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일어나는 이재성

필사적으로 일어나는 이재성 ⓒ 이충섭


그는 사력을 다했지만, 결과는 안타까웠다. 팬들은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 21일 이재성(30, 현대BNG스틸)이 일본 오카야마에서 OPBF 슈퍼밴텀급 챔피언 신고 와케(26)에게 도전했지만 10회 TKO패를 당해 동양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이재성은 이전까지 일본 선수를 상대로 4승 1무의 압도적인 전적을 거두었고 특히 일본 원정 경기에서는 3연승을 기록 중이었다. 때문에 이날 경기에서도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은 신고 와케에 고전하다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신고 와케는 계체량을 마친 뒤 도전자와 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시내 곳곳에 붙은 시합 포스터에는 신고 와케의 모습만 있었을 뿐 도전자 이재성의 이름이나 사진은 실리지 않았다.

'일방적인 쇼'로 예상됐지만...

 열화같은 응원속에 등장하는 신고 와케

열화같은 응원속에 등장하는 신고 와케 ⓒ 이충섭


 수십개 기업의 후원을 받는 신고 와케

수십개 기업의 후원을 받는 신고 와케 ⓒ 이충섭


 이재성의 유일한 스폰서는 현대BNG스틸

이재성의 유일한 스폰서는 현대BNG스틸 ⓒ 이충섭


이날 시합 전 신고 와케는 링 위에 오른 뒤 오랫동안 링을 돌며 이재성과 부딪히면서 신경전을 펼쳤다. 이재성을 향한 홈 텃새였다. 선수 가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신고 와케는 수십여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지만, 이재성은 달랐다. 그의 트렁크에는 태극기와 유일한 후원사인 현대BNG스틸 로고가 전부였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관중석은 조용해졌다. 일본 홈 관중들은 이날 경기가 일방적인 쇼로 끝날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이재성의 실력이 그리 만만하지 않자 관중들은 긴장감 속에 경기에 몰입했다. 신고 와케는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스텝을 갖췄지만, 이재성 역시 스피드와 순발력에서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2라운드 초반 상체를 바짝 웅크리고 수비를 하다가 일어나는 신고 와케의 머리에 머리를 부딪힌 이재성은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운 셈이었다. 피를 많이 흘리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입은 이재성은 경기 내내 어지럼증을 느끼는 듯했다.

9라운드,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

 맹렬히 공격하는 이재성

맹렬히 공격하는 이재성 ⓒ 이충섭


 신고 와케가 점프하며 쫓아가 원투 스트레이트를 가격하는 장면

신고 와케가 점프하며 쫓아가 원투 스트레이트를 가격하는 장면 ⓒ 이충섭


이재성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신고 와케가 3라운드 당시 이재성의 머리에 부딪혀 앞니에서 피가 흐르는 부상을 입은 것. 신고 와케는 조심스럽게 경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놓칠세라 이재성은 뒷걸음치는 상대를 추격하며 공세를 펼쳤다.

신고 와케는 이재성의 공격을 미꾸라지처럼 피하다가 예리한 카운터를 간간이 성공 시켰다. 경기는 이같은 형세로 진행됐다. 이재성의 묵직한 펀치가 스피드를 앞세운 신고 와케의 주먹보다 더 세보였다. 8라운드까지의 판정 결과도 신고 와케 2-1 이재성으로 신고 와케가 우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재성의 공격이 터지면 충분히 역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9라운드에 들어서면서 이재성의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이재성은 라운드 중반 코너에 몰려 신고 와케의 펀치 러시를 견뎌냈다. 하지만 링에 기댄 상태였던 이재성은 신고 와케에게 정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신고 와케의 공격에 다운당하는 이재성

신고 와케의 공격에 다운당하는 이재성 ⓒ 이충섭


 링 줄을 놓지 않고 사력을 다한 이재성

링 줄을 놓지 않고 사력을 다한 이재성 ⓒ 이충섭


이재성은 링에서 간신히 빠져 나와 뒷걸음을 쳤지만 조심스레 경기를 운영하던 신고 와케는 원투 스트레이트를 이재성의 안면에 적중 시켰다. 뒷걸음치던 이재성은 이후 뒤로 밀려나며 링 줄 사이로 빠지며 다운 당하고 말았다. 팽팽하던 경기 양상이 순식간에 깨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재성은 포기하지 않고 링 줄 사이를 빠져 나와 일어섰다. 이재성이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던 주심은 카운트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곧바로 9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재성은 신고 와케의 추가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환호하는 신고 와케와 절망하는 이재성

환호하는 신고 와케와 절망하는 이재성 ⓒ 이충섭


10라운드가 시작되자 이재성은 또다시 수세에 몰렸다. 이에 심판은 경기를 중단 시켰다. 이재성은 경기를 더 할 수 있다고 어필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역 한국 선수 중 가장 풍부한 커리어를 쌓았고 세계 타이틀 도전에 가장 근접해 있던 한국 복싱의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세계 챔피언만 일곱 명을 보유한 일본 복싱의 수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이 유명우의 제물이었던 이오카 히로키

오른쪽이 유명우의 제물이었던 이오카 히로키 ⓒ 이충섭


한편, 이날 경기 현장에는 전 WBA 챔피언 유명우씨와 일본 복싱선수 이오카 히로키도 있었다. 지난 1991년 유명우는 이오카 히로키에게 패배해 WBA 챔피언 타이틀을 잃었다. 하지만 유명우는 1년 뒤인 1992년 다시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아와 복싱계의 레전드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날 유명우와 이오카 히로키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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