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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이 잡혔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100일 가까이 지나서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유병언은 백골의 상태였다.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유병언 검거에 대해 언급했고, 검찰·경찰이 조력자가 있을 것을 염두해 수차례 내부 조직을 바꿔가며 수사 활동을 이어갔다. 전국적으로 수배 전단지가 곳곳에 붙여졌고 반상회를 열어 유병언 잡기에 온 국민이 열을 올렸다.

그때, 유씨는 마치 수사력을 비웃듯 수많은 '엄마'들을 교체하며 몸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재산이 동결당하고, 측근과 가족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동안 꼼짝도 않던 유병언이 은신처 인근 매실 밭에서 백골의 상태가 될 때까지 검찰과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유씨가 살아있을 당시 발견됐던 '순천'은 그에게 핵심적인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수나 광양 등 항구도시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순천이 밀항을 하기에 제격이었다는 해석과 구원파 신도와 시설, '다판다'를 비롯해 구원파 계열회사 점포들이 많은 이유도 있었다. 또한 유씨가 실질적 운영자였던 보성 녹차 밭과도 근접해있다는 이유로 도피자 유씨와 '순천'은 그다지 의아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순천은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 검거 작전 동안 매우 중요한 지역이였다. 

그러나 우형호 전남순천경찰서장 비롯한 순천경찰서는 온 국민이 검거에 열을 올리고,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매우 허술하고 전문적이지 못한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누리꾼들도 알고 있던 사실을 경찰이 몰랐다.

구원파 신도들이 수양회를 가서 암송대회를 연다던 유씨의 저서 <꿈같은 사랑>은 언론에서도 여러 번 언급됐던 중요 자료였다. 하지만 경찰은 발견된 유품 속 천가방에 또렷하게 적힌 <꿈같은 사랑>이라는 글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한 유씨 일가의 계열사 회사인 '세모 스쿠알렌'의 제품이 사체 옆에서 발견됐지만, '노숙자' 행색인 백골의 시신을 무연고자 처리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백골의 상태에서 육안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던 유씨, 온 국민이 주목하던 순천경찰서에서는 어째서 흰머리가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었다던 백골의 시신을 두고 의심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드디어 유병언이 나타났다. 아직 국과수의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유병언이라 추정하고 있지만 언론과 검·경은 거의 유병언과 일치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준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우형호 전남순천경찰서장은 초동수사의 미흡함을 사과했고, 22일 오전에 순천경찰서에서 열린 유 전 회장 추정 변사체와 관련한 수사내용 브리핑에서 '확인중입니다' '앞으로 수사해보려고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형호 전남순천경찰서장의 브리핑을 보면서 그가 정말 사전에 이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전달을 받고 있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어째서 모든 담당자들은 언론 브리핑 앞에서 늘 전문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을까? 유병언을 코앞에서 놓치고 측근 검거에도 실패하며 내부의 조력자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에 "반드시 잡겠다"라고 각오했던 것이 우스운 순간이다.

검·경의 위상이 나락 없이 떨어지고 있다. 백골 상태의 시신이 유병언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가 죽은 것인지, 아님 여전히 살아있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보다 더 큰 문제에 직면해있다. 21일부터 흘러나온 유병언 죽음에 대한 제기와 22일 오전에 순천경찰서에서 발표된 브리핑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과 '의심'이다.

이제, 사람들은 수사 결과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병언을 못 잡는 게 아니고 안 잡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그저 볼멘소리가 아니었다. 국민의 정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이었던 것이다. 수사권을 공조하지 않아 끊임없이 재기됐던 수사력이 그동안 검경협력을 이뤄내며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지만, 결국 오늘 여전히 검·경의 밥그릇 싸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믿을 수 있는 수사력을 보여줘야 했다. 검·경은 완전히 실패했다. 유병언이 백골로 나타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먼저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이 가장 큰 책임과 실수 그리고 문제다. 이는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닌 사회전반의 모든 일들에서 차례로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신뢰 가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국가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국가에는 영토, 국민, 주권이 구비돼야 한다는 '국가 3요소'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 이것은 어떤 이상(理想)이 아니다. 국민은 자신을 국가가 지켜줄 수 있는 곳이라 여겨야 하고, 국가는 국민이 없으면 국가의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국가의 의식에 국민은 없는 듯하다.

국회의원은 나라의 주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찾아와 인사를 하고 얼굴을 비추는 행위는 그만 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국민을 이용하는 것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자신과 당의 이익으로 회의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부실한 행태를 척결해야 하고, 자신의 월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과 그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나온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수사력을 믿지 않는 국민을 답답하게 여겨선 안 된다. 백골의 상태가 정말 유씨라고 결론이 나더라도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때 어째서 우리 사회가 수사결과를 신뢰하지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 철저하고 뼈저리게 생각해야 한다. 가슴을 아파하며 신뢰를 회복하기에 힘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없다.


태그:#유병언, #구원파, #순천경찰서, #브리핑,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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