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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밤 풍경.
▲ 빠하르간지 거리의 밤 풍경.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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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하르간지 거리에 대한 느낌은 그곳의 배경지식이 없었다면 느끼기 힘들 감정이었다. 모르고 봤으면 그냥 복잡하고 저렴한 것이 가득한 여느 여행자 거리와 다름없을 그곳은, 오래전 공공연하게 마약과 약물이 난무하던 슬럼가였다.

사람들의 노력이 그곳을 다시 새로운 활기로 불어넣었고 이제는 뉴델리역과 함께 편리한 위치, 저렴한 숙소와 레스토랑을 찾아 모여든 여행자들에 인해 핫스팟(관심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생각으로 보니,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감이 갔다. 세계의 여느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장소처럼 특유의 활기가 느껴졌고 저렴한 것도 넘쳐났다. 물론 여행자들의 주머니를 손쉽게 털기 위한 상술도 넘쳐났지만.

릭샤의 가격은 흥정을 기반으로 한다.
▲ 시장의 싸이클릭샤 릭샤의 가격은 흥정을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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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쳘역을 빠져 나오자마자, 릭샤(보통 자전거를 개량한 사이클릭샤(Cycle-rickshaw)와 소형 엔진을 장착한 3륜차인 오토릭샤(auto-rickshaw)로 인도와 동남아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 수단)를 타라고 호객하는 기사들을 보니 '아, 이제 인도 안으로 들어왔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배낭을 메고 이제 막 뉴델리 역에 도착한 사람의 목적지는 관심이 없다. 바로 큰 길만 건너면 될 빠하르간지를 가든, 더 먼 곳을 가든.

행상마다 특색도 다르다. 윤이나도록 말끔하게 닦아 전시해놓은 과일들.
▲ 거리의 과일 가게들. 행상마다 특색도 다르다. 윤이나도록 말끔하게 닦아 전시해놓은 과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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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거리를 고르고 있는 소녀.
▲ 달콤한 인도의 간식거리들. 간식거리를 고르고 있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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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가 모이는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해 어느 숙소에서든 인도를 여행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을 만난다.

세계 각국에서 온 그들은, 인도라는 공통점을 축으로 여러 정보도 공유하고 더 나아가서는 삶의 의미를 공유하는 진짜 친구로 발전할 수도 있다. 늘 그런 행운이 함께하는 것은 아니지만, 빠하르간지에선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자신이 가진 깊은 사유를 공유하는 것은 어렵고 가끔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생각이 대치될 소재들이라면 서로 피하고 마는 것이 편한 일일 터.

미국에서 온 에드워드와는 생각지 않게 미국 흉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친해지게 되었다. 미국에서 들어온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제점과 세계적으로 퍼진 미국식 커피의 소비, 미국 내의 인종차별, 미국인들의 여행패턴 등 에드워드가 미국인으로서는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비판이 섞여 있었음에도, 그는 놀랍게도 공통된 의견을 보였다.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인도 군인을 위한 위령탑으로 프랑스의 개선문과 비슷한 건축물인 인디아 게이트.
▲ 인디아 게이트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인도 군인을 위한 위령탑으로 프랑스의 개선문과 비슷한 건축물인 인디아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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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장난감을 고르는 모자.
▲ 거리의 장난감 진지하게 장난감을 고르는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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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어떤 면에선 내가 갖고 있는 '여행자'들에 대한 믿음과도 일치한다. 그들은 각각의 국적은 있지만, 오감으로 보고 느낀 '다른 것'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바탕이 되어있는 사람들이기에 추구하는 것들은 더 크다고 본다. 어렸을 때 배운 자전거 타기를 어른이 되어서도 몸이 기억하듯, 발로 뛰어 이해하고 직접 느낀 세상의 많은 것들은 그렇게 여행자를 만든다. 그렇게 세상을 본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를 추모하는 라즈갓트 근처의 잔디밭 그리고 연인.
▲ 라즈갓트 근처의 잔디 인도의 지도자 간디를 추모하는 라즈갓트 근처의 잔디밭 그리고 연인.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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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은 어떠한가. 특히 인도 남자들은? 많은 변화를 거치는 격동기이기도 한 인도지만, 여전히 많은 인도의 남자들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인다. 한창 한국에서 인도의 집단 성폭행을 각종 미디어에서 다루고 있는 때였지만, 인도에서 여행자로서 앞가림에 어려움을 느끼진 못했다. 여전히 그들은 손에 닿을 듯한 거리의 여자들에게 갖가지 욕구를 느끼는 듯하다. 물론 소수의 남자들이지만.

많은 인파로 늘 밀물과 썰물을 연상시키는 뉴델리 역의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사람이 많았지만,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고 부딪힐 정도는 아니었다.

그림 같은 라즈갓트의 풍경
▲ 공원의 아이들 그림 같은 라즈갓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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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유쾌하지 못한 느낌이 전해졌다. 성별이 확인되지 않은 내 뒤의 사람이 내 엉덩이를 만진 것. 잠깐 뇌리를 스친 것은 '혹시나 실수일까?'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의도적인 터치의 유쾌하지 못함을 떨쳐버리기가 힘들었다.

간디 사진들과 그의 유물들로 생애를 느낄 수 있는 공간.
▲ 간디 사진들을 전시해놓은 추모관 안. 간디 사진들과 그의 유물들로 생애를 느낄 수 있는 공간.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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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적으로 내려가는 대열에서 옆으로 물러났다. 내 뒤에 있던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르고 젊은 남자였다. 나는 앞 길에 거치적거려 미안하다는 듯 큰 걸음을 떼어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지나쳤고 나는 그의 뒤에 섰다. 그리고 나는 그가 했을지도 모를 실수를 똑같이 범했다. 손을 뻗어 그가 했던 그대로 했던 것. 그의 행동이 실수였으면, 나의 똑같은 실수를 너그러이 봐줄 수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비긴 셈이다.

그의 커지던 동공은 다시 한 번 그의 행동이 실수가 아님을 증명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곳에서 혼잡을 명분으로 남의 몸에 손을 대는 행동은 세상 어느 곳에서건 일어난다. 단, 적어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는 내가 한 행동으로 쾌감을 느끼는 과한 남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델리에서의 큰 신고식이었다.

외국인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
▲ 안내 센터 외국인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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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에 걸친 인도의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태그:#인도 여행, #델리 , #빠하르간지, #세계여행, #인도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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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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