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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 4일에 우리 딸 드림이는 세상에 나왔다.
▲ 아빠 품에서 울고 있는 드림이 40주+ 4일에 우리 딸 드림이는 세상에 나왔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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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아내가 <출산예정일 하루 전... 나올 생각 없는 '드림이'>란 기사를 썼다. 정말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던 그 드림이가 지난 19일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우리 부부는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해 왔던 터라 새벽 1시쯤 조금씩 진통이 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병원처럼 유도분만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진통주기가 빨라질 때까지 집에서 기다려야 했다.

조산원은 진통부터 출산하기까지 전 과정에 남편이 함께 한다. 더욱이 조산원은 남편이 아내의 출산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아내와 가족애 및 동지애를 더 느낄 수 있다. 나 역시도 아내의 진통 때마다 허리를 문질러 주고 출산 때도 무릎 베개를 해주는 등 전 과정을 함께 했다.

드디어 새벽 3시 진통주기가 5분으로 줄어들자 우리는 바로 짐을 들고 나갈 준비를 했다.

새벽 4시가 되어 조산원에 도착했고 진통 주기가 점차 빨라지자 아내는 고통스러워 했다. 진통이 빨라지고 자궁도 거의 다 열렸지만 양수가 터지지 않아 문제였다. 변기에도 앉아보고 옆으로 누워도 보고 다양한 자세로 힘을 줘봤지만 양수가 터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 보였다. 양수는 아이가 어느 정도 밑으로 내려와야 터지는데 그만큼 드림이가 덜 내려왔다는 뜻이었다. 양수만 터지면 출산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터인데 진통만 길어지자 아내도 보는 나도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힘주기를 3시간 했을까 조산사분이 오셔서 이 정도면 됐다며 양수를 터뜨렸다. 내 눈에도 뭔가 물 같은 게 보였다.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이제 양수가 터졌으니 머리만 보이면 된다"고 위로하며 응원했다. 하지만 그 '머리만 보이면'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은 그때는 몰랐다. 산모가 힘을 주는 것은 아이가 밑으로 내려오는 것을 돕기 위함이라 한다. 그래서 진통이 올 때에 맞추어 있는 힘껏 배에 힘을 준다. 그런데 이것도 한두 번이지 10시간 넘게 이 짓(?)을 하면 사람이 점점 미쳐간다.

거의 실신한 아내, 엉엉 울며 아이를 마주하다

아내 역시 계속된 진통에 지쳐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다 깨기를 반복했다. 게다가 새벽부터 점심까지 밥도 한끼 먹지 못해 힘을 줄 수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 시간이 가장 길었다. 엉엉 울며 그만하고 싶다고 사정하는 아내와 그런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은 안타깝고 무력하기만 했다.

언제 끝나는지, 얼마나 남은 건지 재차 물을 때마다 이제 거의 다 나왔다고 머리가 보인다고 희망고문 아닌 고문을 해야 했다. 그 긴 시간, 나는 불확실 속에서도 아이를 믿고, 아내를 신뢰하고, 도와주는 조산사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드림이도 엄마 못지 않게 큰 고생을 했을 것이다
▲ 엄마 품에 곤히 자는 드림이 엄마 뱃속에서 나온 드림이도 엄마 못지 않게 큰 고생을 했을 것이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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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오후 1시경 아이 머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실신하다시피 한 아내의 손을 꼭 부여잡으며 마지막 마라톤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아이와 아이 엄마를 응원했다. 힘 주기를 수십 번 넘게 해서인지 아내는 지쳐 버렸고 내가 아내의 배를 누르며 출산을 도왔다. 그리고 마침내 뻘겋게 피 묻은 아이의 머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안쓰러움에 삼켰던 눈물이 드디어 복받쳐 오르는 순간이었다.

엉엉 울며 아이를 자신의 심장에 품는 아내의 긴 여정은 보는 내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렇다. '40주+4일'의 여정을 함께한 뱃속의 드림이가 이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다. 출산한 시간은 오후 2시 29분. 딸아이도 3.1kg로 건강했다. 무엇보다 산모가 건강한 것이 가장 감사했다. 고생 끝에 딸 아이를 낳은 아내가 그 순간 무척이나 위대해 보였다.

아이를 낳은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 아이를 재우는 아내 아이를 낳은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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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마주한 드림이, 어색함에 손을 잡다


그런데 드림이를 처음으로 마주한 나는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쑥스러워 사랑한다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애꿎게 아이의 손만 잡고 말았다. 내가 상상한 드림이의 모습과 달라서일까, 엄마를 유독 닮은 이 아이가 내 아이라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멈칫도 잠시, 조산사가 내게 건네준 아이를 안으니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 '저 조그마한 낯선 존재가 내 딸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한없이 사랑스런 순백의 존재를 위해 나도 순수해져야 함을 깨달았다. 동시에 나를 위한 삶에서 드림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의 궤적이 내 안에 새롭게 더하여졌음을 느꼈다.

이제 아빠는 딸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 것이다.
▲ 아빠 품에 안긴 우리 딸 드림이 이제 아빠는 딸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 것이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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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벌써 우리 아이의 것임을 안다. 이제 나는 누가 뭐래도 우리 예쁜 드림이의 아빠다.


태그:#자연주의 출산, #조산원, #출산, #아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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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사회에 평범한 신입아빠, 직장인인 연응찬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바라보는 사회가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고 공감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평범한 눈과 자세로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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