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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은 고상만을 '한국의 셜록 홈즈'라고 부른다. 물론 고상만은 추리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나는 지난 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고상만을 동료로 처음 만났다. 그 후 지난 10년간 그를 가까이 보면서 정말 뛰어난 관찰력을 갖춘 '수사반장'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수시로 느꼈다. 그는 심지어 내가 전셋집을 구하러 다닐 때도 그의 예민한 추리력과 관찰력을 동원해 내가 '값싸고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도록 성심껏 도와주었다.

내가 전셋집을 구하러 다닐 때였다. 나는 고상만과 함께 부동산을 찾았다. 집을 잠깐 들여다보고 그는 그 집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결혼 여부, 연령대, 성별을 술술 다 이야기했다. 옆에 있던 부동산집 아주머니가 놀라서 "다 맞네요! 그런데 아니 그걸 어떻게 다 아세요? 사장님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이분 직업은 형사입니다!"라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그 정도로 그의 추리력과 관찰력은 뛰어나다.

그러나 나는 '수사반장' 고상만의 힘은 그의 놀라운 추리력이나 뛰어난 관찰력에서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정원이나 검찰에도 추리력과 관찰력, 심지어 상상력이 뛰어난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특출한 능력으로 멀쩡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조작시키는 데 이용한다. 그들의 그런 뛰어난 능력이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기 보다는 생사람을 잡는데 악용되는 현실이 한심하고 통탄스럽다.

'조사관' 고상만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럼 '조사관' 고상만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내 생각에 그의 힘은 두 곳에 그 뿌리가 있다. 한곳은 인간(특히 힘없고 빽없는 서민)에 대한 그의 잔잔한 애정에 있다. 또 다른 한곳은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그의 뜨거운 열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짓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약자를 탄압하는 불의한 인간과 조직에 대해 고상만은 거침없이 이렇게 분노한다.

"소속 정당이 무엇이든 정치는 정직해야 하며 국민의 이익을 위한 모든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심재철은 세월호 유족을 비난하는 글을 유포하고도 불리하자 묘한 말로 거짓말을 한다. 생각이 다른 것은 토론할 수 있지만 거짓말하는 정치인은 퇴출시켜야 한다! 심재철은 의원직에서 즉각 물러나라!" - 고상만 페이스북(7월 21일)

"정말 기가 막힌 일! 군 의문사 유족 어머니가 국방장관 면담하러 갔다가 업무 방해로 용산경찰서에 체포되었습니다. 면담시켜 준다는 일주일 전 약속 믿고 갔는데 또 안 된다고 하니 항의하자 국방부가 신고했답니다. 자식 잃은 엄마의 눈물마저 잡아가는 세상입니다. 서러움에 북받쳐 우는 그 엄마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 고상만 페이스북(7월 18일)

책 표지
 책 표지
ⓒ 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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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만이 가슴으로 쓴 <다시, 사람이다 :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뜨거운 이야기>가 최근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한국현대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조망하면서 저자 고상만이 이 인물들과 직간접적으로 겪은 체험담을 쉬운 구어체의 글로 풀어서 써내려간 이야기다. 

그래서 <다시, 사람이다>에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아니면 살았던) 유명했거나 전혀 유명하지 않은 누군가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또 고상만이 인권운동 현장에서, 또는 그 언저리에서 일하면서 만나왔던 누군가의 울분과 서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사람이다>는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김근태 의원 등과의 직간접적인 만남을 회상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는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정권기를 차분하지만 강렬한 필치로 증언하고 있다. 이 땅의 인권유린문제가 과거 독재정권 시절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생생히 볼 수 있다.   

'2부 인권 현장 이야기'에는 이 땅의 이름 없는 어느 빈민 장애인 노점상의 이야기. 고난 받는 양심선언자들 그리고 군 사망사고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등장한다. 1부와 비교해 2부는 우리사회의 '힘없고 빽없는' 전혀 이름 없는 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3부 진실은 더디 오지만 반드시 정의를 찾아온다'에서 고상만은 지금은 고인은 된 '김용갑'이라는 한 대학선배의 짧았던 삶과 비극적 죽음을 통해 자신이 인권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와 그 후 살아온 자신의 삶의 궤적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람이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 한 장소 약사봉 계곡에서 고상만
 장준하 선생 의문사 한 장소 약사봉 계곡에서 고상만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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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이다>라는 책의 제목도 고상만의 삶에 대한 철학을 반영한다. 저자는 "내 삶속에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람'이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사람들이 걸어왔던 험난한 길에 대하여 이야기 해 준다. 저자는 "어떤 제도나 이념도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책속에서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이 책 내용 중 일부인 한국전쟁 당시 고양시 금정굴에서 벌어진 집단학살의 야만과 비극을 쓰며 고상만은 참 생각을 많이 했다고 술회한다.

'제도와 이념을 만든 이유가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라는데 그 제도와 이념을 근거로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일까?'

저자가 던진 이런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은 '사람살기 좋은 나라'를 꿈꾸는 모든 이들도 함께 고민하고 자문해야 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고상만은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단지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과 억울함을 강요하는 부도덕한 우리사회 일부를 보면서 절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에 고상만이 담은 많은 이야기들은 여전히 미완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그 잘못된 일들과 또 싸워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이 책의 메시지다!"

또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고상만은 그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여러 억울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활동에 투신하고 있다. 김훈 중위를 비롯하여 군복무중 억울하게 사망한 군인들의 사인에 대한 진실규명, 그리고 지난 1975년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 사인에 대한 진실규명 노력 등을 통해서 말이다.  

이 책은 벌써 고상만이 쓴 네 번째 책이다. 그는 글을 참 열심히 부지런히 쓰고 또 아주 잘 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글만 쓰는 '글쟁이'가 아니다. 그는 온몸으로 사건의 현장에 뛰어드는 '삶쟁이'다. 그는 치열한 삶의 현장, 불의가 있는 곳에, 또 서민들의 아픔이 있는 곳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행동가다.

그의 덕에 나는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을 몇 번 방문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곳에서 이소선 여사, 박종철 열사 부친, 이한열 열사 모친 등 이 땅에 국가폭력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억울한 분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분들의 소중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인권운동가이지만 나는 그를 '운동권'이라기보다는 '생활권'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의 크기는 사랑의 크기'라고 한다. 늘 생활전선에 있는 민초들을 위해 진실을 추구하고자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의 편에 서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고상만! 그의 책 <다시, 사람이다>는 이 부조리와 불의가 넘치는 시대에 낙심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공급해 주는 정신적 자양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저자 고상만은 인권운동가,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등 군 의문사한 이들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일이 있었나'(책으로 여는 세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외 다수다.



다시, 사람이다 -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뜨거운 이야기

고상만 지음, 책담(2014)


태그:#고상만, #김성수, #장준하, #의문사, #다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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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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