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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일문일답은 28~29일 증인 신문과정에서 기자가 직접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법원이 정리한 공식 조서 내용과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 이준석 선장의 변호인 : 청해진해운에 2013년 1월 2일 입사했지만 세월호가 운항을 시작한 3월 19일부터 배에 승선하면서 세월호의 역사를 거의 함께 했다.
"세월호를 도입한 다음 수리할 때부터 있었다."

- 처음 승선했던 때부터 8월경까지는 이준석이 선장이었는데, 그가 정년퇴직한 뒤에는 신보식이 선장이었다.
"그렇다. (초기에는) 메인 선장이 이준석이었고 신보식은 수습 선장이었다."

- 이준석은 퇴임한 뒤, 정식 선장이 된 신보식 대신 가끔 임무를 수행했다. 그 간격이 얼마나 되는가.
"8월 이후에는 신보식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휴가를 가면 이준석이 선장 임무를 수행했다."

- 경찰 조사 때는 9시 20분, 검찰에선 9시 30분쯤 양대홍 사무장이 구명조끼 방송을 지시했다고 했다. 그 뒤 아무런 지시가 더 없어서 9시 50분까지 계속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는 방송을 2회가량 했다고도 진술했는데, 조타실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면 적어도 양 사무장에게 (대책을) 물어봐야 했던 것 아닌가.
"'구명조끼를 입을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고 방송을 한 다음, 안내데스크 근처 객실에서 (배가 기울 때) 여자 승객 한 분이 떨어졌다. 그분을 편의점 쪽에서 로비 쪽으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것까진 못했다."

- 질문을 바꿔서 묻겠다. 헬기는 공식적으로 9시 27분경 도착했고, 9시 30분이 좀 지나서 구조정도 왔다. 증인도 헬기와 구조정이 도착한 것을 알았다고 보인다. 그런데도 9시 50분까지 조타실 지시가 없어서 대기방송을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안 맞는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대기방송까지다.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건 조타실 지시가 있어야 한다."

- 그럼 적어도 양 사무장한테는 물어봐야….
"사무장도 그것까지는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던 건 대기방송까지, 퇴선 명령은 오직 조타실만"

지난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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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곧 9시 20분 넘어서 양 사무장 지시로 구명조끼 방송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영상 자료 등을 검토해보니 그 방송 시각은 9시 6분이었다. 증인이 거짓말을 했다는 뜻은 아니고, 당시에 많이 당황해서 기억이 부정확하진 않을까 싶다.
"저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당시 상황의 정확한 시각을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할 때에도 강조했다. 대략적인 시간을 말할 뿐이지 정확하진 않다고."

- 강아무개 1등 항해사·전아무개 조기장·김아무개 조기수의 변호인 : 박지영이 조타실에 전화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했는데, 평소 증인이나 다른 승무원들이 안내소 전화로 조타실에 연락한 적 있는가.
"많이 있다. 제대로 작동했다."

- 그럼 조타실에서 안내소로 전화한 적은.
"선장도 전달할 말이 있음 전화로 얘기한다."

- 당시 배에 승선한 승객들의 객실배치도는 기억하는가.
"학생들은 4층 선수부터 선미까지 썼고 일반 승객은 3층과 5층 1등 객실, 3층 선수 쪽 큰 방과 2·3등실 침대칸을 썼다."

-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승객은 어느 위치에 있었나.
"학생들은 거의 다 4층에 있었다. 일부는 편의점이나 오락실, 커피숍을 이용하려고 3층에 내려와 있었다. 일반 승객들도 마찬가지로 편의점이나 커피숍을 이용하려고 3층에 있었고 식당 쪽에 몇몇 식사하는 분들도 있었다. 식사 후에 외부 갑판으로 나가서 흡연을 하거나 경치를 감상하던 사람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 경찰 조사 때 사고 발생 직후 10~15분 정도 정전됐다고.
"1회 정전이 있긴 했는데 얼마 동안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 구명조끼는 모든 승객이 입을 수 있었나.
"그렇다. 구명동의가 부족해서 못 입은 게 아니라 손이 닿지 않아서 못 입은 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 평소에 주로 화재 관련 훈련을 받았다. 이 사건처럼 선박이 전복되는 상황을 대비한 훈련을 받은 적은 있는가.
"없다."

"평소 조타실과 안내소 전화로 자주 연락했다"

- 신아무개 1등 항해사·김아무개 2등 항해사의 변호인 : 비상대응배치표상 증인의 임무가 무엇인지 아는가.
"소화 훈련 시에는 화재가 난 사실을 알리는 것과 화재 초기 진압, 승객 대피를 맡았다."

- 비상시 승객 대피는 여객영업부나 조리부 임무인데, 500여 명의 승객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려면 승무원이 10명 이상 필요하지 않을까.
"네."

- 조사받을 때 '조타실에서 무전기로 선내방송을 지시한 뒤 더 이상 응답이 없었다'고 진술한 적 있나.
"조타실에서 직접 지시받은 적 없다. 양대홍 사무장 지시는 받은 적 있다."

- 당시 무전기에서 김 항해사 등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가.
"없다. 저는 조타실의 누구와도 교신한 적이 없다. 양대홍 사무장 말고는 (교신한 사람이) 없다."

- 양 사무장이랑 언제까지 교신했나.
"구명조끼를 입을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게 마지막 지시였다."

- 9시 6분경에 구명조끼 입으라고 방송했는데.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시를 받은 다음에 그렇게 방송했다."

- 당시 연락이 안 됐다고 했는데, 그럼 조타실에 가볼 수도 있지 않은가.
"배가 상당히 기울어져서 이동이 불가능했다. 갈 수 없었다."

- 도저히 갈 수 없었나.
"네."

- 9시 30분경 해경 헬기 소리를 들었다고 했는데, 그때 박지영이 '모두 탈출하세요'라고 소리쳤나.
"제 기억으로는 들은 적이 없다. 그때 당시에도 저는 방송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없다."

- 평소 조타실에서 승객들 상대로 방송하는 경우는 있는가.
"조타실에선 직접 안 한다. 필요하면 여객영업부에 방송하라고 연락한다."

- 사고 직후에 박지영은 누구를 먼저 찾았나.
"우선 상황 파악을 위해 조타실에 연락했고, 그 다음에 양대홍 사무장에게 연락했다."

- 박지영이 이때 무전으로 '안내소로 좀 와달라'고 했는데 양 사무장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 힘들다'고 했다고.
"그렇다. 양 사무장이 사고 이후에 안내데스크 쪽으로 온 적은 없다(기자 주 - 양 사무장은 3층 식당 쪽에서 조리원과 아르바이트생의 탈출을 도운 뒤 그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강씨의 증언은 자신이 양 사무장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 양 사무장에게서 '안전방송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안전방송이 꼭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뜻인가.
"내용이 다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승객들을 안심시켜야 하기 때문에…."

- 대피하라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대피명령은 저희도 상급부서에서 지시해줘야 가능하다."

- '해경 구조정과 어선 등이 10분 안에 도착한다'는 방송도 했나.
"'10분 안에'라는 말은 한 적 없다."

- 해경이 도착했다는 내용은?
"헬기가 도착했다는 방송은 하긴 했다."

- 그럼 헬기가 도착 후에도 계속 대기방송을 했다는 뜻인가.
"대기방송을 했다. 퇴선명령이나 대피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방송은 할 수 없었다. 대략 9시 50분 정도까지는 방송을 한 걸로 기억한다."

"선장이 이미 밖으로 나간지도 몰랐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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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사무장이 9시 25분경 조타실까지 들렀다던데 이때 그와 교신했나.
"따로 교신한 적은 없다."

- 해경에 신고할 때, 해경에서도 '지금 구조하러 가니까 선내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계속 하라'고 했는가.
"(곧 구조하러 올 테니까 승객들에게) 대기하라는 얘기를 해주라고 했다."

- 3층에서 4층으로 이동할 때 승객들에게 (밖으로) 나가라는 방송은 안 했나.
"이미 방송장비가 물에 잠겨서 할 수 없었다."

- 무전기로 퇴선 지시받은 적은 있는가.
"없다. 선장의 퇴선 지시를 기다렸다."

- 조타실 쪽이랑 한 번도 연락이 안 됐는데.
"바깥 상황을 알 수가 없고, 선장 등이 나간지도 몰랐다. 지시가 안 올 것이라고는 장담 못 했다."

- 교신을 못 하는 상황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봤는가.
"교신을 못 할 수 없다. 배가 기운다고 무전을 못 할 수는 없죠."

- 박아무개 3등 항해사의 변호인 : 평소에도 세월호가 기운 적이 있었나.
"변침할 때는 약간씩 기울었다."

- 그럼 최초에 20~30도 정도 기울었던 것은 평소 정도였나.
"네."

- 사건 이전에도 세월호가 심각하게 기운 적 있었나.
"1회 정도 우현 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었다가 원상태로 복원된 적이 있었다."

- 조사받을 때 '새벽 3시경 선실에 있었는데 배가 우현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져 갑판으로 나갔다'고 진술했던 그 내용인가.
"맞다."

- 그렇게 기운 채로 20분 이상 항해했다는 얘기도 맞나.
"어느 정도 시간인지는 기억 못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었다."

- 당시 배가 기울었던 원인은 아는가.
"모른다."

- 세월호에 문제 있다는 얘기 들어본 적은.
"들은 적 없다."

- 손아무개 1등기관사의 변호인 : 비상시에 승객들을 대피시킬 때에 쓰는 방송용 문구가 있는가.
"있긴 한데 내용까진 잘 모른다. 그냥 '화재 진압 실패로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니 승객들은 당황하지 마시고 승무원 안내에 따라 행동해달라'정도로 기억한다."

- 사고 당시에 왜 비상방송을 하지 않았나.
"평소에 여객구역 방송을 하고 승객들도 대부분 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비상방송이 아닌 여객구역 방송을 해도 충분히 들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여객구역 방송은 조타실에 잘 안 들리는데) 조타실에서도 어떤 선내방송이 나오는지 알아야 하지 않나.
"당시 상황은 저희보다 조타실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 결국 여객구역 방송은 증인이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한 것인가.
"어떠한 지시도 안 와서 제가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강혜성씨 법정증언 ①] "조타실과 연결됐을 때 흐느끼는 소리만"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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