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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 한 술 정말 좋아요
▲ 보리비빔밥 한 술 보리밥 한 술 정말 좋아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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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보리농사를 짓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미쳤다 한다. 벼 베고 서리 허옇게 내린 늦가을에 심는 게 아니어서 그럴까. 이른 봄 땅이 풀릴 무렵 씨를 뿌린다. (참고로 2014년 올해는 3월 16일 파종)

이러니 "저게 될까. 대체 언제 큰다니. 이래가지고 보리모가지나 열릴랑가 몰라" 하신다. 그래도 "망종(芒種) 때면 다 알아서 패요. 걱정 마쇼. 하지 때 베고 콩 심으면 딱 맞당께라우"하며 얼버무리곤 한다.

추운 지역에서는 봄에 보리를 심습니다.
▲ 봄보리 추운 지역에서는 봄에 보리를 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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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팔십 된 양반들이 하는 소리란 언제나 걱정뿐이다. 봄보리를 심는다니 20여 살이나 많은 분들이 내 기억만도 못하고 망각의 세월을 살고 있다. 당신들께서는 그걸 못 봤다는 이야기도 하니 내가 더 어른인가.

전라도지만 내 고향 화순 백아산 인근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무척이나 춥다. 강원도 철원과 어디가 더 춥나 내기를 하고 있다. 영하 25도까지 떨어지니 냉해가 심해 어린싹이 얼어 죽기 십상이다. 예전엔 봄보리를 우수와 경칩쯤에 논이 아닌 밭에 심었다. 먹고살기 힘든 지역이라 이모작을 가까스로 해내는 지혜가 우리 어른들에게 있었다. 나는 그걸 배워 감히 21세기에도 실천하고 있다.

백아산에 보리가 익을 무렵 참 기분이 좋습니다
▲ 백아산 보리 백아산에 보리가 익을 무렵 참 기분이 좋습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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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흰쌀밥만은 먹질 못한다. 단맛이 과하여 밥맛이 별로여서다. 소화도 별로다. 어떤 이는 소싯적을 이야기하면서 '보리밥은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한다. 건강식이고 더구나 쌀보다 비싼 보리를 먹을 수 없다고 하는 건 춘궁기적 '슬픈 추억'일 뿐인데 말이다.

보리밥이 이 정도는 되어야합니다. 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게 하려면 쉽지 않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 보리밥 보리밥이 이 정도는 되어야합니다. 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게 하려면 쉽지 않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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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질렸으면 그럴까 보냐.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얼지 말라고 겨울과 초봄에 보리밟기를 하는 날엔 온통 부르텄지 않더냐. 집집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께만 쌀이 조금 들어갔을 뿐 나머지 식구는 꽁보리 투성이였다.

보리엔 슬프고 아픈 추억만 있는 건 아니다. 아주 근사한 동무들과 지냈던 아름다운 추억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면 가슴이 떨립니다.
▲ 누런 보리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면 가슴이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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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다가 어른들 몰래 시퍼런 보리모가지를 베든 뽑아서 구워먹으면 얼굴이든 손이든 숯검정지가 되었지. 되바라진 아이들은 중학교 때 벌써 서로 뒹굴다가 애를 배기도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땐 보리 베러 다니면서 가시나들 수도 없이 쳐다봤다. 지금 보면 못 생겼지만 그 땐 어찌나 예뻤던지. 해림,  은하, 선옥이 또 다 밝히진 못 하겠다. 보리피리 여치집도 보릿대가 있어야 한다. 보리랑 복숭아랑 바꿔먹던 기억이 아련하다.

보리방아를 찧었다. 근방에 방앗간이 없으니 오가는 데 두 시간, 기다리는 시간 포함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어찌나 보리 베고 찧어오니 마음이 풀렸는지 모른다. ' 아, 또 한 가지를 해치웠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보리밥이다. "여보, 보리쌀 좀 더 넣어 봐요. 꽁보리밥 맛 좀 보게" "알았어요." 아침마다 이렇듯 난 보리를 찾는다. 된장찌개, 강된장, 청국장, 호박된장국, 감자된장국, 고추맑은국 어느 거나 어울리지 않은 게 없다.

보리 넣고 온갖 채소에 산나물 넣고 마구 비빈밥. 같이 드십시다.
▲ 비빔밥 보리 넣고 온갖 채소에 산나물 넣고 마구 비빈밥. 같이 드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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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고 둘러 쓱쓱 먹는 게 보리밥이다. 뿐이랴 산채원에 있는 온갖 산나물을 곁들이면 별미가 아니라 진미다. 진짜 세상에 있는 밥 중에 이보다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여름이라 몸이 덥다 한다. 아무리 차가운 걸 찾아도 잠시 뿐이다. 아이스크림인들 몸을 식힐까. 보리밥이 최선이다. 보리는 겨우내 추운 기운을 가득 담고 있어 성질 자체가 차갑다. 쌀밥에 보리 5%만 넣어도 밥맛이 달지도 않다. 씹히는 맛도 있어 먹는 기분이 다르다. 게다가 섬유질이 풍부하니 소화는 자연스럽다.

보리밥엔 강된장이 펠요하죠. 진하지만 짜지 않게 끓이는 비결은 누구에게 물어 볼까요.
▲ 강된장 보리밥엔 강된장이 펠요하죠. 진하지만 짜지 않게 끓이는 비결은 누구에게 물어 볼까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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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에 호박잎 싸자. 보리밥에 된장국 진하게 끓여야지. 매콤한 풋고추 준비하여라. 상추 배추 열무 곁들여 쓱쓱 비벼보자.

"여보! 여보. 뭐 해요."
"해강아 얼른 가져와라. 솔강이도 앉아라."

보리밥 한 그릇은 양만 많을 뿐 금세 배가 꺼진다. 가운데 까만 줄에 새겨진 금은 몸엔 금은보화다. 쌀에 못지않은 얼기설기 엉켜있는 섬유질은 몸을 부드럽게 한다. 보리밥 보리밥 꽁보리밥 추억이 아닌 건강의 보리밥이다.

해마다 보리를 심어 먹는 이유다. 보리는 건강이요 생명연장 꿈이다. 오늘도 난 보리밥을 먹는다.  아이구 속 시원하다.

덧붙이는 글 | 유기농 보리쌀 찧어 보리밥 먹고 있습니다, 산채원 카페(cafe.daum.net/sanchaewon)에서 확인 하세요. 010-9043-4549로 문자 보내시면 더 빠릅니다.



태그:#보리, #꽁보리밥, #산채원 김규환, #건강식 보리밥, #강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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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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