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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5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 안산시민들이 주말이면 즐겨 찾는 수암봉 끝자락에 하늘공원이 있습니다. 하늘공원은 1986년 안산시 공설 공원묘지로 설치된 후 지금은 묘역과 봉안시설이 나란히 자리 잡았습니다. 

묘역을 지나면 담장 모양의 봉안담이 눈에 들어옵니다. 봉안담들 중 한 곳에 '세월호 희생자(단원고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기역자 형태의 봉안담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 100여명이 마지막 쉼터 삼아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4월 15일까지 교실에서 웃고 떠들며 꿈과 희망을 키우던 18살 학생들이 이제는 고인이 돼 정사각형의 봉안함에 칸칸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세월호 참사 100일인 7월 24일을 맞이했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사고가 났던 4월 16일에 멈춰선 채 꼼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맑은 모습의 사진과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봉안함에는 가족과 친구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쪽지들이 빼곡히 붙어 있습니다. 살아생전 더 안아주지 못하고, 더 사랑해주지 못해 더 보고 싶은 엄마 아빠와 형제들의 한(恨)과 분노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하늘공원서 만난 대학생 "수사·기소권 막는 이유? 감출 게 많은 거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100여명의 유해가 안치된 안산 하늘공원 봉안담 앞에서 추계예술대 윤정규 학생이 2학년 7반 이민우군의 영정을 지켜보고 있다. 봉안담에는 꽃과 사진, 추모 글로 장식된 봉안함에는 아이들이 평소 즐겨 먹던 감자튀김, 막대사탕, 초콜릿 등이 붙어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100여명의 유해가 안치된 안산 하늘공원 봉안담 앞에서 추계예술대 윤정규 학생이 2학년 7반 이민우군의 영정을 지켜보고 있다. 봉안담에는 꽃과 사진, 추모 글로 장식된 봉안함에는 아이들이 평소 즐겨 먹던 감자튀김, 막대사탕, 초콜릿 등이 붙어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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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일을 이틀 앞둔 22일 오후 '단원고 봉안담'을 다시 찾았습니다. 시설관리인이 장맛비에 대비해 천막을 치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어서 그럴까, 텅 빈 봉안담 앞에 아래 위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이 홀로 퍼질러 앉아 한참을 꼼지락거립니다. 누굴까?

이윽고 청년은 한 학생의 영정 옆에 쪽지를 정성스레 붙인 후 지그시 쳐다봅니다. 엉덩이를 툴툴 털고 일어서는 청년을 뒤쫓아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우며 사연을 들었습니다. 자신을 추계예술대 작곡과 3학년 윤정규라고 소개한 그는 "친구 동생인 (이)민우를 보기 위해 다시 왔다"며 "친구보다 민우하고 더 죽이 잘 맞을 정도로 친했다"고 말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그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수준 이하인 것 같아요. 유가족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자꾸 의사자니 뭐니 해준다고 하니까요. 결국 이것 먹고 떨어지라는 거죠…. 수사·기소권을 기를 쓰고 막는 건 그만큼 책임지고 물러날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아닌가요? 자기들 목이 떨어질까 두렵고 무서운 거죠. 그만큼 감출 게 많다는 것이기도 하구요."

단원고 2학년 7반 이민우군의 같은 반 친구 중 생존 학생은 단 1명뿐이었습니다. 담임인 이지혜 선생님은 5월 3일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반 아이들과 함께 발견됐습니다. 이 선생님은 안산 강서고를 졸업하고 '국어 선생님을 좋아해 국어교사가 된' 후 이웃 단원고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이 선생님은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1박 2일 도보행진에 나선 엄마 아빠들이 23일 오후 하늘공원을 찾았습니다.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의 영정 앞에서 사진을 어루만지며 참았던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나지막이 약속했습니다.

"너무너무 보고 싶구나…. 얘들아, 엄마 아빠들이 싸워서 너희들의 억울함 꼭 풀어줄게."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잠든 예슬이... '엄마 발에 구두를 신겨드리렴'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안치된 단원고 2학년 3반 이예슬양의 봉안함 옆 벽에 서울 서촌갤러리에서 지난 4일부터 열리고 있는 ‘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 두 장이 붙어 있다.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안치된 단원고 2학년 3반 이예슬양의 봉안함 옆 벽에 서울 서촌갤러리에서 지난 4일부터 열리고 있는 ‘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 두 장이 붙어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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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떡해! 아 무서워! 야 심하다 이 정도는. 여기가 지금 복도입니다. 구조 좀! 헬리콥터 와! 얘들아! 안녕! 되게 많이 기울었다. 힘들어! 살려줘! 어떡해! 나 너무 무서워! 와! 바다로 뛰어내린다! 아빠도 미안하고! 살아서 보자."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22일 공개한, 단원고 2학년 3반 고 박예슬양이 친구들을 촬영한 동영상 속 대화의 일부입니다. 4월 16일 오전 9시 37분부터 9시 41분 28초까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예슬이와 친구들은 서로 용기를 북돋워주며 구조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슬이의 반 친구들 중 구조된 학생은 8명에 불과했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꿨던 예슬이를 찾아 화성 효원납골공원으로 가는 23일은 비가 흩뿌렸습니다. 중소규모의 공장들을 쉼 없이 지나 40여 분 만에 도착한 공원에는 현재 단원고 학생 56명과 선생님 6명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고인들은 1동 건물 3층 A, K, P열에 나눠져 봉안되어 있습니다.

예슬이가 잠든 봉안실 '3K-19-3' 곁에는 단원고 친구 4명이 함께 있습니다. 예슬이 봉안함 위에는 깜찍한 포즈로 찍은 개인사진이, 아래쪽에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평소에 즐겨 먹은 듯한 쫀득쫀득한 초코바와 달달한 막대사탕이 봉안함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습니다.

예슬이가 친구들과 잠든 옆 벽엔 포스터 두 장이 붙어 있습니다. 서울 서촌갤러리에서 지난 4일부터 무기한 열리고 있는 '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 포스터입니다. 예슬이가 유치원 때부터 4월 14일까지 그린 채색화와 드로잉 중 30여 점과 밑그림과 도면으로 전문가가 제작한 구두와 3D 작품 '살고 싶은 집'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예슬이 어머니의 발 사이즈는 어떻게 될까요? 240mm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예슬이가 디자인한 구두를 어머니 발 사이즈에 맞게 전문 디자이너가 실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슬이의 어머니는 전시회 개막 당일 완성된 구두를 신고 또 신어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구두는 전시회가 끝나면 어머니 품으로 전해집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꾸고, 영화배우 공유를 좋아했으며 1년 넘게 사귄 남친이 있다며 '크크크' 짓궂게 웃던 아이. 아름답지만 이루지 못한 꿈의 조각을 남긴 그 아이는 이제 밤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잠든 납골함 건너편에서는 담임선생님 김초원 교사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공원을 나서는 뒤로 선생님의 자분자분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예슬아, 너는 친구들과 함께 여름이면 꽃으로 피어나고, 겨울에는 눈으로 내려올 거란다. 내년 봄 꽃망울이 다시금 세상을 찾아올 때, 네 손으로 엄마의 발에 구두를 신겨드리렴."

꿈이 죽음이 되어 세상에 나온 아이들... 서호추모공원의 시연이·차웅이

평택 서호추모공원 봉안함에 안치된 단원고 김빛나라, 유예은, 김시연양이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모여 있다. 봉안함 안에는 여학생들답게 인형, 화장품 등이 들어 있다. 시연양이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난 말야’는 디지털 완성본으로 만들어져 8월 중으로 부모님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평택 서호추모공원 봉안함에 안치된 단원고 김빛나라, 유예은, 김시연양이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모여 있다. 봉안함 안에는 여학생들답게 인형, 화장품 등이 들어 있다. 시연양이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난 말야’는 디지털 완성본으로 만들어져 8월 중으로 부모님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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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납골공원을 나서며 내비게이션으로 평택 서호추모공원을 검색하니 20분가량 걸린다고 예고했습니다. 화성시와 평택시의 경계를 막 벗어나자 가파른 언덕 위를 가리키는 서호추모공원 안내판이 보입니다. 5만5천 기를 수용해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추모관인데도 내부시설은 산뜻합니다.

이곳에는 단원고 학생 83명과 선생님 2명이 영면하고 있습니다. 봉안실 152호에는 2학년 1반, 3반, 9반 학생 8명이 모여 있습니다. 모두 여학생입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의 딸 김빛나라양과 유경근 대변인의 딸 유예은양, JTBC 9시 뉴스 인터뷰를 앞두고 시신이 발견돼 손석희 앵커가 울먹였던 김중열씨의 딸 김시연양 등입니다.

봉안실 101호에는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먼저 숨진 채 발견된 2학년 4반 정차웅군이 반은 다르지만 친하게 지냈던 4명과 함께 있습니다. 부모들이 '절친'과 떨어지면 외로울까 아이들의 유골 봉안함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입니다. '검도사범이 꿈'이었던 차웅이의 대각선 아래에 있는 박아무개양의 봉안함에는 "의로운 차웅이랑 같이 있게 돼서 참 좋다, 다 같이 잘 지내렴"이라고 쓴 쪽지 글이 붙어 있습니다.

아이들의 봉안함에는 유골과 함께 학생증, 안경, 인형, 화장품,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 들어 있습니다. 봉안함 유리에는 "시연아 사랑해",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내" 등과 같은 유가족과 친구들의 쪽지 글이 붙어 있습니다. 칠흑보다 어두웠던 바다 속에서 헤어졌던 아이들은 이제 작은 봉안함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듯 지내고 있습니다.

서호추모공원의 아이들 중 "엄청난 음악교사"를 꿈꿨던 시연이는 발견 당시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에 직접 기타를 치며 부른 자작곡 <난 말야>를 남겼습니다. 예슬이 전시회를 추진했던 서촌갤러리 장영승 대표가 이 노래를 작곡가 윤일상에게 소개했고, 8월 중으로 디지털 완성본으로 만들어져 시연이 부모에게 전해질 예정입니다. 세월호와 무능한 박근혜 정부가 아이들의 육신을 빼앗아갔지만, 아이들의 꿈마저 앗아가진 못한 것입니다.

예슬이와 시연이처럼 꿈이 죽음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예슬이와 시연이보다 더 많은 꿈을 이루고 싶었던 단원고 2학년 아이들의 못다 한 희망처럼 되지 않도록, 무엇보다 이 땅 고등학교 2학년들의 꿈과 희망을 온전히 지켜주기 위해, 빛나라와 예은이, 시연이 아빠 등 단원고 엄마 아빠들이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안산에서 국회까지 1박 2일 도보행진을 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적폐 척결하는 게 진짜 '국가개조'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진도 팽목항에 빨간색 '하늘나라 우체통'이 설치됐습니다. 우체통은 실종자 가족들과 아픔을 나누는 한편 유가족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편지를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0416'이라는 문패가 붙은 우체통 양 옆의 밧줄 두 개는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소통의 끈으로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하나' 됨에 대한 다짐을 의미합니다.

우체통 옆에는 세월호 침몰 당시 갑판까지 나왔다가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선실에 들어갔다가 끝내 나오지 못한 2학년 2반 양온유양이 생전에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겁내지 마라.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슬퍼하지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조급해하지 마라. 멈추기엔 이르다/ 울지 마라. 너는 아직 어리다."

마치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가로막고 있는 강고한 현실을 직시하듯 온유가 남긴 글은 우리의 폐부를 깊숙이 찌릅니다. 시련을 단련의 계기로 삼는 고통 없이 세월호 특별법은 제정될 수 없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합니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지 못할 경우 제2의, 제3의 참사는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 '멈추지 말라'고 합니다.

하늘나라 우체통은 구원과 함께 새 생명과 새 나라를 향한 열망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 우체통처럼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길 함께 소망하는 것. 떠난 자와 남은 자가 하나 되어 대한민국의 적폐를 척결해갈 '국가개조'의 진짜 모습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그래스루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산 하늘공원, #효원납골공원, #서호추모공원, #세월호 참사 100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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