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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책,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 카시오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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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다. 등산으로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을 살리고 건강하게 키운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좀 난감했다. '내가 사는 곳에는 산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영국 남동부로 이사온 뒤 낮고 평평한 들과 완만한 언덕에 익숙해진 터였다. 물론 이따금 아이들과 길게 걷기는 하지만 가파른 산길을 진땀을 흘리며 걸은 기억은 없다. 그런데 책 속에 담긴 카드가 마음을 뒤집어 놨다.

"이곳이 지옥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무시로 눈물이 흐르고 화가 나고 슬프고…. 나 역시도, 돈과 경쟁, 이기심으로 질주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회가 아이들을 몰살하는 일에… 적어도 방조는 했구나 하는 참담함이 들었습니다."

나 역시 미안해서 어쩌질 못했다. 그리고 책을 펼쳐 들었다.

김선미가 쓴 책 중 내가 기억하는 것은 두 딸과 3번 국도를 타고 마라도까지 내려가며 기록한 <아이들은 길 위에서 자란다>이다. 책에는 세 모녀가 여행하며 경험하는 알콩달콩한 맛이 잘 그려져 있는데, 특히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가려 하는 엄마와 그 여행을 멀리서 지원하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역시 그런 마음이 물씬 묻어나는 책이다. 오랫동안 산을 오르고 산악 기자까지 지낸 지은이가 등산 얘기를 하려고 교육을 빌린 책이 아니라, 죽어가는 세상의 아이들을 살리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자신이 잘 알고 경험한 산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책이다.

책은 크게 여섯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두 장에서 지은이는 아이들에게는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엘리베이터보다는 땀을 흘리며 오르는 산이 필요하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산을 오르며 아이들은 온몸으로 자연을 만나고 영혼의 교감을 이루며 깨어나며 자라나는 걸 봐왔다는 거다.

"학교와 집, 학원 사이를 쳇바퀴 돌듯 반복적으로 오가는 도시의 어린아이들에게는 산으로 가는 것 자체가 충분히 모험적인 활동이다. 아무리 쉬운 등산로를 따라간다고 해도, 일상적인 생활의 틀을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이미 모험은 시작된다."(본문 25쪽)

3장부터 5장까지는 어떻게 아이들과 산행을 준비하고, 어디를 어떻게 오르고, 산에 가서는 그리고 집에 와서는 무엇을 주의하고, 기억해야 하는지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상하게 풀어냈다.

아이들은 몸이 가벼워 산에 잘 오르지만, 체온유지 능력은 어른만 못하기 때문에 어른만 생각하지 말고 아이의 상태를 잘 관찰하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또한 자폐 아동을 포함해 장애를 지닌 아이들도 어른, 친구와 함께하면 산을 오르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일러준다. 그때 아이들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치유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히말라야 같은 큰 산을 아이들과 함께 오른 부모를 소개하면서도 야트막한 야산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숲에서 아이와 함께 걷는 일 자체가 산행의 중요한 준비이고 산을 주제로 낱말 놀이 같은 걸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단다. 거창한 준비나 장비보다 중요한 건 '산을 오르려는 마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지은이는 고백한다. 등산이나 인생 모두 목표로 삼는 정상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곳까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보다 안전하게 돌아내려 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큰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가족이 지리산 종주를 갔다가 아이가 무릎이 따끔하다며 뭔가에 물린 것 같다고 해서 오르던 산을 되돌아내려 갔다. 두어 시간만 더 오르면 목표점인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포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아이의 다리는 퉁퉁 부어서 병원에 가서 해독 주사를 맞고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단련시키려고 일부러 위험한 선택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믿었던 모든 산행에는 이렇게 예기치 못한 변수들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본문 179쪽)

책의 마지막 장에는 실제 산행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모았다. 등산용품을 고르고 관리하는 법, 등산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과 책 목록 그리고 서울에 있는 가족 등산로 코스와 전국의 휴양림 목록을 쭉 정리해 놓았다. 또한 책의 각 장이 끝나는 곳마다 여러 사람의 실제 등산 교육 사례들을 소개해 놓았다.

나는 밤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읽은 끝에 며칠 만에 이 책을 다 읽었다. 그러고 나서 난 뭘 해야 할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물론 오를 산은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이 책은 등산 교본이 아니라 산행길에서 발견한 교육 이야기가 아닌가.

한 가지 바로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가족을 알아가는 거다. 늘 살을 부딪기는 가족을 뭘 더 알아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그리고 삶에 닥치기 마련인 어려움을 풀어나가다 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오늘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듣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처럼 직장생활과 살림하기가 녹록하지 않고, 저만치 달려가는 세상을 엉겁결에 따라가야 하는 때는 더 그렇다. 그냥 옆에 있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녀와 배우자가 하는 일을 지켜봐 주는 것만 해도 인생이라는 산을 넘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같은 산을 오르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는 것, 각자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도 힘들고 외로울 때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며 인생의 산을 함께 넘는 동반자가 가족이다. 다만 이런 가족이라도 실제로 등산을 할 때는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는 등산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본문 150쪽)

덧붙이는 글 |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김선미 씀 / 카시오페아 / 2014. 4. / 1만4000원)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 디지털 세상에서 찾은 등산교육의 작은 기적

김선미 지음, 카시오페아(2014)


태그:#등산,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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