용하고, 동굴 생활을 하고, 시체를 매장했다.

그렇게 살았던 중석기 이후 대략 4만∼3만3천 년 전부터는 원석을 뾰족한 돌로 깨뜨려 떼어낸 격지나 돌날을 2차 가공하여 송곳, 조각칼, 찌르개, 긁개 등을 만들고, 활을 사용한 후기 구석기가 열렸다. 그러나 이들은 전기 구석기인이 진화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인류의 출현이 이룩한 성과이다. 즉, 현생(現生) 인류는 후기 구석기인의 후예가 아니라 신석기인의 후예라는 말이다.



태그:#바위그늘, #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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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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