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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교양프로그램인 <다큐멘터리 3일> 제작진이 오는 24일 세월호 침몰 사고 100일을 맞아 준비하던 유족 관련 방송 제작이 중단됐다. 김규효 기획제작국장과 장영주 기획제작국 부장이 취재 중단을 지시한 탓이다. 홍기호 <다큐멘터리 3일> PD는 21일 오전 사내 게시판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홍기호 PD의 동의를 얻어 그가 쓴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1일 국회 본관 앞에서 8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세월호 유족 단식농성 8일째...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1일 국회 본관 앞에서 8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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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 아이템은 안 된다는 김규효 국장과 장영주 부장께 묻습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7.24)을 맞이하여 세월호 유족들의 3일을 다루려고 하였다. 21일(월)부터 24일(목)까지 3박 4일을 취재해 27일 방송하고자 했다. 보통 촬영 후 2주 정도의 후반 작업 기간이 소요되지만 아이템의 성격상 바로 방송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유족 대표단은 국회와 광화문에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중이다.

그러나 김규효 국장과 장영주 부장은 다큐 3일의 아이템으로서는 적절치 않다며 취재 중단을 지시했다. 두 데스크가 취재 불가의 근거로 내세운 해명들은 내 이성과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다큐3일은 논쟁의 현장을 다뤄서는 안 된다?

장영주 부장의 주장이다. 김규효 국장은 국회의 농성 상황을 취재 방송하는 것은 의도와 상관없이 목적성을 띠게 되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다소 장황하지만 장 부장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덧붙여 장 부장은 BBC의 가이드라인을 들며 논쟁적 이슈는 '적절한 불편부당성'을 가져야 하는데 다큐3일은 포맷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단 전례를 들면 다큐3일은 논쟁의 현장을 다룬 적이 있다. 쌍용차 해고자 쉼터 '와락'(2013.1.20.), 밀양 송전탑 농성 할머니(2012.12.16.) 등을 취재, 방송했다.

다큐3일이 포맷상 중립적이기 힘들다는 주장은 프로의 성격상 취재원의 입장에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이라는 거다. 여느 시사 프로처럼 반대 의견을 균형 있게 담기 힘들다는 얘기다.   

다큐 3일은 르포르타주 성격의 다큐다.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현장의 구성원에 밀착한다. 데스크의 주장대로라면 갈등과 논쟁의 현장을 취재한 모든 르포는 중립성을 상실한 다큐가 된다. 진실을 왜곡한 다큐이다.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을 이렇게 판단하는 게 적절한가? 

다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닌 실제 현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현실의 묘사는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와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는 포맷이 아니라 제작자의 의지와 노력이 결정한다.         

오해는 또 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는 유족들의 현황을 담게 되면 사례로 취재하는 각 가족들의 살아온 이야기, 희생된 아이에 대한 이모저모, 사고 당시의 상황, 이후 가족들에게 찾아온 변화 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된다. 

논쟁이 되는 특별법 부분은 내용의 일부분일 뿐이다. 특별법에 대한 유족들의 주장은 정치권, 특히 여당의 안과 많은 차이가 있어 갈등을 빚고 있다. 이는 여야 의원들의 취재를 통해 서로 다른 주장들을 담아 낼 수 있다. 의원들은 농성중인 유족 대표들을 수시로 방문한다. 설혹 여권의 다른 목소리를 담지 못하면 간접적으로 반대 입장을 적시할 수도 있다. 유족의 주장만을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단정하지만 않으면 된다. 취재원과 취재자의 입장을 혼동할 만큼 내 직업관이 흐릿하지는 않다.

하지만 데스크는 이런 반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월호 유족들은 이익집단이다?

장영주 부장의 또 다른 반대 논거다. 이익의 한 당사자로서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농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성하는 유족들을 취재하면 균형감과 공정성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또한 입법기관인 국회에서의 농성은 대의정치를 전면 부정하는 행위이므로 KBS 프로가 다루면 대의정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장 부장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앞서의 주장보다는 이것이 프로그램 추진을 반대하는 핵심 이유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정말 유감이다.      

이익집단이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집단'으로 정의된다. 단지 어떤 주장을 공유하고 펼친다고 해서 이익집단이라 정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이익집단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달성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으므로, 공익과의 관계에서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여기에 장 부장 판단의 심각성이 있는데,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유족들의 주장이 공익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유족들이 주장하는 특별법은 진상 규명을 위한 특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고 특위 추천위원의 절반을 유족 추천으로 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인적으로 유족들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공익과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단지 각 주체 간 의견이 다를 뿐이다.  

장 부장은 공영방송의 간부로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가 큰 재난이기는 하지만 역대 재난 중 피해 정도가 가장 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크게, 가장 오랫동안 온 국민이 애도한 사고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해운회사의 부도덕, 국가기관의 부패와 무능이 생떼 같은 어린 목숨 수백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여기에 언론의 오보와 왜곡이 가세하면서 분노와 슬픔을 증폭시켰다.

그래서 세월호의 침몰을 국가의 침몰, 사회 시스템의 침몰로 보는 것이다. 공영방송 KBS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의무가 있다. 다큐 3일에서 세월호 100일을 맞아 유족들의 3일을 조망하려는 이유였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의 현재 상황을 시청자들이 왜 알아야 하는가?'가 장영주 부장으로부터 들은 대답이었다.

더 나아가 작은 사고로 죽은 사람은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니 가장 불쌍하다며 세월호 특별법 자체가 오버라고도 했다. 하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 4인가구당 100만 원씩 지급된 긴급복지지원자금이 유일한 보상이다. 가슴에 묻은 자식을 어떻게 보상한단 말인가?

김규효 국장은 유족들이 주장하는 특별법은 유족들이 직접 수사권을 갖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새누리당과 동일한 입장을 피력했다. 

다시 공영방송 KBS의 침몰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외에 세월호 프로가 금주에 과잉 편성되어있다는 것도 반대의 이유였다. 그러나 파노라마에서 목, 금 2편 방송이 예정된 것 외에는 확인된 게 없다. 파노라마도 1편은 박예슬양 관련, 2편은 세월호와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100일을 맞는 유족들의 현황을 보여주는 내용은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얘기해야 한다. 현실과 소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다큐는 죽은 다큐다. 김규효 국장은 세월호 유족 아이템을 반대하면서 다큐3일은 누구나 보면서 감동할 수 있는, 일요일 밤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프로라고 했다. 이 말은 내게 이렇게 들렸다.    

"가만히 있으라"


태그:#다큐3일 세월호 유촉 취재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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