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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 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흘 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참사 100일이 다 되어가도록 딸을 잃은 이유조차 몰라 답답한 아버지의 눈가엔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또 맺혔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 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흘 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참사 100일이 다 되어가도록 딸을 잃은 이유조차 몰라 답답한 아버지의 눈가엔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또 맺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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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가 그렇게 많이 흘렀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4월 16일에 살고 있으니까요."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어느덧 100일. 언론이 각종 기획 기사들을 내놓으며 떠들썩한 것과 달리, 유경근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이 숫자 앞에서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유씨뿐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 국회 본청 2층 정문 앞에서 노숙 농성중인 희생 학생 부모들은 여느 때와 같이 반별로 모여 조용히 서명운동 작업 등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인 7월 24일이 됐지만, 가족들의 마음은 여전히 배가 침몰하던 그날 진도 팽목항에 서 있다. "사고가 일어난 날 이후로 바뀌거나 달라진 게 없어서 그렇다"고 유씨는 설명했다.

가족대책위는 지난 5월 7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 실종자 조속한 구조 ▲ 철저한 진상조사 ▲ 국민 안전대책을 요구했다. 약 두 달 반이 지난 지금, 여전히 실종자 10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며, 안전대책도 뚜렷하게 나온 게 없다. 참사는 아직 진행형이다.

"전례 없는 참사에는 전례 없는 방식 필요"

사고 원인 등을 규명하기 위한 움직임은 분명 있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졌고, 세월호 선사와 선원에 대한 재판이 열렸으며, 국회 국정조사도 성사됐다. 대한민국을 들썩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변사체로 발견됐다. 

여전히 유씨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다"고 했다. 참사의 당사자인 선원과 해경들은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다"는 식으로 발뺌하고 있고, 국정조사에서 진실을 밝혀야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도리어 세월호 사고를 '조류독감'에 비유해 부모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다.

4월 16일에서 멀어질수록 세월호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드는 것 역시 유족들을 한숨 쉬게 한다. '더 밝힐 게 뭐가 있느냐'는 말도 들려온다. 유씨는 "아직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수천, 수백 개의 '왜'라는 물음이 있다"면서 "배가 출항하는 시점부터 침몰하는 사이에 발생한 일이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세월호 특별법 국면에 접어든 이후에는 유족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등장했다. 엄마부대봉사단의 한 관계자는 "누가 죽으라고 했느냐"는 막말을 던졌고,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특별법 제정에 반대한다면서 세월호 유족 농성장에 난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수사권 등이 명시된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례가 없는 참사에는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조사권을 가진 국회의원도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제대로 밝혀낸 게 없다"며 "국회보다 더 힘이 없는 일개 진상조사위가 제대로 된 일을 하려면 사법적 권한 같은 막강한 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23일 유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국정조사, 진실 접근 못 했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 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흘 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 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흘 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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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사고 100일을 맞는 소회가 궁금합니다.
"100일이라 그러니까 100일인 거지 딱히 다른 건 없어요. 날짜가 그렇게 많이 흘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바로 어제 일같고, 그만큼 생생한 일이고…. 마지막으로 학교 데려다 준 날의 기억도 아직 생생합니다. 그냥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4월 16일에 살고 있으니까요."

- 가족대책위는 5월 7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 실종자 조속한 구조 ▲ 철저한 진상조사 ▲ 국민 안전대책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실종자 10명은 돌아오지 못했고, 사고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며, 안전대책도 뚜렷하게 나온 게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4월 16일이라는 거예요. 단순히 부모의 심정으로 4월 16일이라는 게 아닙니다. 그날 이후 바뀐 게 없어서 그래요."

- 그래도 검경합동수사본부 수사가 이뤄졌고 세월호 선원 재판도 진행중입니다. 사고 당시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가슴이 후련해진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도 없어요. 재판을 보면 마음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후련하지 않아요. 재판에 임하는 선원들의 자세가 한두 명 빼놓고는 다 회피하는 식이잖아요. '자기는 열심히 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건데, 정말 환장할 노릇이에요. 이들의 변명과 거짓말 때문에 밝혀져야 할 게 안 밝혀지고 있으니…. 그래서 답답합니다. 게다가 선원들의 잘못을 밝히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이후에 계속될 해경·해수부 조사는 얼마나 더 어렵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면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 국정조사 기관보고도 진행됐는데요. 진실에 어느 정도 접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그냥 '제로' 상태죠. 국정조사에서 정부기관 관계자나 해경이 나와서 말을 하면 그게 거짓말인지 여부를 파헤쳐야 하는데, 특히 여당 몇몇 의원들은 해경이 발뺌하는 얘기를 듣고도 '아, 그래요'하고 끝냈어요. 파헤칠 의지도, 준비도 없던 거죠."

"진상규명, 최소한 '다섯 가지' 밝혀내야"

- 가족 대책위는 현재까지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최우선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어느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입니까?
"'이미 다 배 가라앉고 해경이 구조 못 한 걸 생중계로 봤는데 뭘 더 조사해'라고 묻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하지만 유가족 입장에서는 아직도 수십, 수백 개의 '왜'란 질문이 가슴에 가득하거든요. 일단 세월호가 왜 출항했냐는 것부터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기상상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출항한 건 알겠는데, 다른 여객선들을 안 나간 상황에서 세월호만 출항한 이유를 우린 아직 듣지 못했어요.

또 하나는 급 변침입니다. 급 변침 때문에 배가 침몰한 거라고는 하는데, 왜 (급 침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말을 안 해줍니다. 급 변침이 왜 일어났는지, 급 변침이 직접적 원인인지, 니면 사고 결과인지를 밝혀내야만 합니다.

사고 직후 대응이 늦었다는 것도 이미 밝혀진 사실인데, 왜 늦었는지는 아직 못 들었습니다. 배가 이상하게 운항되면 그걸 바로 감지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데, 그걸 아무도 못 잡아냈잖아요. 그 배경을 깊숙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랑 국정원이 4월 16일 오전 9시 20분께 YTN 보도를 보고 사고 사실을 안 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나도 그때 집에서 YTN 속보 보고 알았어요. 나 같은 사람이랑 같은 시간에 사고를 파악할 거면 국정원이랑 청와대가 왜 필요합니까?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리고 해경이 사고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 배가 침몰할 때까지 40~50분의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때 탈출 지시만 제대로 내렸어도 애들이 살았을 거예요. 왜 탈출 명령 안 내렸냐는 거예요. 해경은 배가 많이 기울어서 못 올라갔다고 했는데, 말이 안 됩니다. 실제로 조타실 앞까지 올라간 사람이 있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진상규명은 이런 것들입니다."

'수사권' 부여 특별법 반대 이유, 결국 '적폐' 때문

- 세월호 특별법 국면에 접어든 이후로 '그만하라' '지겹다'는 반응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다고 봅니까?
"이유는 딱 하나라고 봅니다. 특별법 내용에 정부 책임이 강조돼 있어서 그런 거죠. 우리 유가족 쪽에서 원하는 특별법 내용이 그대로 진행되면, 현 정부나 관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는 게 불가피하거든요. 그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겠죠.

아시다시피 여당에서는 수사권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을 극렬하게 반대합니다. 제가 듣기론 여당 의원들, 특히 특별법 논의를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루에 수십 통씩 전화가 온대요. 절대 거기에 응해주면 안 된다고. 전화하는 사람들이 누구겠어요. 여당 지지하고 지원하고 해주는 사람들이겠죠. 자기들을 적극 지지하는 층에서 압박하고 찾아오고 하니까, 여당의원들이 이를 무시할 수 없겠죠.

그때부터 '아, 수사권·기소권이 명시된 특별법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회 전반의 부조리가 축약·집약된 게 세월호 몰사고라는 건 누구나 다 알잖아요. 이 부조리 안에 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죠. 그래서 특별법 논의가 구체화되면서부터 반대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항의하는 행동까지 나오기 시작한 거라고 봅니다.

- 소위 '적폐'를 도려내는 게 두려운 사람들이 특별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보는 것입니까?
"그렇죠. 적폐를 도려내면 어떤 사람들은 분명 잔혹한 시간을 겪어야 하는데, 그러기 싫은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 거죠. 그런 분들이 안타깝게도 힘 있는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의 방해를 이겨내려면 한쪽에서는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이 분명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국민들이 더 크게 힘과 여론을 모아야겠죠. 그러지 않고서는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힘을 이겨내기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 특별법 제정을 놓고 여야가 합의를 못 이루는 이유는 수사권 때문입니다. 가족 대책위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구상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전례 없는 참사는 전례 없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진상규명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기존 사례와 전례를 봤을 때 명쾌하게 진실이 규명된 적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명쾌하지 않은 전례를 따르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국회 국정조사를 보면서 더 확신했어요. 조사권을 지닌 18명의 국회의원들이 청와대나 정부 기관 사람들을 불러 놓고 자료 달라고 호통을 쳐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자료 달라면 주겠어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하려면 사법적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이러한 문제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에서는 자료제출 요청권만 주겠다는 입장인데요. 이것만으로 진상규명을 해내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강력한 권한을 줘야 합니다."


태그:#유경근, #세월호, #청와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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