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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펍을 피해서 더블린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 -제임스 조이스

대표적인 펍 '템플바'
 대표적인 펍 '템플바'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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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은 7월 초의 아일랜드는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었다. 길가 곳곳 펍에 'see the world cup here'이라는 문구가 즐비했다. 브라질이 어처구니 없이 7-1로 독일에 패했고, 네덜란드-브라질 간의 34위 전이 막 끝났으며 이제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만이 남아있었을 때 였다. 축구는 자고로 모여서 보는 재미, 우리는 펍을 찾아 결승전을 감상하기로 했다.

아, 잠깐 축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 아버지의 축구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아버지는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게는 항상 축구가 있다'는 바티스투타의 말이 딱 맞는 사람이다. 9살 이후의 월드컵 역사를 줄줄 꿰고, 다시 태어나면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포항 스틸러스의 광팬이라고. (기사를 쓰는 중에 옆에서 당신은 월드컵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국내 축구를 사랑하는 진정한 축구 팬이라고 꼭 써달란다.) 아빠를 따라 엄마도, 나도 축구를 좋아하게 됐다. 엄마도 전화기 배경화면을 포항 엠블럼으로 바꾸면서, 가족 세트가 됐다.

작은 산골 학교에 계시는 우리 어머니,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멀리서 소리치며 나오신다.

"야, 니네 이 쪽은 전북하고 저 쪽은 수원해라!"

그리고 응원가를 불러주신다.

"전북의 승리를 위하여/녹색의 전사여 전진하라/심장이 뛰는 한 그대를 지켜주리라/ 전북 알레 알레오."

형평성을 위하여...

"오오오오 사랑한다/ 나의 사랑 나의 수원/ 오오오오 좋아한다/ 오직 너만을 사랑해"

그러다 다음 날은 한 쪽은 서울, 다른 쪽은 포항하란다.

"모두 노래 부르자/ 나의 포항 영광 위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그대와 함께 있으니"

우리 가족은 아침에 바쁘게 움직일 때 응원가를 행진가처럼 부르기 일쑤다. 음, 어쩌면 나는 축구장에서 먹는 치킨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도 펍에서 엄청 소리질렀다.

월드컵도 펍에서
 월드컵도 펍에서
ⓒ connemara-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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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명들은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지만, 우리는 펍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는 아일랜드 농담이 있을 정도로 '펍'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중심이다. 프랑스에 '카페'가 있다면, 더블린에는 '펍'! 인구 100만의 도시 더블린에 펍이 무려 1000개나 있다고.

펍의 한쪽에는 아일랜드 전통 악기나 춤을 추는 무대가 있고, 구석의 바에서는 기네스와 맥주 그리고 '제임슨' 같은 여러 종류의 위스키, 간단한 안주를 판다.

아일랜드의 술과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문화의 기반이 이곳이다. 펍의 촛불 아래에서 연극, 문화, 예술에 대한 토론을 즐긴다는 아일랜드 사람들. 심지어 동네 회의도 펍에서 열린다고 한다. 'Pub'이라는 말 자체가 'Public House'의 준말이라고. 술도 문화의 한 부분으로, 성을 매매하는 문화가 아니어서 단지 술과 웃음을 즐긴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건전하다고 한다.

우리가 찾은 펍은 아이리쉬 전통 노래가 한창이고, 사람들이 한가득 술잔을 들이키고 있다. 내 또래의 애들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서로 웃고 떠들고, 시끌벅적하다. 우리들의 클럽처럼 젊은이들의 '헌팅'장소가 아니라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낯선 이들과 꺼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바 한쪽에서 만난 안젤라는 통성명을 하고, 자신은 슬라이고에서 왔다고, 휴가 차 골웨이를 찾았다며 활기차게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너무 커서 엄마와 나, 아빠를 보고 세 명의 친구인줄 알았다고. 부모, 자녀인줄 알고 놀랐다고 엄마는 기분이 좋아서. 하하. 먼저왔던 안젤라 말로는 연주자 3명 중 한 명은 손님으로, 그냥 올라가서 밴드와 합주하고 있다고 한다. 잘하든 못하든 누구나 올라가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대단하다.

펍의 연주자들
 펍의 연주자들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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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먹는 것의 단조로움과는 대조되는 문화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다. 더블린, 골웨이 어디를 가나 걷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거리가 있어, 곳곳에 밴드가 자리잡고 기타와 드럼, 간혹 아일리쉬 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한다.

골웨이에서 우리는 한 가족이 나와 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멋있는 풍경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배워서 누구나 하나쯤은 악기를 다룰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선진국의 기준 중 하나를 '악기 하나를 다루는 것'이라고 하던데.

한국은? 한국인이 어딜 가나 표가 난다고, 길가면서 스마트폰 하고 있으면 한국인이란다. 펍 같이 조그맣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부자가 함께 와서 맥주를 마시는, 그런 공간이 부럽다. 홍대, 압구정 등이 있다지만, 마을마다의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곳곳에 참 기본적인 인간다움의 풍족함이 있다. 집집마다 작지만 잔디와 꽃이 정성스러운 마당이 있고, 5층을 넘지 않는 건물들과, 곳곳에 옛 건물들과 소박한 교회들이 있다. 영미문학에 강한 영향력이 있으며, 사람들이 예술, 문학, 음악에 대한 관심이 풍부하다.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널 때조차 차에서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해준다. 보행자 중심인 분위기가 사람들의 몸에 배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도 다른 이들에게 문을 잡아주는 것 같은 사소한 도움을 나누게 되는 듯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 이기주의 같은 천박성들은 결국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본적 태도, 문화의 부족이 아닐까. 우리들이 '정'이라 부르는 것은 결국 한 존재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결국 집단의 '이기주의'가 아니었던가. 새로운 문화가 준 '컬쳐쇼크'에 적잖은 생각들이 오가고 있다.

하나 더. 어머니는 이곳에서 맨발로 거리를 다니신다. 한국에서도 가끔 그러고 다니시는데, 단지 다르다는 까닭으로 불편한 시선을 받을 때가 있다. 여기서도 제지를 받지만, 'FOR SAFETY', 안전을 위해서라는 걱정이다. 어떤 이들은 자유로워 보인다며 신기해하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이곳에서는 뒤에서의 수근거림이 아니라 앞에서 '재밌다'며 한마디씩 하고, 같이 웃을 수 있다.

누군가 아일랜드의 국민정서가 한국과 비슷하다고 했던데, 아일랜드에 꼭 와보시길. 절대 그렇지 않을 거다.

맨발로 훑는 더블린
 맨발로 훑는 더블린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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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독일의 우승으로 끝났고, 옆에는 빈 기네스 잔들이 쌓여있다. 구석의 무대에서는 만돌린, 기타, 틴 휘슬로 경쾌하고 빠른 아일리쉬 노래가 흐른다. 아,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나없이 가까운, 이런 나라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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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아일랜드, #펍, #아일랜드 문화, #월드컵, #템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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