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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보인 것은 지난 5월 19일 대국민담화 자리에서였다. 세월호가 맹골수도의 거센 물결 속으로 가라앉은 지 34일이 지났을 때였다. '철의 여인'인 박 대통령에게서 눈물을 짜낸 이들은 세월호의 '영웅'들이었다. 안산 단원고 학생 정차웅과 권혁규, 이들을 가르친 남윤철·최혜정 교사, 그리고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양대홍 씨 등이 주인공이었다.

사람들은 이들의 헌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아비규환의 침몰 순간에 친구에게 구명 조끼를 건넨 뒤 또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 결국 목숨을 잃은 정차웅군은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선원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을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한 박지영씨는 또 얼마나 많은 이를 뭉클하게 했던가. "배가 많이 기울었다, 지금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해"라면서 단호하게 전화를 끊고 사지로 뛰어간 양대홍 사무장은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적셨다.

이들 세월호의 영웅은 길이 기억되어야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영웅이 필요한 곳이야말로 불행한 곳'이라고 했다지만, 그런 영웅마저 없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 영웅들이 있기에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며 나날을 살아갈 수 있기에 말이다.

세월호 사고 100일을 맞는 오늘(24일), 나는 이들 세월호 영웅과는 다른 얼굴의 희망 지킴이들을 떠올리려고 한다. 그들은 정차웅군이나 박지영·양대홍 승무원처럼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 않았다. 사람들을 저절로 고개 숙이게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시나브로 꺼져가는 세월호의 불씨를 계속 살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희망 지킴이①] 김병권 세월호가족대책위 대표

김병권 유가족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제가 죄를 졌다면 내 자식에게 죄를 짓고 있다. 딸의 원한을 풀어주고 안전한 나라를 딸의 이름으로 만들고 싶다"며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김병권 유가족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제가 죄를 졌다면 내 자식에게 죄를 짓고 있다. 딸의 원한을 풀어주고 안전한 나라를 딸의 이름으로 만들고 싶다"며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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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그는 지금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세월호 사고로 사랑하는 딸 고 김빛나라양을 잃었다. 김빛나라양은 진도 맹골수도 깊은 바닷속에 수장당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여 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지금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대한민국이 누구에게나 안전한 나라가 되기를 원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 어제(23일), 세월호 침몰사고 100일을 맞이해 유가족들이 1박 2일 일정으로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를 출발해 국회를 거쳐 청와대에 이르는 100리 길을 걸으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 유족 등 피해자가 추천하는 자문단이 참여하고, 특별위가 수사권 및 기소권을 갖고 엄정하게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일말의 책임을 지고자 하는 정부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사람이 있고 국가가 있는 법이다. 법 이전에 사람이 있었다. 법적 원칙과 안전성 이전에 수백 명의 유가족들이 겪는 절망과 아픔을 먼저 어루만지는 게 국가의 책무 아니던가.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잊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더위 속 단식과 힘겨운 도보행진, 수백만 명이 참여한 서명지를 통해 간절한 외침을 계속하는 이유다. 세월호의 진실이 수장된다면 또 다른 세월호들이 대한민국을 강타할 것이다. '이것도 국가인가'라는 국민들의 분노 서린 물음에 진정성 있는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면 대한민국호는 정녕 침몰할지도 모른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김 대표를 희망 지킴이의 맨 첫 자리에 놓는 이유다.

[희망 지킴이②] 세월호 유가족에 힘이 되는 '앵그리 맘'들

앵그리 맘(Angry Mom). 나는 대한민국 희망 지킴이의 두 번째 자리에 이들을 놓으려 한다. 가슴에 대못 박기 식의 막말과 온갖 음해 속에서도 김 대표를 포함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로 하여금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내딛게 만드는 '배후'에 이들 앵그림 맘이 굳게 자리잡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머리에 쓰거나 목에 두른 노란 손수건은 시나브로 잊혀져가는 세월호의 아픔을 우리에게 강하게 일깨워 준다.

앵그리 맘의 힘은 이미 여실히 드러났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치러진 6·4 지방선거에서 침몰하는 대한민국 교육에 강한 경고장을 보낸 바 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시·도 중 13곳에서 탄생한 진보교육감은 앵그리 맘을 빼놓고선 설명하기 힘든 이례적인 결과였다. 전무후무한 진보교육감 시대는 이들 앵그리 맘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7월 15일, 416개의 노란 상자에 담겨 국회에 전달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청원' 350만 1266명의 서명 역시 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나는 지난 7월 12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약 1시간에 걸쳐 서울 신촌 이화여대 입구에서 전북 지역 선생님 80여 분과 함께 거리 선전전을 펼쳤다. 정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반대하고 정치권에 교원노조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우리 옆 지하철역 입구에서 전교조 서울지부 소속의 여자 선생님 몇 분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청원 서명을 받고 계셨다. 선생님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세월호 특별법 청원 서명을 해 주세요'를 외쳤다. 후텁지근한 날씨와 갈라지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는 시민 한 명 한 명을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서명을 호소했다.

그들의 뜨거운 외침 덕분이었을까. 길을 오가던 수많은 시민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서명대 앞에 줄을 서 기다렸다가 서명을 하고 가는 이도 있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부터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던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분노하는 엄마'는 강하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자리였다. 노란 수건으로 상징되는 앵그리 맘을 희망 지킴이의 두 번째 자리에 놓는 이유다.

[희망 지킴이③] 100리 도보행진 한 생존 학생 43명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지난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 국회 향한 행진 '진실을 밝혀 주세요'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지난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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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온 국민이 보았습니다. 저희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들은 법을 모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이렇게 나섰습니다. 가감없이 저희들의 뜻을 전해 주십시오."

지난 7월 16일,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해 돌아온 학생 43명이 안산에서 광명을 지나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1박 2일간 100리(40km) 도보행진을 시작하며 밝힌 글이다. 학생들은 사고 71일 만에 눈물을 뿌리며 등교했다. 수업이라고 온전했을까. 학생들은 죽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달렸을 것이다. 땡볕더위와 일부 어른들의 고약한 시선을 물리치고 기꺼이 길거리에 나선 이유가 아닐까.

도보행진은 그 몇 주 전부터 학생들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도보행진을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국회와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기 위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학생들은 '법'을 몰랐을 테지만 법의 '힘'은 알았을 것이다. 거리를 묵묵히 걸은 학생들은 수많은 시민을 불러모았다. 일상에 치여 세월호 참사를 잊어가던 우리를 되돌아보게 했다.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 43명을 희망 지킴이의 세 번째 자리에 놓는 이유다.

[희망 지킴이④·⑤] 이승현·김웅기군 아버지 이호진·김학일씨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사진 좌측)씨와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사진 우측)씨가 나란히 걷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사진 좌측)씨와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사진 우측)씨가 나란히 걷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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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43명의 생존학생들과 같은 이유로 길을 걷는 두 명의 중년남성이 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2학년 학생 고 이승현군 아버지 이호진(55)씨와 고 김웅기군 아버지 김학일(51)씨가 그들이다.

두 아버지는 지금 6kg짜리 십자가를 진 채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진도 팽목항에 이르는 750km의 먼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하루 25km씩 걷는 고난의 대장정이다. 7월 8일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들이 지고 가는 십자가는 다음 달 15일 대전에서 열리는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교황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십자가를 받으며 교황은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영정 사진만 보며 가만히 앉아만 있기에는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날 사랑스러운 아들들과 함께한 추억이 얼마나 새록새록 떠올랐겠는가. 그만큼이나, 자식을 지켜내지 못한 '못난 아비'라는 생각에 몸부림치지 않았을까. 중년의 두 아버지가 그 비통한 심정을 떨칠 길 없어 십자가를 멘 채 길을 나선 이유였으리라.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만 있었을까. 참사 100일째를 맞는 지금까지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는 그 어떤 진실규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사건에 많은 이가 경악했으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 바쁘다. 속절없이 물속으로 사라져간 세월호처럼 세월호의 기억도 망각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몰강스러운 일부 국민은 유가족 가슴에 못을 박는 언동을 서슴지 않는다.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 한 매실농장에서 발견된 사체가 세월호 사고 배후에 관한 열쇠를 쥐고 있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라는 것이 지난 22일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사망 이유에 대한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무능과 무책임으로 300명이 넘는 목숨을 수장한 대한민국호의 민낯이 다시 한 번 생생하게 드러났다. 구중궁궐에서 국가개조만 외치는 대통령,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는 비정한 정치인들은 또 어찌할 것인가. 2천 리 가까운 고난의 순례 길을 걷고 있는 두 아버지를 희망 지킴이의 마지막 두 자리에 놓는 이유다.

지금대로라면 1000일이 지나도 출구 찾기 힘들다

진도 앞 거친 맹골수도 바다 속에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 실종자 10명(24일 현재)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출구 없는 망망대해에 갇힌 세월호는 안전 시스템의 부재로 총체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호의 데자뷰가 아닐까.

세월호 사고로 외동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말했다. 세월호 사고로 아들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아직 이유를 모른다고. 아버지는 아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이 입던 옷을 입고 신던 신발을 신고 다닌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만들었다. 우리가 무언중에 동의한 제도와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한 명백한 인재다. 그런데 그 비정한 제도와 시스템은 여전히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소 속에서 휘청거리는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현재진행형으로 보는 까닭이다. 지금대로라면 100일이 아니라 1000일이 지나도 출구를 찾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련다. 제도와 시스템을 만든 것은 우리지만 그것을 다시 고쳐 세울 수 있는 것도 바로 우리임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믿음을, 절망과 불신의 밑바닥을 딛고 일어선 희망의 다섯 지킴이들에게서 본다. 그 역설의 전령사들이 계속 희망을 갖게 하는 것,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닐까. 대한민국호를 이대로 놔두기에는 우리 모두가 살아갈 앞으로의 나날이 너무나도 위태롭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세월호 참사 100일, #세월호 특별법, #세월호 진상규명,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앵그리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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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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