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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미술관을 찾아간 사연

박수근 탄생 100주년 가념전 플래카드
 박수근 탄생 100주년 가념전 플래카드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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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양구 여행의 주제는 두타연 길이었다. 두타연은 옛 선인들이 금강산 가는 길에 쉬어가던 경승지로 유명하다. 그러한 기록은 삼연 김창흡 등 시인묵객들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휴전선으로 남북이 분단된 현재는, 양구 일대가 DMZ 가까이 있는 청정 자연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래서 주말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두타연, 펀치볼, 대암산을 찾는다. 두타연은 양구8경 중 제1경으로 열목어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두타연은 북한 지역에서 발원한 수입천이 흘러가면서 바위에 구멍을 내고 연못을 이룬 곳으로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제2경 펀치볼은 휴전선에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대암산은 용늪과 함께 자연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다.

이곳 두타연에 가려면 양구읍을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양구읍 박수근로 265-15에 있는 화가 박수근(朴壽根) 미술관에 들르기로 했다. 그곳에서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5월 4일(토) 시작되어 8월 3일(일)까지 세 달간 열리고 있다. 이번 기념전에는 그의 그림 외에 목판화까지 전시되고 있다. 박수근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서민적인 화가로 유명하다.

동상과 묘지를 보면서 추적해 간 박수근의 삶과 미술

박수근 동상
 박수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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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기념관 주차장에 내리면 성벽 같은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 외벽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기념관 입구가 나온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기념관 앞 정원에는 앉아 있는 박수근 동상을 살펴본다. 가족과 함께 마루에 앉아 찍은 사진을 토대로 만들었다. 두 손을 잡고 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런닝셔츠 차림을 티셔츠 차림으로 바꿔 놓은 게 차이라면 차이다.

박수근은 1914년 2월 미술관이 있는 이곳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양구 공립보통학교에 입학, 도화(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6학년 때인 1926년 밀레의 '만종'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 저도 이 다음에 커서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박수근과 가족들
 박수근과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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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은 아버지의 광산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양구에서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계속한다. 산, 나무, 초가집, 여인 등을 관찰하며 뎃생과 수채화 그리는 연습을 했다. 1932년 그는 18세의 나이로 <조선미술전람회(鮮展)> 서양화부에 수채화 '봄이 오다'를 출품한다. 이른 봄 농가를 그린 그림으로 입선의 영광을 차지한다. 이에 고무된 박수근은 더욱 더 그림 그리기에 정진한다.

1935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박수근은 집을 나와 춘천에서 홀로 산다. 1936년부터 1939년 까지 그는 매회 <선전>에 그림을 출품하고 입선한다. 1940년에는 춘천에서 만난 김복순(金福順)과 결혼해 새 가정을 꾸미고, 평안남도 도청 서기가 되어 평양으로 간다. 이듬해 아내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한다.

박수근이 그린 아들 성남
 박수근이 그린 아들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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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제 20회 <선전>에 '맷돌질하는 여인'이 입선했고, 1942년 봄 첫아들 성소(成沼)를 얻는다. 그리고 그해 <선전>에 사랑스런 첫아들을 안은 아내를 모델로 그린 '모자(母子)'를 출품해 입선한다. 1945년 박수근은 평양에서 해방을 맞는다. 그해 11월 김화군 금성중학교 미술교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신자여서 공산주의 정권에서 감시를 당했다고 한다.

1947년 차남 성남(成男)이 태어났으나, 불행하게도 1948년 장남 성소가 뇌염으로 죽는다. 1950년 6·25사변이 일어나 박수근 가족은 남쪽으로 피난했고, 1952년 창신동에 정착할 수 있었다. 1953년에는 제2회 <대한민국 미술전(國展)> 서양화부에 출품한 '집'이 특선에 선정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기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단순 소박한 주제, 굵고 검은 선의 윤곽, 흰색, 회갈색, 황갈색 주조의 평면적 색채, 명암과 원근감의 배제 등이 두드러진다.

박수근의 자필이력서
 박수근의 자필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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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은 이후 해마다 <국전>에 작품을 출품해 입선된다. 그러나 1957년 제6회 <국전>에 1백호 크기의 대작 <세 여인>을 출품했으나 낙선되어 큰 충격을 받는다. 이때부터 박수근은 시선을 외국으로 돌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박물관 주최 <아시아 및 서양 미술전(Art in Asia and the West)>에 '노변의 행상'을 출품한다. 이를 통해 박수근은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평가를 받는다.

1958년에 박수근은 뉴욕의 월드 하우스 갤러리에서 개최한 <한국현대회화전(Contemporary Korean Paintings)>에 '모자(母子)', '노상', '풍경'을 출품한다. 그리고 1959년에는 조선일보사 주최 제3회 <현대작가 초대전>에 '봄', '휴녀(休女)', '노인과 유동(遊童)'을 출품한다. 그리고 그해 <국전> 추천작가가 된다. 이를 통해 박수근은 국내외에서 인정하는 최고작가 반열에 오른다.

박수근 묘소
 박수근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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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는 일본 동경에서 개최한 <국제자유미술전>에 '나무'를 출품한다. 1962년에는 제 11회 <국전> 서양화부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고, '소와 유동(遊童)'을 출품한다. 그리고 오산에 있던 주한미공군사령부(USAFK) 도서관에서 <박수근 특별초대전>이 열린다. 또한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한국현대미술전>에 초대되기도 한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곤궁하고, 건강은 점점 나빠진다.

1963년 왼쪽 눈을 실명하고, 창신동 집마저 철거되어 전농동으로 이사한다. 1964년 밀러 부인이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개인전을 열 것을 제의했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가을 제13회 <국전> 추천작가로 '할아버지와 손자'를 출품한다. 그리고 1965년 4월 간경화와 응혈증으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했으나 5월 6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는 처음에는 포천군 소흘면 동신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후 2004년 4월 15일 고향인 정림리 뒷산으로 이장되었다.

박수근기념비
 박수근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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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산길로 박수근 묘소를 찾아간다. 그곳에는 화백 박수근과 전도사 김복순이 합장되어 있다. 상석 오른쪽에는 '서민화가 박수근 기념비'가 있다. 그곳에는 아이를 업은 여인과 수건을 뒤집어쓰고 쪼그려 앉아 있는 여인을 음각으로 표현해 놓았다. 1960년에 그렸다고 적혀 있다.

그 옆에는 십자가 표시를 한 '화백 박수근 전도사 김복순의 묘'라는 묘비명이 보인다. 이름 아래에는 마태복음 제25장 23절의 문구가 보인다. 이 글에서 충성된 종은 박수근 화백을 말하고, 그가 노력의 대가로 천국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제1관에서 만난 인상적인 작품들

나무와 여인
 나무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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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관은 기념전시실과 제1기획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쪽 기념전시실에는 박수근 관련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안경, 숟가락, 인장 등 사용하던 물건이 있고, 스크랩북, 도록, 슬라이드, 편지 등이 보인다. 특히 박수근이 밀러 부인, 헨더슨 부인, 침머만과 주고받은 영어 편지가 인상적이다. 그는 모든 것을 독학으로 하는 타입이어서 영어도 독학으로 공부한 것 같다.

이들 유품 사진을 좀 찍고 싶은데 감시가 어찌 심한지 그 눈초리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이러한 감시는 다음 제1기획전시실까지 이어진다. 이들은 아주 그림 앞에 서서 관람객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한다. 심지어는 손가락질 하는 것도 못하게 한다. 나는 하도 화가 나서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항의를 했다.

풍경(산)
 풍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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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획전시실은 여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1. 다시 봄이 오다. 2. 소박한 밥상. 3. 박수근의 꽃. 4. 작품 A. 5. 일상 풍경. 6. 나무 그리고 여인. 그 중 인상적인 그림이 아들 박성남의 초상이다. 6·25사변 후 재회한 아들의 모습을 수채화로 표현했다고 한다. 꽃 그림 중에는 모란과 목련이 인상적이다. 모란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결합을 보여준다. 목련은 나무에 망울이진 꽃봉오리를 표현했다. 박수근의 그림의 대표적인 주제인 나무줄기가 두드러진다.

이곳에 전시된 대표작은 박수근미술관 카타로그에 나와 있는 '풍경(산)'이다. 1959년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36×70㎝의 비교적 큰 작품이다. 북한산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산과 바위, 기와집, 나무, 길 등을 표현했다. 주제가 한 곳에 모이기보다는 개개의 오브제 또는 모티브가 각자의 특징을 뽐내는 형국이다.

귀로
 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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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눈에는 하드보드에 유채로 그린 '나무와 여인', '귀로'가 더 인상적이다. 내용과 형식에서 새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와 여인'은 동양적인 소나무 아래서 두 여인이 뭔가 대화를 한다.

그런데 한 여인은 머리에 비녀를 꽂았고, 다른 여인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이것으로 보아 모녀가 만나 비밀스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다. '귀로'는 일을 마친 두 여인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표정이 그렇게 한가롭고 여유로울 수가 없다. 채색마저도 은은하면서 인상적이다. 

제2관에 가니 판화도 볼 수 있네 그려

아이 업은 소녀
 아이 업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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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관은 제2기획전시실, 창작 스튜디오, 학예연구실, 아트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입구에서 철판과 목판에 새긴 박수근의 '아이 업은 소녀'상을 본다. 이들을 보고 원형 계단을 오르면 바로 제2기획전시실로 이어진다. 이 전시실은 다섯 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1. 시대의 초상. 2. 형상. 3. 삽화. 4. 판화. 5. 탁본, 프로타주.

시대의 초상 코너에는 제1기획전시실에서 봤던 유형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절구질하는 여인'이 인상적이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여성의 모습을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여인에 대한 연민보다는 공감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앉아 있는 두 남자
 앉아 있는 두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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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일 파는 세 여인'과 '앉아 있는 두 남자'도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후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 여인은 임시로 매대 또는 좌판을 차리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어둡지 않다. 모자를 쓴 두 남자는 마차를 끌다가 잠시 쉬는 것 같다. 그들의 의복에서 우리는 전후의 어려운 상황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제2기획전시실에서 특히 내 눈을 끄는 것은 판화다. 박수근이 판화작업을 했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목판화는 한 마디로 단순성과 조형성을 절묘하게 결합하고 있다. 여기서 조형성이란 대상의 특징을 잘 잡아낸다는 것이고, 단순성이란 단순화를 통해 대상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고전주의 예술이상인 '고귀한 단순과 조용한 위대'라는 말로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기름장수
 기름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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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판화기법은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대표작으로 '농악', '달밤', '노인과 여인'이 있다, 그리고 사후에 찍어낸 '기름장수', '나무와 두 여인', '앉아 있는 소' 등이 있다. 그 중 '기름장수'가 마음에 든다. 여인이 옷을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머리에 기름바구니를 이고 간다. 불끈 쥔 두 팔, 건강한 다리, 꼿꼿한 자세에서 자신감과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판화는 80년대 민중미술로 그 맥이 이어져 왔다. 특히 이철수의 판화에서 박수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태그:#양구, #박수근미술관,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나무 그리고 여인,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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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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