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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이다. 헌법 제3조의 규정이다. 한반도는 북쪽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남쪽으로 부산과 목포가 이어지는 남해안의 땅이다.

1903년, 일본인 고토 분지로(小藤 文次郞)는 한반도 지형을 두고 '중국을 향해 뛰어가려는 토끼 모양'이라고 정의했다. 중국만 쳐다보는 사대주의 국가로 자주성 없이 살아왔으니 앞으로는 일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퍼뜨리려는 불순한 주장이었다. 1908년, 이에 반발한 최남선은 <소년> 창간호를 발간하면서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의 땅으로 그렸다.

한반도의 '호랑이 꼬리'로 알려지는 포항 호미곶 해변에 가면 호랑이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사진 왼쪽 아래에는 많이 알려진 '상생의 손' 조형물도 보인다.
▲ 호미곶의 호랑이 형상 조형물 한반도의 '호랑이 꼬리'로 알려지는 포항 호미곶 해변에 가면 호랑이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사진 왼쪽 아래에는 많이 알려진 '상생의 손' 조형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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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토는 언제부터 호랑이 모양이었을까? 고구려 전성기에는 광활한 만주가 모두 우리 땅이었으니 호랑이보다 몇 배나 몸집이 컸고, 통일신라와 고려 때에는 함경도에도 힘이 미치지 못했으므로 역시 호랑이 모양이 될 수 없었다. 우리나라 국토가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확정되어 지금 같은 면적을 가지게 된 것은 김종서와 최윤덕을 앞세워 4군과 6진을 설치한 세종 때부터였다.

정치적, 군사적 의미가 아니라 지리적 의미에서는 한반도가 언제부터 호랑이 모양이 되었을까? 지구가 태동한 때부터? 그렇지 않다. 지금부터 불과 1만2천 년 이전만 해도 한반도는 중국은 물론 일본과도 붙어 있었다. 제주도와 대마도도 섬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중국에서 백령도, 제주도, 대마도, 일본 본토까지 온통 걸어서 돌아다녔다.

아득한 세월 동안 중국 쪽에서 불어보는 강풍을 맞아온 탓에 백령도의 서쪽 해벽은 흙들이 떨어져나가 암석 절벽만 남았고 나무들이 자라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 백령도 해벽 아득한 세월 동안 중국 쪽에서 불어보는 강풍을 맞아온 탓에 백령도의 서쪽 해벽은 흙들이 떨어져나가 암석 절벽만 남았고 나무들이 자라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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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마지막 빙하기는 200만 년 전부터 1만2천 년 전 사이였다. 빙하기가 끝나자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물이 밀려들어오자 바다 수면은 100m 이상 확 높아졌다. 한반도와 중국 사이가 서해로 변했고, 제주도와 대마도 둘레도 바다가 되었다. 일본열도는 물론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는 그 때에 형성되었다.  

백령도는 섬이 아니었다
백령도는 섬이 아니었다. 신라인들은 서해 바닷가를 따라 조심조심 배를 저어 당나라에 갔다. 항해술이 미숙했던 탓에 서해를 가로질러 중국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결과 금성에서 장안까지 가는 데에는 무려 4개월이나 걸렸다. 당연히 석기인들은 서해 멀리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백령도에서는 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된다. 이는 백령도가 섬이 아니었던 때에 그 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중국과 한반도 사이를 걸어다녔고, 그 중 일부는 백령도에 거주하기도 했으며, 섬 주위가 바다로 변하자 나오지 못한 채 정착하여 구석기 유물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해안선이 지금처럼 형성된 때가 1만2천년 전이라면, 지리산, 설악산, 한강, 낙동강 등의 높낮이는 언제 결정해졌을까? 백두산 화산 폭발이 926년 발해 멸망의 중요 이유 중 한 가지라는 주장은 이 질문에 대한 약간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9천만 년 전부터 6천만 년까지 약 3천만 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계속 화산이 폭발했다. 단 한 번의 백두산 대폭발로 '해동성국' 발해가 유적도 남기지 못한 채 모두 땅에 파묻혔다는 가설을 생각해보면, 3천만 년 동안 이어진 오랜 화산 폭발은 산을 강으로 만들고, 강을 산으로 바꾸었을 터이다.

제오리 공룡발자국 유적지에서 바라본 금성산의 모습
▲ 우리나라 최초의 사화산 금성산 제오리 공룡발자국 유적지에서 바라본 금성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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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금성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화산이다. 금성산은 정읍 내장산, 고창 선운산과 더불어 한반도의 대표적 화산암 지역으로 손꼽힌다. 지금도 금성산을 오르면 화산 폭발의 흔적인 흑요석(黑曜石), 일명 오석(烏石)들이 지천으로 뒁굴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의성읍 치산리의 칠흑같이 검은 베틀바위 역시 의성 일대가 사화산 지역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화산 폭발만이 아니라, 빙하기 때의 대규모 지각 변동 또한 한반도 곳곳의 높낮이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비슬산 암괴류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연 유산이다. 깊은 땅속에 묻혀 있던 둥근 화강암(岩) 덩어리(塊)들이 빙하기 지각 변동 때 땅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2km에 걸쳐 흘러내린(流) 끝에 돌이 강을 이룬 듯한 장관을 형성하고 있는 비슬산 암괴류(岩塊流, 돌강)는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유적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둥굴둥글한 돌들이 굴러내려 강을 이룬 듯한 장관을 보여주는, 빙하기가 만든 비슬산의 풍경
▲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유적을 보유한 비슬산 높은 곳에서 아래로 둥굴둥글한 돌들이 굴러내려 강을 이룬 듯한 장관을 보여주는, 빙하기가 만든 비슬산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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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 대구경북의 빙하기 유적을 답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는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대구 앞산 고산골 공룡발자국을 둘러보았고,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화산인 의성 금성산,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유적을 보여주는 비슬산을 찾아봅니다. 그리고 한반도 지형이 호랑이 모양이라고 말할 때 그 꼬리에 해당되는 포항 호미곶도 살펴봅니다. 호미곶 지명은 최남선이 한반도 지형을 호랑이 모양으로 그렸을 때 이전부터 '호랑이꼬리(호미)'로 불려온 곳입니다. (2) 금성산과 더불어 답사할 곳 : 선운마을, 조문국박물관, 금성산고분군, 탑리5층석탑 (3) 비슬산암괴류와 더불어 답사할 곳 : 유가사 일연시비, 빨간마후라 기념관, 사효굴, 대견사터 3층석탑 (4) 호미곶과 더불어 답사할 곳 : 호미곶등대, 국립등대박물관, 연오랑세오녀 조형물, 상생의 손



태그:#비슬산, #금성산, #한반도, #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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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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