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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보다 더 뜨거웠던 촛불과 시국선언, 시국미사의 열기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의해 국정원 국정조사가 성사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되자 이에 대해 분노의 여론이 커지면서 이 시기 촛불집회는 상승국면을 타고 있었다. 이미 2013년 7월 7일 현재 촛불집회 참여 인원은 1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촛불집회에 직접 합류하지는 않은 채 8월 3일 재1차 범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하였다. 다만 촛불집회와의 연계를 모색해 범국민보고대회 직후 촛불집회가 열리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3만 명이 참여해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 2차 범국민보고대회가 예정된 8월 10일, 민주당은 태도를 바꾸어 촛불집회와의 연대를 꾀했다. 실제 이날 촛불집회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서울 5만 명을 비롯해 부산·대전·대구·울산·창원 등 전국적으로 10만 명이 참여해 최대 규모를 이루었다. 40·50대 중년층 참여자도 적지 않았고,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련해 박 정권이 대통령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도, 국정원 개혁도, 관련책임자 엄벌과 남재준 해임도, 국정조사도 어느 것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은 채 불통과 적반하장으로만 일관할 뿐만 아니라 언론 역시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날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 역시 이러한 결집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날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민주당의 미온적 태도에도 비판적 인식을 보여주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무대에 올라 새누리당에게 "선거결과를 바꾸자는 건 아니니까 쫄지 말라"며 말하자 다수의 시민들이 "똑바로 해라" "내려가라" 등을 외쳤던 것이다. 이처럼 민주당은 '대선불복' 등 박 정권이 설정한 틀 속에 안주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러한 민주시민들의 열기는 광복절 전후에도 계속되었다.

8월 13일 서울대·이대 등 9개 대학 총학이 새누리당사 앞에서 국조 파행을 규탄하였고, 14일에는 고려대생 606명이 시국선언에 동참하였다. 또 이날 대구경북 지역 천주교 사제·수도자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시국선언'을 하였다. 이는 1911년 대구대교구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처럼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선언은 7∼8월을 거치며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또 이날 저녁에는 평일임에도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4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다음날 오전 4시까지 '무박 2일'로 진행됐다.

8월 15일 광복절 당일에는 서울 도심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아침 한대련 소속 학생들이 국정원 규탄 기습시위를 벌여 126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낮에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소속 5천여 명이 거리행진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박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물대포까지 동원해 강경 진압하였고 175명을 연행했다. 이날 오후 대검찰청 공안부는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 … 배후세력까지 철저히 밝혀내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공안정국을 예감케 하는 불길한 전조였다. 5일 뒤 천주교 수원교구에선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시국미사를 처음으로 열었다.

'뻔뻔함'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 새누리당 의원들

한편, 8월 14일 국조 청문회에 불출석했던 원·판은 16일 열린 1차 청문회에 나왔다. 그러나 두 증인은 반성의 기미는커녕 초유의 뻔뻔함과 위증으로 세인을 경악케 했다. 이들은 먼저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국정조사 사상 최초의 일로서 국회를 무시하는 행태였다. 또 김용판은 검찰 공소장 내용 전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잡아뗐고, 원세훈은 국정원의 댓글 활동에 대해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 둘러대며 참여정부 때도 댓글활동이 있었다는 식의 위증으로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권의 비호를 받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더 가관인 장면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노골적인 원·판 감싸기였다. 이들은 김용판이 직권을 남용해 불법 개입했다는 신기남 위원장의 모두발언부터 물고 늘어지며 사과를 요구했다. 또 김용판의 증인선서 거부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이 뻔뻔하다고 말하자 이날 원·판을 "우리 증인"이라 부른 새누리당 권선동 의원은 이를 "모욕적인 언사"라 받아쳤고, 같은 당 김진태 의원은 "증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인권탄압 국회의원"이라며 쏘아붙였다.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원·판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억울할 것이라 두둔하고, 아예 "이번 국정조사는 대선패배 한풀이, 박근혜정부 흔들기로 시작됐다고 본다"며 "핵심은 민주당에 의한 실패한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했다. 김태흠 의원은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해 정쟁을 벌이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윤재옥 의원은 대선 전 경찰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된 것이라 강변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이러한 태도는 원·판의 '기'를 살렸다. 실제 새누리당 의원들이 검찰 기소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질의하자, 원세훈은 "선거에 개입하려고 했으면 댓글 몇 개 쓰라고 지시했겠느냐"고 맞장구쳤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에 민주주의는 질식하고 있었다. 여론 역시 들끓었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원세훈·김용판 하는 짓 보니 이 정부가 국민을 아주 열받게 해서 화염병이나 죽창을 들게 하려는 모양이네. 그러고 나선 계엄령이라도 내려야 유신의 추억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적었다.

다만 이날 국조의 성과라면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5일 김용판의 수상한 점심식사가 부각된 것, 경찰수사 발표 당일이던 12월 16일 김용판과 박원동 국정원 국장이 통화한 사실과 함께 2012년 12월 13일 원세훈과 권영세가 통화한 사실이 밝혀진 것 등이었다. 이는 대선 전 새누리당의 비상계획 가동과 관련해 주목되는 정황들이었다.

국정원 국정조사, "권은희 집단 린치 청문회"로 전락하다

8월 19일에 열린 국정원·경찰청 직원을 대상으로 한 2차 청문회 역시 양상이 비슷했다. 이날 청문회는 국정원 직원의 '보호'를 위해 가림막을 설치했다. 그런데 이 가림막의 적절성 여부와 함께 그 안에 들어갈 증인선정 문제와 김무성·권영세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 간 고성과 막말이 오갔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집단퇴장해 오전 청문회를 파행으로 이끌었다. 이후 재개된 청문회의 주연은 김용판의 대선개입을 증언한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이었다. 권 전 과장은 김용판의 '위증'을 지적하며 그가 수사과정에 외압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댓글 키워드 축소 등 수사 축소·은폐를 지시했음을 증언했다. 또 수사축소·은폐 의혹을 부인하는 서울경찰청 측 증인들의 진술과 국정원 여직원 감금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특위 위원 9명은 서울경찰청 측 증인 14명을 동원해 권 전 과장을 향해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권 전 과장에게 "아집이 강하다" "민주당을 돕는다"라고 쏘아붙였고, 같은 당 조명철 의원은 생뚱맞게도 "권 전 과장이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관이냐"라고 물은 뒤 권 전 과장을 향해 '광주의 딸' 운운하는 따위 지역감정에 의존하는 비상식적 발언으로 빈축을 샀다. 한편 또 다른 증인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은 부인과 회피로 일관했고, 민주당이 자신을 감금했다고 강변했다. 결국 이날 청문회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표현대로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에 대한 새누리당의 청문회나 다름없게 되었다.

세월호 국정조사가 '국정원 국정조사의 반복'이 된 이유

이후 국조특위는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로 김무성·권영세 증인 채택에 합의하지 못했고, 결과보고서 채택조차 못한 채 8월 23일 종료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날 청계광장에서 3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에서 시국회의는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정원 국조가 이렇게 된 데는 국정조사 자체의 구조적 문제점도 있었다. <민주당 국정원국정조사 대국민 보고서>가 지적하고 있듯 국정조사에는 수사권이 없어 진실규명에 한계가 있었고, 또한 여당 의원들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야당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국정조사 기간 역시 지나치게 짧았다.

이에 민주당은 국정조사의 구속력과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조기간 확대, 국조 승인요건 완화, 조사권 강화, 예비조사 절차 구체화, 사후처리 확인 강화, 위증과 출석거부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정부가 국가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 정보획득 수단을 강화하기 위해 증인출석 및 서류제출 요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할 필요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국정조사 개선책은 이후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번 세월호 국정조사가 2013년 국정원 국정조사의 재판(再版)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권은 어디까지나 상황에 '떠밀려' 국정조사에 합의해준 것일 뿐, 애초 이에 협조할 뜻이 없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연 전략으로 국정조사를 무력화하고자 했으며, 청문회 과정에서도 혐의자들과 국정원을 옹호하기에 바빴다. 결국 국정조사는 결과보고서 채택도 하지 못한 채 끝났다.

새누리당의 이러한 태도는 혐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원·판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거짓증언을 일삼거나 증인선서를 거부하는 따위 비상식적 모습으로 일관하였다. 이에 민주시민들의 분노도 커져 8월 초·중순에 이르러 촛불집회와 시국선언의 열기도 한층 뜨거워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이 정국주도권을 장악하는 현실이 빚어졌다. 이는 '회담록'을 둘러싼 공방과정에서 민주당이 노출한 전략적 실패와 맞물렸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회담록 무단 공개 및 박 후보 캠프의 회담록 무단 입수 문제와 관련해 7월 7일 남재준, 김무성, 정문헌, 권영세 등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등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으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이른바 '회담록 실종' 국면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 청와대는 '대선불복'이라는 프레임을 선취하고, 8월 5일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에 김기춘을 임명해 '긴 18대 대선'의 질적 변화를 예고하였다.

덧붙이는 글 | 참고 문헌

<경향신문>, <고발뉴스>, <국민일보>, <노컷뉴스>, <뉴시스>, <미디어오늘>, <서울신문>, <연합뉴스>, <오마이뉴스>, <한겨레>

민주당, <민주당 국정원국정조사 대국민보고서>, 2013.
박근용, <폭발한 준비가 된 여론은 폭발시켜야 한다-국가 기관 대선 개입 사건 규탄 촛불집회에 관한 기록>, <<시민과세계>>24, 2014.



태그:#세월호 국정조사, #국정원 국정조사, #국정조사 구조적 문제점, #새누리당 의원, #권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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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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