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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지난 일이다. 시골학교 점심시간은 아수라장이었다. 조용히 앉아서 밥이나 먹는 시간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의문스러워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점심시간은 거의 매일 아수라장이었다. 3년 내내 그랬던 것 같다.

4교시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교실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바로 도시락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반 아이들이 하나 둘 도시락의 반찬통을 여는 순간, 반 아이들 거의 전부가 반찬통을 여는 친구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나서는 반찬이 보이면 무조건 포크나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올렸는데, 반 친구의 반찬통이 다 열리고 나서 반찬의 분배가 다 끝나고 난 후에야 이런 혼란이 멈추곤 했다.

고 3때는 교무실 옆 교실을 사용했는데, 점심시간마다 시끄러운 것을 눈치챈 선생님들이 들이닥치곤 했다. 그때 마다 이런 반찬쟁탈전에 헛웃음을 지으면서 황당해 하셨던 생각이 난다.

지금처럼 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 집집마다 도시락 반찬은 제각각이었다. 장조림이나 분홍색 소시지 부침 같은 것은 정말 고급스러운 반찬이었는데, 이런 반찬이 등장하면 정말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묵볶음이나 두부조림 같은 것도 반의 친구들에게는 인기 반찬이었다. 어쩌다가 고기반찬이라도 발견되는 날이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반찬을 빼앗긴 아이들... 반찬통 뚜껑 열자마자 '퇘, 퇘'

그런데 당시 고급스러운(?) 반찬을 싸 온 친구들은 무조건 손해를 보는 셈이었다. 자기반찬을 조금 밖에 못 먹게 되니 많이 억울할 만도 했다. 이런 친구들이 고안해 낸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도시락 반찬통의 뚜껑을 열자마자 '퇘, 퇘' 반찬 위에 침을 뱉는 척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집에서 반찬을 확인하고 와서 점심시간에 뚜껑을 열면서 반 다른 아이들이 보란 듯이 침으로 '찜'을 해 놓는 것이었다. 친구들의 이런 전략은 한동안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래도 먹는다는 아이들이 나타났으니, 정말 강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점차 이런 아이들이 늘어나고 결국에는 침으로 찜하는 방식도 효과가 없게 되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냥 얼마 정도는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려니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음식에 침을 뱉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추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누가 음식에 찜 한다고 침을 흩뿌린다면, 그 음식에 손을 댈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묘하게도 서로의 반찬을 빼앗고 방어하면서 공유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그 점심시간이 가끔은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힘든 고등학생 시절에 점심시간 만큼 즐거웠던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 반찬을 조금 가져가도 참아줄 수 있는 마음이 있었고, 자구책으로 침을 뱉는 시늉 정도의 더러움은 반찬을 가져가면서도 충분이 감수할 수 있는 믿음 같은 것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TV나 영화에서 보면 유치하게 음식에 침을 뱉아서 찜하는 장면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런 장면을 보면 고등학생 시절의 점심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은 급식이 일반화 되어서 다른 친구들 반찬에 손을 대거나, 이를 막기위해 침 뱉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아마도 학교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있는 아들은 심지어 식구들이 쓴 컵도 잘 안 쓰는 판이니, 아빠가 고등학교 시절에 겪었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기겁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더러운 이야기' 응모글



태그:#더러운이야기,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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