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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의 행렬. 20일에는 약 1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의 행렬. 20일에는 약 1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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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세 명이 시작한 순례. 지난 20일, 순례에 함께하는 이는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실종자들의 귀환을 염원하며 시작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도보 순례 이야기다.

지난 8일 도보 순례를 시작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호진(56, 고 이승현 학생의 아버지)씨, 이아름(25, 고 이승현 학생의 누나)씨, 김학일(52, 고 김웅기 학생의 아버지)씨의 발걸음에 맞춰 함께 순례하는 행렬은 순례 시작에 비해 무척 길어졌다.

목숨을 잃은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같은 또래 학생들, 참사 소식이 마치 자기 자식을 잃은 듯 아팠다는 아이 엄마, 참사의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성직자와 지역 시민들까지, 유가족 순례단을 뒤따르는 이들은 저마다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기자는 지난 20일 오후 3시 전북 고창군 흥덕면 노동마을에서 시작된 오후 도보 순례 현장에서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을 만났다.

세월호 유가족이 교황에게 십자가 전달하려는 이유

20일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에 동행한 시민들
 20일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에 동행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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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발견되지 않은 아이들이 하루 빨리 부모님의 품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과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걷고 있어요."

김학일씨가 밝힌 도보 순례의 이유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84일째인 7월 8일 경기도 안산 단원고를 시작으로 도보 순례길에 올랐다. 그리고 순례 11일 차인 지난 17일 전라북도 익산을 지나 김제·부안·고창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를 따라 진도 팽목항을 향해 걷고 있다.

이들은 하루 25km가량을 걷는다.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를 생각하면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약 1시간마다 주어지는 쉬는 시간, 이호진씨의 발에는 물집이 가득하다. 편하지 않은 발걸음. 그러나 김학일씨는 이 걸음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듯했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안산 분향소 앞에만 있을 적에는 정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걷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하네요. 전라북도에 들어서면서 순례에 동참해주시는 분들도 늘었고, 위로도 해주시니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물론 이 순례는 길 위에 아픔을 내려놓으려는 성격의 순례가 아니다. 팽목항까지 가는 동안 남은 실종자 10명이 모두 발견되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세월호 참사가 잊히지 않고 진상이 규명되는 날까지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행동에 힘을 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순례단은 오는 7월 말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걷고 그곳에서 3일가량 머문 뒤 대전광역시로 갈 예정이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8월 15일, 이들은 1900리(750km가량) 길위에서 짊어졌던 십자가를 직접 교황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교황님을 뵙고, 세월호 십자가에 대해 한 말씀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그 말씀이 세계인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순례가 불씨가 돼 더 많은 변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 낳은 '죄'를 유가족이 대신 지겠다니..."

20일에는 문규현 신부가 십자가를 대신 지고 순례를 했다. 문 신부는 대신 지고 갈 수 있게 허락해 준 유가족들에게 고마워하며 걸었다.
 20일에는 문규현 신부가 십자가를 대신 지고 순례를 했다. 문 신부는 대신 지고 갈 수 있게 허락해 준 유가족들에게 고마워하며 걸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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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지 않는 십자가, 우리라도 지겠다"며 시작한 순례. 하지만 이제 많은 이들이 이들의 순례에 함께하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부터 순례단과 함께 발걸음을 맞춰온 문규현 신부는 교황에게 전달하려는 십자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탐욕과 무능이 부른 이 세상의 죄이며 십자가는 그 죄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죄를 부른 권력은 이 죄에 대해 아무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아요. 그런데 유가족들이 그 죄가 담긴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쉽게 이 십자가를 다른 이에게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순례단은 문규현 신부에게만큼은 십자가를 양보했다. 문 신부는 "십자가의 짐을 같이 질 수 있게 허락해줘 고맙다"라면서 십자가를 지고 순례 행렬에 앞장섰다.

비록 십자가를 지지는 않았지만, 유가족들을 뒤따르는 많은 시민들도 저마다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며 걸었다.

"진상규명 안 되면 '참사'는 반복될 것"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에 동행한 시민들.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동행한 시민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순례에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에 동행한 시민들.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동행한 시민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순례에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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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장에 있던 송은행(42, 김제 거주)씨는 16개월 된 갓난아이의 엄마다. 그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순례에 동참했다. 송씨는 "조그만 아이를 데리고 굳이 왜 가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라면서 "그런데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순례에 함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송씨는 "세월호 참사는 안전하지 못한 대한민국을 보여준 심각한 사건"이라면서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참사는 언제든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주 중앙여고에 다니는 이혜원(18) 학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같이 걷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라면서 "순례를 하는 유가족들이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다, 끝까지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라고 응원했다.

이날 도보순례에는 전주지역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순례학교' 소속 학생 16명도 함께했다. 하루 순례를 마친 뒤 김학일씨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자라면서 멸시받고 억울하게 고통받는 이들을 많은 볼 것이다, 여러분들이 그들의 눈물을 먼저 닦아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라는 말을 전했다.

순례단은 21일 하루동안 휴식을 취한 뒤 22일부터 다시 진도 팽목향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20일,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은 전북 고창에 도착했다. 순례단은 7월 말에 진도 팽목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20일,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은 전북 고창에 도착했다. 순례단은 7월 말에 진도 팽목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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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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