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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아름다운 봄날 아침에 수많은 목숨이 참으로 어이없게도 바다 속에 수장되었다. 그러고 나서 어언 백일이 되어간다. 아직도 열 명의 주검이 바다 속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아무런 원인 규명도 되지 않고 책임지는 이도 없다. 그저 같은 사회 공동체의 일원인 우리의 마음도 슬픔과 분노가 가시지 않는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유족들의 절절한 마음은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럼으로 해서 이들의 죽음의 의미가 마냥 헛되고 억울하지만은 않게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권력을 쥔 자들은 무에 그리도 구린 것이 많은지 감추고 거짓말하기에만 급급하다. 유족들과 대다수의 시민들은 공정하고 제대로 된 수사를 위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헛바퀴만 돌고 있고, 세간에서는 유족들을 돈에 눈 먼 사람들로 폄훼하는 행동과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8일 귀여운 막내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들이 참다못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거리로 나섰다. 아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출발해 진도 팽목항까지, 그리고 다시 교황이 방문하는 날에 맞춰 대전 월드컵 경기장까지 750여 km, 1900리 길을 걷는다. 사고 이후 이미 석 달 동안 지치고 쇠약해진 몸으로 불볕더위에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를 견디며, 비오면 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걷는다.

억울한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이대로 아이들이 세상에서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염원을 담은 행진이라고 한다. 차디찬 바닷 속에서 고통스럽게 숨져간 아들의 고통을 천만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진도 팽목항까지 걸어가는 두 아버지와 함께 걷는 많은 시민들
 진도 팽목항까지 걸어가는 두 아버지와 함께 걷는 많은 시민들
ⓒ 대전충남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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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을 접한 나의 친구 둘이 그분들이 대전 근처를 지날 때 하루만이라도 함께 걷겠다며 근처에서 합류해 함께 걸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매일 새벽 그 길에 함께했다. 막상 걸어보니 함께하는 이들이 너무 적어 안타까운 마음에 집에 편하게 있을 수가 없더란다.

고행 길에 사람들이라도 북적대며 함께 걸어주면 조금이나마 힘이 될까 싶어 매일 나가게 된단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이 하루, 혹은 이틀씩 합류했고 닷새 째 되는 날 나도 그들과 함께 십자가의 길에 동참했다. 오후 세시 쯤 익산 황등 체육관에 도착하니 이승현, 김웅기 두 학생의 아버지들과 승현군의 누나가 점심 식사 후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아버지의 가슴에는 아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열일곱의 의 앳된 얼굴! 사진 아래에는 아들과의 약속을 적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검게 그을리고 곧 쓰러질 듯 초췌한 아버지들이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둘러메고 걷기 시작한다. 저 다리로 어찌 걸을까 싶을 만큼 불편한 걸음걸이로... 그 뒤를 사람들이 따른다. 어린아이 손을 잡고 온 부부, 교복을 입은 학생, 수녀님들, 그리고 시민단체 회원들, 아줌마, 아저씨들... 강경에서만 해도 열 댓 명밖에 없어 초라한 행렬이었다는데 익산에서는 7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합류해서 아버지들도 힘을 받는 것 같았다.

짐작컨대 아랫녘으로 내려갈수록 더 많은 이들이 힘을 실어줄 것 같다. 덕분에 내 친구들은 당분간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버지들의 가슴에 매달린 비닐 코팅된 아들의 사진에 빗방울이 맺히니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마음이 찌르르 아파왔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과연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누구에게 손을 뻗어야 하는가?'

이제 국가는 304명의 귀한 목숨들이 그들에게 던지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답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믿는다. 그 국가를 움직이는 힘은 바로 힘없는 사람들의 연대에서 나온다는 것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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