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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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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세월호 선내에선 수차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승객들은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 믿음은 비극으로 돌아왔다.

23일 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열린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의 5차 공판에선 이 선내방송이 누구의 책임인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이 벌어졌다.

이날 법정에는 세월호 승무원 강혜성(33)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4월 16일 선내방송을 했던 주인공이다. 검찰 수사 내용 등을 종합하면 강씨는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크게 네 번에 걸쳐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라"고 방송했다. 또 고 양대홍 사무장의 지시로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착용하라"고 안내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한 이유

최초 방송은 강씨 본인의 판단이었다. 사고 당시 동료 승무원 고 박지영·안현영씨와 3층 안내데스크 쪽에 있었던 그는 배가 기우뚱한 뒤 선회하는 느낌이 들었다. 승무원인 자신이 당황하지 말고 승객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강씨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우려사고에 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이후 자신의 상관인 고 양대홍 사무장에게서 안전방송을 하라고 지시받은 강씨는 "위험할 수 있으니 움직이지 마시라"는 방송을 두 번쯤 반복했다. 그는 "안전방송이 따로 정해져 있는지 모르지만, 승객들을 안심시키면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8시 55분쯤 해경에 신고한 다음에는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라, 해경 구조정과 주변 어선이 본선 구조를 위해 오고 있다"라고 방송했다. 그 뒤 청해진해운 본사와 통화한 강씨는 같은 방송을 되풀이했다. 9시 20분쯤 마지막으로 양 사무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씨는 그에 따라 "구명조끼가 손에 닿으시는 분들은 전달해서 안 입은 분들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몇 번 더 방송했다.

이때 강씨 손에는 무전기가 없었다. 그는 "저와 고 양대홍 사무장, 고 박지영과 정현선, 안현영 등 안내소에서 근무하는 직원 5명은 모두 1대씩 무전기를 소지했는데 배가 기울 때 제 것을 놓쳐버렸다"고 말했다. 강씨는 대신 박지영씨에게 "조타실은 어떤 상황인지 무전이나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 어떤 상황 전달도, 지시도 없었다"

그런데 조타실과 연락해본 박씨는 "연결이 됐지만 흐느끼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가 점점 기울어서 조타실로 찾아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강씨는 "(선장으로부터) 어떠한 지시사항도 오지 않아서 제가 (대기방송을 해야겠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정확한 지시가 왔거나 침몰 상황을 전달받았다면 계속적으로 대기방송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박지영이) 수십 번 무전과 전화로 조타실에 확인했지만 전달받은 사항이 없습니다. 양대홍 사무장 말고는 누구에게서도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요."

선원들의 변호인은 강씨의 방송을 두고 몇 가지 의문을 드러냈다. 그가 ▲ 해양경찰청 헬기와 구조정이 도착한 이후에도 몇 번 더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하고 ▲ 조타실 쪽에서 잘 들리지 않는 '여객구역 방송'을 했던 점 등이 납득가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강씨는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대기방송까지며 그 이상은 조타실의 지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장의 퇴선지시를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는 것. 강씨는 이어 "조타실에서 전혀 선내방송을 못 듣는 게 아니며 배가 기운다고 무전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한 변호인은 그에게 "해경에 신고했을 때 '지금 구조하러 가니까 선내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계속 하라'고 했냐"고 물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의 책임이 해경에게 있지 않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강씨와 해경의 대화내용 녹취록을 제시하며 "해경은 지금 경비정이 가고 있으니까 탈출이 가능하도록 있으라고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파란바지' 아저씨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한편 이날 증인 가운데에는 사고 당시 세월호 곳곳을 오가며 승객들을 구조했던 '파란바지 아저씨' 김동수(49)씨가 있었다. 그는 증인 선서를 마친 뒤 "유족들에게 사과 한 마디를 하고 싶다"며 뒤돌아섰다. 김씨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방청석을 향해 인사한 다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끝까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해서…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임정엽 부장판사는 신문이 끝나자 그에게 "증인처럼 용감한 사람을 보기 어려운데 (사람들을) 많이 구하지 못했다며 고통받으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분들을 구했다는 자부심으로 정신적 고통에서 빨리 회복하시길 바란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재판부는 24일에도 일반인 승객과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등 또 다른 생존자들의 증인 신문을 진행할 계획이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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