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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일문일답은 28~29일 증인 신문과정에서 기자가 직접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법원이 정리한 공식 조서 내용과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세월호 침몰 사고 100일에서 하루 모자란 23일 오후, 선원들의 5차 공판이 열린 광주지방법원에는 중요한 인물이 증언대에 섰다. 강혜성(33). 그는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안내방송을 했던 사람이다.

삶과 죽음은 한끝 차이다. 찬사와 비난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무부서(통칭 여객영업부) 승무원은 모두 5명이었다. 양대홍 사무장을 정점으로 박지영, 정현선, 안현영(안씨는 근로 계약상으로는 청해진해운 소속이 아니었지만 승무원들은 모두 직원으로 인식했다)씨와 강씨였다. 그중 다른 4명은 모두 죽었고 강씨만 살아남았다. 박씨와 정씨는 이미 의사자로 지정돼 세상의 찬사를 받고 있고, 양 사무장과 안씨도 현재 의사자 심사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살아남은 강씨는 안내방송 때문에 비난의 당사자가 됐다.

안내방송은 강씨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남긴 동영상과 증언을 종합하면, 박지영씨도 같은 취지의 안내방송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강씨는 침묵했다. 언론 접촉을 극도로 피했다. 그런 그가 마침내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일반 승객 생존자들과는 또 다르게 사고 상황을 좀 더 상세히 증언해 줄 유일한 인물이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상황을 살펴 다소 길지만 강씨의 법정 증언을 정리해 보도한다.

약 2시간에 걸친 강씨의 증언은 피고인인 선박직(갑판부와 기관부) 승무원들과의 친분이 있는 점을 감안해 피고인들과 격리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 기사는 2개로 이루어졌다. 앞부분은 검사의 증인 신문이고, 뒷부분은 변호인들의 신문 내용이다.

강씨가 공개적으로 처음 밝히는 '안내방송의 전모'

지난 4월 16일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4월 16일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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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승선 경력 및 부서가 어떻게 되는가.
"2013년 1월 2일 정식 발령이 나서 근무를 시작했고, 올해 6월 11일자로 권고사직서를 제출해 퇴직했다. 선내 안내소 쪽에서 안내 업무를 했다. 부서 이름은 통칭 여객영업부다."

- 소속 부서 인원은 몇 명이고, 주로 어떤 일을 했는가.
"사무장부터 외주 이벤트 업무 직원까지 하면 모두 5명이다. 주로 승객들 불편사항이라든가 객실 내 시설물 관리, 수리를 해야 하는 것 등을 챙기거나 사무 업무 등을 많이 했다. 사무장은 고 양대홍, 다른 직원은 고 박지영, 정현선, 안현영 이렇게 있다."

- 그럼 세월호 승선인원 체크 등은 여객영업부 몫이겠다.
"승객들이 표를 끊고 오면 티켓을 확인하고 객실을 안내한다."

- 출항 전후로 비상시 대비한 안내 방송을 하는가.
"그렇다. 출항 전에 구명조끼 착용법이나 비상대피소 등을 설명하는 안내방송을 하고, DVD자료를 틀어준다. 4월 15일에도 그랬다. 구명조끼 착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과 비상탈출장소 위치 등은 방송으로 알린다."

- 비상시 대비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사실이 있나.
"평상시에 훈련은 하는데,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것까지만 했다. 다만 승객이 없는 상황이라 탈출 훈련까진 못 했다. 훈련은 보통 월 1~2회 정도 했다. 신보식 선장(원래 세월호 선장)이 주도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훈련할 때는 이준석 선장(사고 당일 세월호 선장)을 본 적이 없다."

- 사고 당시 위치는 어디였나. 다른 승무원들도 함께 있었는가.
"3층 안내데스크에 있었다. 안쪽에 박지영, 안현영과 같이 있었다. 단원고 학생들 식사가 끝난 뒤에 안내데스크로 와서 같이 앉아 있다가 배가 기우는 느낌을 받았는데 (처음엔) 선회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정현선은 본인 방(5층 조타실 뒤쪽)에 볼일이 있어서 올라갔고, 양대홍 사무장은 선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 사고 발생 당시 배가 선회하는 줄 알았다고 했는데, 그럼 '이게 사고가 난 것이구나'라고 생각한 건 언제쯤이었고, 어떤 이유 때문이었나.
"배가 점점 더 기울었고, 강한 흔들림을 느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할 때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겠구나' 싶었다."

- 충격음이나 화물 쏟아지는 소리는 듣지 못했나.
"그렇다. 안내데스크는 배 중앙에 있고 해서 외부에서 큰소리 나는 것은 잘 듣지 못한다."

- 그럼 3층에 있던 다른 승객들도 사고 발생을 몰랐을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외부 갑판이나 창가 쪽에 있었다면 사고 소식 알았을 테고, 내부에만 있어서 몰랐을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 사고 직후 배가 기울었을 때 그 각도는 어느 정도라고 느꼈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최초 기울기는 대략 20~30도로 짐작한다."

"평소 대피 훈련까지만 했고, 탈출 훈련은 못했다"

- 사고가 난 이후에 안내방송을 하게 된 경위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승객들을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승객들이 당황하는데 승무원인 저 역시 당황하면 더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리라 봤다. 추가로 (사람들이) 다치는 상황 등을 막아보고자 했다. 이때엔 이미 사고가 났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 첫 방송은 누가 지시했나.
"처음에는 제가 승객들을 안심시키고자 자체 판단으로 방송했다. 차후에 방송했던 건 양대홍 사무장 지시를 무전으로 전달받아서였다."

- 양 사무장이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하라'고 했나.
"예, '안전방송을 하라'고 지시를 받았다. 안전방송이 따로 정해져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승객들을 안심시키면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 최초 방송 시각은 사고 발생 후 얼마쯤 지난 뒤였는지.
"5분 이내였던 걸로 기억한다.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거나 이동하시면 다칠 수 있으니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시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수차례, 한 5~6회 정도 했다."

- 증인 말고 다른 사람도 안내방송을 했나.
"그것까진 제가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 목소리가 (방송으로) 나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 증인이 했던 안내방송을 시간순서대로 한번 말해 달라.
"최초 방송은 말씀드린 그대로 했고. 제가 해경에 신고하고 나서… 시간까진 정확히 모르겠고 내용만 기억하는데 '해경 구조정하고 주변 어선에서 본선 구조를 위해서 오고 있으니까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잡을 수 있는 봉 등을 잡고 대기하시라'는 방송을 했다. 이후엔 '구명조끼를 입히라'는 (양 사무장) 전달사항이 와서 '구명조끼가 손에 닿으시는 분들은 (다른 승객들에게) 전달해서 안 입은 분들이 입을 수 있게 해달라'는 방송을 반복적으로 했다."

- 수사기관에서 2차례에 걸쳐 진술한 안내방송 내용을 확인시켜주겠다. 시간은 보도된 자료를 바탕으로 (검찰 쪽에서) 표시했다. ▲ 배가 갑자기 기우는 것을 보고 임의로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안전우려사고에 대비해달라'는 최초 안내방송을 했다. ▲ 이후 양대홍 사무장 지시로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고, 움직이면 더 위험할 수 있으니 움직이지 마라'고 2회 정도 반복했다. ▲ 8시 55분경 122에 신고하면서 '해경 구조정과 주변 어선이 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다음 '현재 위치에서 절대 움직이지 말고, 해경 구조정과 주변 어선이 본선 구조를 위해 오고 있으니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라'고 임의로 3차 방송을 했다. 그 전후로 청해진해운 홍아무개 대리와 통화했다. 또 ▲ 9시 20분경 양 사무장 지시로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했다. ▲ 그 뒤에도 '해경이 오고 있으니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한두 차례 더 방송한 거 맞나.
"맞다."

- 당시 세월호가 어떤 상황인지 조타실로부터 전달받거나 관련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
"없다."

- 제대로 침몰 상황 전달받았다면, 계속해서 승객들에게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했겠나.
"정확한 지시가 왔거나 침몰 상황을 전달받았다면 대기방송을 계속 하진 않았을 거다."

"조타실의 지시가 있었다면, 대기방송 계속 하진 않았을 것"

- 선내방송 시설은 어디에 비치돼 있는가.
"안내데스크에 한 대 있고 조타실에 한 대가 있다. 그리고 선내 전화, 인터폰으로 0번 누르고 나서 얘기를 하면 전체적으로 방송이 가능하다. 선내 전화는 승무원 선실에 각 1대씩 있고 안내소와 편의점, 커피숍, 안내소 바깥쪽에도 1대씩 있다."

- 안내데스크에서 선내방송을 하면, 여객구역만 들리는 건가. 아니면 전체 구역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가.
"방송장비에 '비상' 버튼이 있다. 그걸 누르면 본선 전체에 방송할 수 있다. 저희는 여객구역 쪽에 승객들이 많고, (주로 거기에) 안내를 하니까 평소에는 여객구역을 대상으로 놓고 방송한다. 사고 때에도 여객구역 내에 방송했다."

- 여객구역 방송의 경우 5층엔 아예 들리지 않는가. 아니면 조타실에만 전해지지 않는 것인가.
"여객구역 방송이 안 들리는 곳은 조타실과 선원 선실, 차량 등 화물이 있는 곳이다. 근데 방송을 하면 바깥쪽 스피커로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정확히는 안 들려도 사람이 들어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는 소리가 난다. 외부 갑판 쪽까지 (여객구역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가 설치돼 있다. 출항 전에 방송할 때도 여객구역으로 놓고 하면, 밖에 있어도 그 소리가 다 들린다."

- 여객영업부 승무원들은 모두 무전기를 갖고 있었나.
"안내소에서 근무하는 직원, 그러니까 (양대홍) 사무장과 저, 박지영과 정현선, 안현영 모두 1대씩 소지했다."

- 무전기로 교신하면, 다른 승무원도 그 내용을 들을 수 있나.
"그렇다. 같은 채널을 쓰기 때문에 가능하다."

- 무전기 말고 안내데스크와 조타실이 연락하는 방법은?
"선내 전화가 있다. 조타실 번호가 20번 안내데스크가 37번인데, 이 번호들을 누르면 그 장소로 연결된다."

- 세월호에 비상 탈출 장소가 정해져 있다고 아는데, 어느 곳인가.
"3층 좌현 외부 갑판과 4층 좌·우현 외부 갑판이다. 여기에 '비상 탈출 장소'라고 쓰여있다."

- 비상시 승객 안내 방송 담당자는 누구인가.
"훈련할 때에는 고 정현선이 방송을 했는데, (규정에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사무장이 방송을 하도록 돼 있는 걸로 안다. 두 사람 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승무원 중 누구라도 방송을 해야 한다."

- 비상시 승객 대피와 관련해서 승무원들이 담당하는 구역도 정해져 있나.
"제가 알기로는 따로 정해져 있진 않다. 평상시 일하는 위치 정도만."

- 그럼 훈련은 어떻게 진행했나.
"보통 저희가 소방훈련을 하면 3층 로비에서부터 4층 외부 갑판 쪽으로 승객들을 이동시키는 훈련을 한다. 어느 직원이 어떤 구역을 맡아서 대피시킨다는 식으로 정해두진 않았다."

- 평소에 역할이나 담당구역을 정해두면 비상시에 더 수월하지 않겠는가.
"도움은 되겠지만 (진행이) 수월하진 않을 것 같다. 안내소 직원이 총 5명뿐이라 승객이 많을 때에는 어느 한 구역씩 맡아서 하기는 벅찬 감이 있다."

- 사고 당시 다른 승무원들에게서 승객 대피 또는 탈출 지시는 받았나.
"수십 번 무전과 전화로 조타실에 확인했지만, 전달받은 사항은 없었다."

- 승객 증인 가운데에는 '배가 이렇게 기울었는데 빨리 조치를 좀 해달라'고 항의했다더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충분히 항의는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승객들을 대피를 시켜야 하지만 그 명령이 없어서 대기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조타실로부터 침몰 상황이나 대피 지시를 받았으면 당시에 다른 조치를 할 수 있었다는 말 같다.
"그랬다면 안내방송으로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착용하라고 한 다음 차례로 외부 갑판 쪽으로 이동시켰을 것이다. 비상갑판으로."

"명령이 없어서 대기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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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 선내에는 얼마쯤 지나고 나서부터 물이 들어왔나.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데, 사고발생 약 1시간 후부터 물이 들어왔다."

- 증인이 계속 안내데스크에만 있진 않았다고.
"방송할 때에는 그쪽에 있던 건 맞는데 외부 갑판 쪽 출입문 근처에서 승객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불안해하는 분들이 계셔서 안심시키려고 안내데스크에서 나와서 '해경이 오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 탈출 경로는?
"배에 물이 차오르면서 제 몸도 떠올랐다. 중앙 계단 뒤편으로 해서 4층 좌현 쪽으로 갔다. 그때 4층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우현 쪽으로 떠밀렸다. 그쪽에서 학생들을 내보내다가 물이 가득 찬 상황에서 저도 물에 떠밀려 외부 갑판 쪽으로 나오게 됐다. 당시 안내소 직원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진 않았는데 물에 의해 떠올랐다."

- 그때 학생들이 주변에 있었나.
"상당히 많이 있었다. 4층 좌현 쪽에서 학생들이 못 나오고 있어서 제가 '구명줄을 잡고 밖으로 나오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구명줄 어딨느냐'고 되물어서 '소방호스로 만들어 둔 라인 있으니까 그걸 잡고 바깥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 '구조정이 온다, 현 위치에서 대기해달라'는 선내방송을 여러 차례 걸쳐서 한 것 같다. 그 방송 중에 양대홍 사무장 외에 다른 사람 지시에 의해 한 경우도 있나.
"해경에 신고한 뒤에는 그쪽에서 '주변 어선하고 해경 구조정이 가고 있으니까 좀만 기다려달라'고 하기에 그걸 그대로 승객들에게 전달하려고 방송했다."

- 그럼 양 사무장에게 지시받아서 한 방송은….
"안전방송하고, 승객들이 구명조끼 입도록 조치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구조정이 올 것이다' 이런 내용을 전달받진 않았다. 양 사무장 외에는 방송을 지시한 사람은 없다."

- 탈출하라는 방송만 있었어도 많은 생명이 살았겠다.
"네."

- 아까 무전기나 전화로 조타실에 문의했는데 몇 번 정도인가.
"제가 직접 하지 않아서 정확한 횟수는 모르고, 박지영과 양대홍 사무장이 조타실 쪽에 수차례 연락해서 조치사항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답이 없었다. 박지영이 연락하는 건 직접 봤고 양대홍은 함께 있진 않았지만 무전을 쳤다면 (다른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으니까 안다. 당시 제가 사고 직후 무전기를 바닥에 떨어뜨려서 갖고 있지 않았는데, 박지영이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그와 거리가 약간 있어서 (양대홍 사무장과 조타실 쪽 교신 내용은 모르고) 교신을 시도했다 정도만…. 무전기로 그가 조타실을 찾는 소리는 들었다."

- 재판장 : 그럼 박지영이 조타실과 연락하는 것은 들었나.
"사고 직후 박지영에게 '조타실은 어떤 상황인지 무전이나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박지영은 제게 '흐느끼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조타실에 당시 3등 항해사가 근무하고 있어서 연결이 됐지만, 흐느끼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박지영이 조타실과 연결됐지만,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 검찰 : 김아무개 2등 항해사는 자신이 양대홍 사무장과 직접 교신했다더라. 박지영 무전기로 못 들었는가.
"들을 수는 있는데, 박지영과 계속 같이 있던 게 아니라 저는 듣지 못했다."

- 양 사무장의 지시는 다 박지영을 통해서 전해 들었나.
"박지영이 그가 저를 찾는다며 무전기를 건네줘서 제가 직접 교신했다."

- 해경에 신고할 때 '사람이 빠졌다'고도 했는데, 그건 직접 본 것인가.
"그건 아니고 외부 출입문 쪽에 있던 승객들에게 얘기를 들었다. 좌현 갑판으로 나가는 출입문 쪽에 있던 사람들이 한 명이 물에 빠졌다고 했다. 일단 당시에도 배가 많이 기울어서 이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122에 신고했다."

- 박지영이 계속 조타실에 승객 대피 여부를 문의했다고 했는데, 선내전화도 쓴 것인가. 그때 박지영만 전화를 걸었나.
"맞다. 당시 안내소 안쪽엔 박지영이 있었고 안현영은 편의점 쪽에서 다친 승객들을 빼내고 있었다. 저는 안내소 밖에서 몸을 지탱하며 안내방송을 했다."

[강혜성씨 법정증언 ②]
 "오직 선장의 퇴선 지시만을 기다렸다, 이미 나간 지도 몰랐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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