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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경북 청도군 송전탑 건설예정지에서 경찰과 대치중인 농성자들.
 지난 22일 경북 청도군 송전탑 건설예정지에서 경찰과 대치중인 농성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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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휘젓고 지나간 폭력에 가까운 공권력의 칼날이 이번에는 청도를 향하고 있다.

지난 21일 한국전력공사(아래 한전)는 주민 반발로 중단됐던 경북 청도군 각북면 송전탑 23호기 공사를 2년 만에 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500여 명은 공사 재개에 항의하는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70여 명을 막아서며, 몸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이날 10여 명의 주민과 시민단체 관계자를 업무방해 혐의로 연행했다. (관련기사: 송전탑 농성현장서 1명 또 연행...하루 연행자 총 10명)

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움막 뒤로 산중턱에 들어선 345kv 송전탑이 희뿌연 하늘 밑으로 보이고 있다.
▲ 움막과 송전탑 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움막 뒤로 산중턱에 들어선 345kv 송전탑이 희뿌연 하늘 밑으로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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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픈 노랫소리 울려 퍼지는 청도 송전탑 건설 예정지

'상황'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청도로 향했다. '상황'은 현장에서 송전탑 건설 공사가 실시되는 것을 뜻하는 주민들의 용어다. 지난 21일 자정 무렵에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 도착했다.

지방도로 902번을 따라 늘어선 수십 대의 경찰차가 차선 하나를 점거하고 있었다. 고요한 시골 마을에 요란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불빛을 쫓아 다다른 천막 주변엔 아직 잠 못 이루는 예닐곱 명의 검은 형체가 촛불을 둘러싸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바로 옆, 아스팔트 위에 마련된 궁색한 잠자리에는 이불 대신 보온덮개로 몸을 가린 채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다.

농성장 인근 불빛이 훤하게 비치는 또 다른 지역엔 방패를 든 수십 명의 경찰이 울타리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서고 있다. 몸을 곧추세운 경찰 사이로 울타리 너머에 야영장을 설치한 송전탑 공사 직원들의 텐트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 뒤, 산비탈에는 송전탑 건설 예정지로 향하는 불빛이 띄엄띄엄 산 중턱으로 이어져 있다.

22일 오전 1시 05분, 울타리를 막아선 경찰 앞에 선 어르신의 울부짖음이 적막한 시골 마을에 울려 퍼진다.

"뭐야 이건, 뭔데 갱찰이 한전을 보호하노..."

쉰 목소리의 어르신이 악다구니를 써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침묵뿐. 하지만 어르신의 "뭐야 이건..."으로 시작되는 외침은 지치지 않는다. 아우성이 잦아질 때 즈음엔 기타 연주와 함께 구슬픈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잠 못 이루는 청도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장의 풍경이다.

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옆으로 수십 명의 경찰 병력이 줄지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이 병력은 한전이 설치한 야영장과 직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줄지어 늘어선 경찰과 지역주민 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옆으로 수십 명의 경찰 병력이 줄지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이 병력은 한전이 설치한 야영장과 직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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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놓여진 먹다 남은 김밥.
 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놓여진 먹다 남은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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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무사와 황제출근, 그리고 잠 못 드는 농성자

천막에 맺힌 아침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전날 한전의 기습적인 공사 재개가 낳은 결과다. 주민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낯빛에서 긴장감이 읽힌다. 새벽 6시, 송전탑 건설 예정지의 하루가 밝아왔다.

해가 뜨자, 경찰들의 움직임이 재빨라졌다. 농성장 앞뒤로 줄지어 선 경찰 차량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도로 위에 차량 행렬이 늘어날수록 경찰 병력은 늘었다. 압도적인 경찰 숫자에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의 모습이 파묻혀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다. 경찰 떼가 삼평리 일대에 새까맣게 밀려들자 곧이어 송전탑 공사 자재를 실은 차량이 등장했다. 순간,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던 농성자들이 먹다 만 김밥을 내팽개치고 공사 차량으로 뛰쳐나갔다.

송전탑 건설 공사 자재를 둘러싸고 경찰과 농성자 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정작 자재 주인에 해당하는 한전 직원은 울타리 너머로 이들의 몸싸움을 지켜볼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한전 직원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울타리 안팎을 드나든 반면, 농성자들이 울타리 근처로 접근하면 경찰이 막아서며, 이를 제지했다.

'황제출근', 농성자들 사이에서 한전 직원의 출근길을 비꼬는 말이다. 한전 직원이 출·퇴근할 때마다 이어진 경찰의 호위가 이 단어를 탄생케 했다. 한 주민이 경찰을 막아서며, 목청껏 소리쳤다.

"와 우리만 막고 한전 직원들은 가만 두노. 경찰이 한전 경호원도 아니고, 와 꼬박꼬박 세금 내는 국민만 (힘으로) 내팽개치고 그놈들만 감싸노."

오전 8시 45분, 그 시각 울타리 너머 야영장에서는 전날 밤, 송전탑 건설공사를 끝마치고 밤을 보낸 한전 직원이 분주하게 텐트를 걷고 있었다.

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농성자가 수십 명의 경찰 병력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 경찰 뒤로는 송전탑 공사에 투입되는 인력이 울타리를 쳐놓고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 주저앉은 농성자 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농성자가 수십 명의 경찰 병력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 경찰 뒤로는 송전탑 공사에 투입되는 인력이 울타리를 쳐놓고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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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과 닮은 청도, 송전탑에 빼앗긴

아스팔트 위 더위는 이른 아침부터 찾아왔다. 오전 9시를 갓 넘긴 시각, 도로 위에 주저앉은 농성자의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붉은 해가 달군 열기가 그대로 몸으로 전해졌는지 연신 물을 들이켰다. 뙤약볕 아래서 고군분투하는 처절한 농성이 밀양을 닮았다.

밀양과 판박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수시로 이어진 몸싸움은 경찰과 농성자의 몫이었다. 공권력은 일방적인 한전 편들기로 송전탑 건설공사에 직접적으로 개입,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서슬 퍼런 공권력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3일에도 다음과 같은 글이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 SNS(소셜네트워크)에 게재됐다.

'오늘 청도송전탑 헬기장 연행 총 정리-주민 정동규, 노동당 경북도당 김진근, 왜관 베네딕토 수도원 노엘 수사님'

송전탑에 빼앗긴 땅이 밀양을 넘어 청도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송전탑이 세워질수록 공권력에 의해 발생한 부상자와 연행자도 늘고 있다. 밀양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청도엔 송전탑 건설의 이면을 빼닮은 공권력이 보인다.

21일 청도 송전탑 공사가 2년만에 기습적으로 재개, 공사에 투입된 인력들이 송전탑 건설예정지로 향하는 산비탈에 늘어서 있다.
▲ 송전탑으로 향하는 길 21일 청도 송전탑 공사가 2년만에 기습적으로 재개, 공사에 투입된 인력들이 송전탑 건설예정지로 향하는 산비탈에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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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청도 송전탑, #청도 송전탑 건설예정지, #송전탑,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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