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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성원 일정에 맞춰 날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게 일반적인 가족여행의 절차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소셜커머스 누리집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반값 항공권을 낚아채기만 기다렸던 아내의 은근과 끈기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예정에 없던 날벼락 제주 여행은 그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낙타 바늘 구멍 지나가기보다 어렵다는 주말 반값 항공권을, 그것도 성수기에 거머쥔 아내는 의기양양하게 제주 여행을 선포했다. 우리는 최저 비용으로 제주도에 가는 거야! 어차피 그동안의 모든 여행에서 내가 관여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여행지에 도착해 짐꾼이나 운전기사의 역할만 충실히 해내면 아내가 알아서 먹여주고 재워줬으므로 이번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골 삼촌댁에 놀러온 느낌

시골 마을의 일반적인 가정집 풍경이다. 깔끔한 파란 지붕위로 아침이 열리고 있다.
▲ 게스트 하우스 전경 시골 마을의 일반적인 가정집 풍경이다. 깔끔한 파란 지붕위로 아침이 열리고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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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5분쯤 나가면 김녕의 옥빛 바다가 펼쳐진다. 바로 옆에 해수욕장도 위치하므로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 게스트 하우스 주변 풍경 걸어서 5분쯤 나가면 김녕의 옥빛 바다가 펼쳐진다. 바로 옆에 해수욕장도 위치하므로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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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할 것이라는 아내의 말도 처음에는 귓등으로 들었다. 하우스? 하우스라…. 내 머릿속에는 지중해 연안의 하얀 집들이 떠오르며 덩달아 가슴이 훈훈해졌다. 물론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틀간 머물 집이라며 아내가 보여준 게스트하우스는, 그저 좀 깨끗한 민박집이었다. '게스트'라는 영어 단어의 뜻 중에 민박이라는 뜻이 있었던가? 그렇게 게스트하우스는 나에게 다가왔다.

제주 여행을 시작한 지난 19일부터 2박 3일동안 우리는 여행사에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렌트카까지 공짜로 구했다. 아내의 만족도는 하늘을 찔렀다. 전날까지 비를 뿌리며 애간장을 녹이던 하늘도 제주에 도착하자 바다빛으로 바뀌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체크인 시간인 오후 5시까지 시간이 남는 관계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제주 흑돼지구이집 또한 '대만족'이었다. 모든 게 순조로왔고, 기대 이상이었다.

짐을 풀기 위해 드디어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듯한 시골 마을의 골목길을 헤매다가 간신히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말 그대로 민박집이었다. 주인 부부는 마당에 널어둔 이불을 열심히 털고 항균용 탈취제를 뿌리고 있었다. 햇살을 받으며 마당 한가득 널려있는 이불을 보는 순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보다, 마치 시골의 삼촌댁에 놀러온 느낌이 든 건, 풍경이 너무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리라.

이 글은 제주 여행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제주 최저 비용 체험기는 더더욱 아니다.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기존의 민박집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서의 2박3일간 느낀 점은 무엇인지를 적은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숙소를 게스트하우스로 정한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의 모든 제주 여행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니 어쩌면 자연과 사람이라는 제주 본래의 여행 콘셉트와 가장 잘 맞아떨어진 여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엄마와 형이 샤워하러 간 사이에 둘째 아들 녀석이 이부자리를 펴고 있다.  객실 내부로는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어, 여름철 각종 벌레나 바퀴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게스트 하우스 객실 엄마와 형이 샤워하러 간 사이에 둘째 아들 녀석이 이부자리를 펴고 있다. 객실 내부로는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어, 여름철 각종 벌레나 바퀴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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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2개와 샤워실 2개가 있는데, 수시로 주인부부가 청소를 해주셔서, 늘 깨끗한 상태가 유지된다
▲ 게스트 하우스의 내부 화장실 2개와 샤워실 2개가 있는데, 수시로 주인부부가 청소를 해주셔서, 늘 깨끗한 상태가 유지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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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머물었던 게스트하우스를 들여다 보자. 첫 번째, 게스트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경제성이다. 성수기에도 비교적 부담없는 비용(4인 가족 기준 1박 9만 원)으로 숙박할 수 있다. 더구나 혼자서 여행을 오거나, 친구와 단둘이 떠난 여행이라면 1인당 2~3만 원의 비용으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제주 여행을 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행 코스가 워낙 많기 때문에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은 거의 잠 잘 때 뿐이다.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느꼈던, '하루저녁 자는데 이렇게 비싼 돈을?' 따위의 허망함을 달래고도 남는다.

두 번째, 기존의 민박집이나 펜션과는 달리 매우 청결하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샤워실도 워낙에 청소를 꼼꼼히 하고, 틈틈이 체크를 하기 때문에, 늘 깨끗한 상태가 유지된다. 게스트 하우스의 첫인상이었던 이불 널고 터는 모습 또한 그 청결함을 위함이었다. 주인 부부의 하루 일과 중 가장 큰일이 청소와 빨래 그리고 이불 말리기란다. 아파트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느 볕 좋은 날 옥상에 하루종일 널어둔 이불에서 풍기던 햇살의 싱그러운 냄새를 간만에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게스트하우스에는 푸근함과 인간미가 있다. 길고양이들이 쉬어가는 마당이 있고, 소박하게 가꿔진 작은 화단이 있고, 여행자들과 주인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밥을 먹는 살가운 시간이 있다. 밥이 부족하면 직접 밥솥에서 퍼다 먹으면 되고, 자신이 먹은 그릇을 설거지 하는 동안, 주인 부부는 후식으로 과일을 준비한다. 여느 대가족의 아침식사 풍경이 고스란히 재현된다(우리가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의 아침 식사는 주인 가족이 먹는 식사 그대로였는데, 인당 3000원만 내면 동참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제주의 자연 그대로를 고요함과 더불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 주변으로 올레길 코스가 만들어져 있어서, 산책을 겸하여 현무암 돌담길을 한적하게 돌아볼 수 있다. 낮은 돌담 너머로 제주 주민들의 삶을 기웃거릴 수도 있고, 몇 분만 걸어가면 옥빛 바다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밤늦게까지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도 없고,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자연의 바람에 여행의 고단함을 잊고 편히 잠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게스트하우스에는 고향집에 대한 향수가 있다. 이곳은 어릴 적 작은 우물이 있던 외할머니 댁을 떠올리게 한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슬레이트 처마 지붕 아래 쪼그려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 그런 곳이다. 삶에 지쳐 쉴 곳이 필요할 때, 아무 때나 연락 없이 찾아가도 반겨줄 법한 고향마을. 꿈엔들 잊힐리야, 까지는 아니더라도, 저 남쪽 섬 마을에 나를 반겨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이번에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다.

제주를 닮은 주인 부부의 마음씨까지

돌아오는 날 아침, 비행기 시간이 이른 관계로 아침 준비를 못 해 미안하다며 주섬주섬 챙겨주던 간식거리는 제주를 닮은 주인 부부의 마음씨 그 자체였다. 잠깐 머물러 가는 인연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그 마음씨는 제주의 자연 속에서, 비바람과 햇살을 통해 서서히 영글어진 것이리라.

최저 경비를 목표로 출발한 이번 제주 여행에서 최대의 행복과 기쁨을 추가로 얻었다면, 그 일등 공신은 바로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오순도순 부대끼던 시간들일 것이다. 그런 기분 탓이었을까?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아이들과 아내의 웃는 얼굴이 유달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제주는 자연이고, 게스트하우스는 자연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쉼터, 그 자체인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 주변의 마을길을 석양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제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게스트 하우스 주변의 마을길을 석양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제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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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게스트하우스, #제주 여행, #반값 항공권, #민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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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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