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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역에는 노갈레스(Nogales)라는 마을이 있다. 담장으로 나누어진 이 마을에는 흥미로운 것이 있다.

담장 북쪽 미 아리조나 주의 노갈레스는 일인당 연간 평균소득이 3만 달러이며, 도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대다수 십대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며, 마을에 사는 성인들은 주로 대학을 졸업했다.

반면 담장 남쪽의 멕시코 소노라주의 노갈레스는 연간 평균소득이 북쪽 마을보다 1/3에 불과하다. 대다수 성인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했고, 십대 아이들은 학교에 없다. 게다가 법 질서도 북쪽에 비해 확립되지 않아 범죄율도 높은 편이다.

문화·지리학적으로 유사한 남·북한, 왜 이리 다르지?

노갈레스 마을 전체는 문화적으로 지리학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마을 수준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 이는 한반도 상황과도 매우 유사하다. 문화 및 지리학적으로 유사한 한반도에서 왜 남한은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는 반면, 왜 북한은 국제 원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책표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책표지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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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계 미국경제학자이자 메사추데츠 공과대학(MIT) 교수인 다론 아제모루(Daron Acemoglu)와 하버드대 교수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은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위의 질문을 정치경제사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이 저서가 출판되기 전까지 서방에서 국가 번영에 대해 연구한 관점은 다양했다. 가장 최근에 제시되었던 가설은 지리적 상이성이다.

예로 들어 서방의 경우 사계절이 있고 식량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어서 빠르게 발전했지만, 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사막 및 밀림지역으로 지리적인 장애가 존재했기 때문에 발전이 더디었다는 내용이다.

또한 문화적인 상이성을 거론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를테면, 유럽과 아시아의 경우 막스 베버라는 사회학자 및 유교사상으로 인해 부지런해진 반면, 아프리카의 경우 전통종교 의례를 고수하고 선진기술을 바탕으로 한 서양문명에 저항했기 때문에 몰락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저자는 두 가지 가설 모두 부정한다. 지리학적 가설의 경우는 식량과 자원이 풍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국가 발전도가 왜 상이한지를 설명할 수 없다. 문화적 가설의 경우에는 남북한 경우 같은 유교문화권이지만 국가 발전 정도가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 그리고 마오쩌둥이 사회주의적 근면성을 강조해서 대약진운동을 펼쳤지만 오히려 최악의 기근으로 연결되면서 거시경제구조가 무너졌다는 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밖에도 국가가 경제학적으로 무지해서 발전이 더디냐고 언급할 수도 있는데 이것도 역시 다른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 부정한다.

국가 엘리트의 행태 역사학적으로 주목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가? 두 저자는 국가 엘리트의 행태를 역사학적으로 주목한다.

즉, 먼저 중앙정부 체계를 확고히 하고, 권력 엘리트들이 시민들에게 정치경제적으로 유연한 정책을 펴는 것과 시민들의 깨어있는 정치의식을 바탕으로 선순환 구조(Virtuous circle)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노갈레스 마을과 남북한의 상이성은 국가구조가 시민들의 자유를 위해 구성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두 저자는 서유럽의 농노제 폐지와 영국의 명예혁명 및 산업혁명을 먼저 언급한다. 유럽은 지주가 농노를 이용해서 부를 취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전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고 간 페스트로 인해 임금이 상승했다.

이로 인해 특히 서유럽 지역의 경우 상대적으로 영주에게 돈을 지불하고 해방된 자유농민들이 많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경직된 엘리트 지주에 대한 농민들의 대대적인 저항도 있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친 이후, 왕실이 적극적으로 중상주의를 추진하여 국부를 축적해갔다. 하지만 이는 왕실 및 정치관료에게 한정되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일어난 당시 상공업자들의 저항이 바로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이다.

이로 인해 권리장전으로 영국 의회의 권한이 강화된 대신, 국왕의 특권을 제한하여 후에 입헌군주제가 확립하는 기반이 된다. 또한 이를 통해 시민들의 자유로운 정치경제적 활동과 사상 및 표현의 자유가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자유를 통해 인문학적이고 과학적인 집단 지성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어, 산업혁명으로 실현되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에도 엘리트의 권력 남용을 제한하고, 시민들의 정치경제적 자유 및 권리를 더욱 확대하여서 오늘날의 안정된 민주주의를 구축할 수 있었다.

반면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국가 및 구 공산권 국가의 정치경제적 몰락은 '경직되고 탐욕스러운 엘리트' 계층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 식민지시절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는 유럽 열강들이 막대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던 중요한 창구였다.

하지만 자원을 확보하는 것은 영국처럼 시민들의 경제적 자유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식민지 주민들의 노동을 착취로 이뤄진 결과였다. 구 공산권 국가들도 서방에 대항하기 위해 급격한 중공업화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는 공산당 엘리트의 실적을 남기기 위한 정책 수단이었을 뿐 시민들의 복지와는 연관이 없었다. 오히려 실적 달성을 위해 시민들을 지속적으로 착취하는 구조로 간다.

남미국가의 경우 독립혁명 기치 아래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민족주의자 엘리트가 주도한 독립운동을 통해 옛 식민지 권력이 교체되었다. 구 공산권의 경우 사회주의 혁명으로 영국과 대조적으로 농노들을 지속적으로 착취했던 왕조를 몰락시키기도 했지만, 교체된 권력마저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주민들을 착취했다.

또한 이들은 영국 및 서유럽의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신기술의 도입으로 자신의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일반 주민들의 정치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오히려 제한했다. 이러한 현상이 악순환하면 국가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남북한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남한의 경우 북한과 상대적으로 시민들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발전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지배 엘리트층이 정치 및 경제권력을 독점하는 구조가 오래 지속되어서 실패한 국가로 낙인찍힌 것이다. 다만 저자가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과 같은 역사로 인해 민주정부가 수립되어 정치적 자유가 이전보다 더 확대되었다는 내용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한국인의 입장에서 아쉬웠다.

악순환을 끊고 경직된 엘리트를 개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서에서는 가장 먼저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실천하라고 강조한다. 프랑스는 대혁명을 통해서 기존 절대군주정체(ancien regime)를 무너뜨렸고, 미국 남부의 흑인 차별정책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한 시민세력을 통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된 영국도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노동자 및 여성 등의 지속적인 권리요구와 그로 인한 피값으로 오늘날의 선진 민주정치가 이루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제대로 하게끔 엘리트 계층의 특권을 제한하고 이들이 평범한 시민의 자유를 위해 봉사하게 만드는 것이 오늘날 국가 번영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오늘날의 경우 자본가 엘리트 계층의 경직화로 인해 글로벌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는 한국에 있어서도 재벌기업 및 관피아와 같은 엘리트 관료들의 경직화로 인해 정치경제학적 문제가 더 심화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를 혁파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국가가 실패하는 것을 막는 것이 시민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대런 애쓰모글루 / 제임스 A. 로빈슨 (지은이) / 최완규 (옮긴이) /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09-27 / 원제 Why Nations Fail (2012년)/ 25000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시공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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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베를린 해외통신원입니다. 관심분야는 잡다하지만, 요즘은 국제정치/의회정치/민주주의/난민 및 외국인 노동자 인권/환경 등에 관심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