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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슬로건으로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16일 동안 축제가 열린다. 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에 조형물(공모 당선작) 설치로 한창 바쁜 김창기(51) CK조형연구소 소장을 지난 15일 만나봤다. 그의 작품이 있는 서구 연희동과 연구소이자 작업실인 남구 용현동 사무실까지 동행하며 이번 작품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공존의 운율

김창기 CK조형연구소 소장.
 김창기 CK조형연구소 소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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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주경기장에 설치할 작품 공모에 참가해 당선됐습니다. '25대 1'의 경쟁률이었죠. 작품의 공정률은 90% 정도입니다."

그와 함께 간 주경기장,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경기장 내부 시설과 외부 도로 공사를 하는 기계의 굉음과 드나드는 공사 차량의 소음이 상당했다.

주경기장의 전체 형태는 전통춤 승무에서 착안해 형상화한 것으로, 우리의 전통과 얼이 그대로 드러난 물결 모양이다. 또한 한복 저고리의 부드러운 선의 감각을 살려 주경기장 지붕의 위와 아래를 제작해 화합과 소통의 의미를 담기도 했다.

김 소장은 작품을 주경기장의 이미지와 연결해 작업했다. 수없이 많은 스테인리스 조각들을 이어 유선형으로 만들었는데,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인종이 모여 운동 경기를 한다는 것은 단순한 게임을 떠나 '문화로 섞인다'는 의미를 살리려고 한 것이란다.

"가로·세로 길이가 15m·14m입니다. 5층짜리 건물 한 채 정도의 크기죠. 넉 달째 작업하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10cm 길이로 조각낸 것을 용접으로 하나하나 붙이고 그라인더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외부가 거울처럼 반짝여 관람객들과 인근 주민들의 눈에 피로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주경기장에 제 작품이 설치돼 영광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못자기도 해요.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니까요."

이 작품의 제목은 '공존의 운율'이다. 음악적인 운율로 공존한다는 것을 표현하려 했단다. 아시안게임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주경기장과 조형물과의 공존과 조화도 고려했다.

"예전에 승무를 형상화하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이미지와 잘 맞는 부분이 있어 선적인 요소를 가미했죠. 승무를 직접 대입하는 게 아니라 그 느낌을 갖고 와서 유선형의 형태로 표현했어요."

"꼼지락거리는 게 좋았다"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조형물 ‘공존의 운율’ 조감도.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조형물 ‘공존의 운율’ 조감도.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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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나온 김 소장은 1985년 인천대학교 미술과에 입학해 부평구 산곡동에 사는 지금까지 인천과 인연을 맺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부모님 초상화를 그려 오라는 숙제를 내줬어요.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잘 그렸다고 칭찬해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고,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만지는 느낌이 좋았어요. 다른 과목에는 흥미가 없어서 성적이 안 좋았지만 미술은 항상 점수가 높았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미대로 진학을 결정해 1학년 때부터 미술부에 가입했고 2학년 때는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김 소장은 1990년에 미술학과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그때는 사회 민주화의 열기와 더불어 학내 민주화의 요구가 강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국문과 학생회장과 함께 인천대 교내에 민주화의 열망을 담은 '통일대장군'과 '해방여장군'의 장승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1992년 졸업했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20대였죠. 졸업하던해 4월, 유학을 떠나기 위해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냥 한국이란 나라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한국에 있으면 처해진 상황으로 미술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빠질까봐…. 그게 두려웠나 봐요. 이탈리아의 대리석 산지인 '까라라'라는 지역에서 조각 공부를 했습니다."

대학축제 때 '누드쇼' 연출... 자유를 향한 갈구

김 소장은 대학 3학년 시절, 학교 축제기간에 획기적인 퍼포먼스를 했다. 학내 소극장에서 아무 분장도 하지 않은 알몸으로 무대에서 공연을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쇼킹한 기획이었어요. 학교가 아니었으면 경찰이 출동하거나 연행됐을지도 몰라요. 평면의 그림과 사람이란 입체가 몸짓을 하며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이뤄진 시각적 효과를 표현한 것입니다. 행위예술을 한 거죠."

관객과 작업자들이 함께 감동을 느낀 이 작품의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일상의 탈출'과 '과연 나는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들을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겉치레가 난무하고 나를 감싸고 치장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런 포장돼 있는 것들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 거죠."

그때의 퍼포먼스는 지금도 김 소장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해 영향을 준다고 한다. 또한 그때 세상을 향해 던졌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작품과 교감, 그건 희열이었네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조형물 ‘공존의 운율’ 김창기 조각가의 작업 현장 모습.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조형물 ‘공존의 운율’ 김창기 조각가의 작업 현장 모습.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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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매력은 무엇일까?

"세상에 없는 것들이 어느 순간에 만들어져요. 내 손으로 만든 작품과 교감이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는 희열을 느끼죠. 작업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할 때가 많아요."

이탈리아 유학을 끝내고 거기서 제작한 대리석 조각을 갖고 와 서울 청담동에서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전시회 마지막 날, 철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여성 외국인이 들어와 관람을 하다가 어느 작품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그녀와 대화를 했는데 제가 의도한 작품의 핵심을 그대로 읽었더라고요. 제 생각을 작품에서 읽고 감동을 받았대요. 누군가와 작품을 갖고 통할 수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평생 작업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죠. 천금을 얻은 것과 견줄 수 있을까요?"

김 소장은 2010년 12월, 8회 개인전 '자연, 공간, 순환하다'를 열며 "조형 작가인 저는 스스로 매개자가 돼 이질적인 존재의 오브제(물체)를 소통과 상생의 오브제로 변화시키는 역할만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순환시키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예술행위라는 게 결국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죠. 모든 이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위해 작가는 1%만의 역할이라도 하려고 작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내 작품이 쓰레기는 되지 말게 하자고 다짐하죠. 조각가인 저는 세상의 중간자 입장에 있다고 봐요. 하나의 시각적 매체로 두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무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작업을 소홀히 생각할 수 없죠."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감동받는 게 쉽지 않은데, 그는 그 느낌을 다시 찾기 위해 오늘도 작업에 몰입한다.

"평생 찾을 것 같습니다. 뚜렷한 소재와 주제가 아닌 추상적이고 방대한 생각으로 작업하려니 쉽지 않지만 그것들을 찾는 게 제 창작의 과정입니다. 내가 만족감과 감동을 얻어야 다른 사람한테 작품을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마음으로 느끼고 즐기라

예술의 세계는 오묘하고 어렵다. 특히 상징의 세계인 음악과 문학에 비해 추상과 비구상이 혼재하는 미술의 세계는 더 어렵다. 김 소장에게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물었다.

"제일 어려운 말일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받아들이는 대로 느끼면 됩니다. 느낌 안에 내 사고를 집어넣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느낌만 갖고 받아들이세요.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요.

작품 감상법은 다른 게 없어요. 내 시각적인 유희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그냥 좋은데 이유가 있나요? 사람이 좋으면 그냥 좋은 사람이잖아요. 물론 나중에 물어보면 분명한 이유는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고민할 필요 없어요. 마음이 가는대로 느끼고 즐기면 됩니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작품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면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보라고 일러줬다. 작가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면 좀 더 구체적으로 작업과정과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김 소장은 "열한 살짜리 늦둥이 딸내미가 있어요, 저는 제 아이와 아내와 웃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라면서 "작업을 하면서 몰입되는 삶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지키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면서 사는 게 더 소중합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김창기, #공존의 운율, #인천아시안게임,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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