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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겨레21에서 한 대학언론이 학생 커뮤니티의 익명 글을 인용하며 입학 성적에 따른 캠퍼스 내 차별을 보도한 바 있다. 해당 보도가 일부 익명 글을 가지고 학생 사회 전체로 일반화했다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보도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들끓었다. 이른바 본-분교의 잣대로 학생을 나누는 것에 관심도 없거니와 서로 다른 전형으로 입학한 것에 대해 차별을 둔 적이 없다는 학생들의 반론이었다. 한편으로 익명의 지위로 차별을 정당화한 학생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도 하다. 이러한 차별의 근본에 뿌리 깊은 '학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대학 서열화로 점철된 '학벌주의'의 당위에는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보상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사석이든 토론장이든 학벌주의를 논하면 학벌은 노력의 산물이자 그에 합당한 보상이므로 학벌주의의 존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학벌주의는 노력의 보상 역할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숨통을 조이는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

'인격 없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진 않은가

학벌로 인생의 당락을 결정짓는다는 의식이 만연한 학벌주의 하에서는 입시 성공이라는 당면 과제를 앞둔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중학생과 초등학생까지 더 나은 대학을 가기 위한 궁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보다 더 미리 경쟁의 우위를 선점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영어유치원까지 생겨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입시에서 좌절을 겪은 학생들은 대학 간판의 유불리를 불편한 마음으로 걱정하면서 1년 더 고생하자는 심정으로 재수한다. 재수생 연간 12만여 명, 비용만 1조원인 시대이다. 가정 경제를 짓누르는 사교육의 근본적 원인이 드러난 셈이다. 아이를 낳으면 교육해야 하는 가정 입장에서 지금의 교육 현실에 어찌할 엄두를 못 내 아이 낳기도, 키우기도 어렵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이다.

극단적일 수 있겠으나 초중고 교육 과정은 도덕적 가치와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한 교육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입시를 위한 훈련의 과정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2년간 문제 해결 능력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으면서 문제 푸는 것을 교육의 주류로 인식하고 체득하지는 않았던가. 학교 폭력과 학업 중 자살을 택한 학생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학벌을 둘러싼 경쟁의 무거운 짓눌림 속에 우리 교육이 간디가 지적한 악덕 중 '인격 없는 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는지는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제 학벌주의의 당위를 허물고, '패자부활전'의 마련을 염원하는 담론이 공론화되어야 한다. 이른바 서열 상에서 불리한 대학을 나왔거나, 설령 대학을 못 나왔다 한들 실력만으로 언제든 승부를 겨를 수 있는 링이 사회 각계에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라의 미래인 교육과 사회의 근간인 가정이 입시 경쟁이 아닌 다른 귀중한 가치에도 눈을 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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