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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일반인 및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4.16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 '4.16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일반인 및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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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전문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로 삼는다. 하지만 제헌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이 굳은 약속은 세월호 참사에서 이중으로 부정 당한다. 대한민국은 피해자들의 안전도 지켜주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 진상과 책임마저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함으로써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안전 또한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이제 우리 모두의 참사가 되어 버렸다. 사고가 일어난 지 곧 100일이 되지만, 여전히 10명의 귀한 생명은 '실종' 중이고, 참사의 원인은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고, 참사의 책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의 수사도 있었고, 감사원의 감사도 있었고, 법원의 재판도 국회의 국정조사도 엄연히 진행되고 있지만, 참사 당일날 사라진 대통령의 행방처럼 모든 사실관계들이 오리무중이다. 무심한 시간과 비열한 정치는 그 진상조차 과거사로 묻어 버릴 뿐이다.

그 와중에 피해자들을 애도하며 떠나 보내지 못한 우리는 깊은 우울증만 강요 당한다. 우리가 상실한 것은 그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여행하던 무고한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국가에 대한 신뢰와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빼앗겨 버렸다. 우리가 믿었던 삶의 토대 자체가 탐욕과 거짓과 배신으로 얽혀진 모래더미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은 이런 폐악을 바로 잡고자 한다. 너무도 많은 것을 잃고도 그 원인과 책임의 행방조차도 찾지 못한 이 이중의 참사를 제대로 조사하고 올바른 진상과 적정한 책임의 소재를 밝혀냄으로써 이 사회가 강요한 깊은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거짓된 말, 실속 없는 다짐, 조작된 사실, 행방없는 책임, 마음 없는 애도……, 이 모든 가식들을 벗겨내고 허위와 기망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던 자들을 솎아냄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을 영원히 확보하며 우리가 스스로 우리 삶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에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추궁, 환골탈태라 할 정도의 재난방지체제의 확보, 인간중심의 사회경제체제의 구축 등은 세월호특별법의 중심과제가 된다. 그리고 독립성과 전문성 그리고 실효성을 갖춘 진상조사기구는 이 모든 과제의 출발점이다. 그동안 세월호참사의 처리와 관련하여 정부나 국회가 보여준 책임회피식 은폐·엄폐의 공작들은 이들이 결코 진상조사의 주역도 조역도 될 수 없음을 잘 증명한다.

더구나 과거사위원회 등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수사권과 기소권을 확보하지 못한 진상조사기구는, 의회모독죄나 법정모독죄로 실효성을 담보하는 영미의 경우와는 달리 사건의 진실에 가닿기에는 역부족이다. 세월호특별법이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을 피해자가족들과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할 것을 예정하고 있음은 바로 이런 독립성과 전문성을 위한 것이며, 이 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고자 함은 그 조사권한에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황교안 "민간기구 수사권" 발언의 문제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관보고에서 답변하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관보고에서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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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의 과제를 솔선해서 수행하여야 할 여당과 법무부장관이 여기에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세월호특별법의 실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는 새누리당에 동조하여 지난 17일 "수사권을 민간기구에 줄 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렇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수사기관이 아닌 곳에서 수사권을 가진 적은 없었"던 "기존 사법체계와 다른 시스템"이라고 하면 반대의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우리 헌법 및 사법체계에 대한 잘 못된 인식에 터잡고 있다.

우선 세월호특별법이 지향하는 진상조사위원회는 '민간기구'가 아니다. 그것은 민간이 참여하는 국가기구이지 시민단체나 비영리단체와 같은 '민간'기구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위원회는 의연히 법률에 의하여 설치되고 국가적 권한이 부여되고 이를 통해 진상조사와 책임규명이라는 국가기능을 수행한다. 단지 업무수행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그 위원들을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으로 위촉할 뿐이다.

그래서 그것은 과거사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등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국가기구이다. 그 기구가 내린 결정이나 조치들이 다른 국가기관과 마찬가지로 행정소송의 대상이자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은 이를 예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장관이라는 사람이 '민간기구'라는 세속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마치 이 기구가 법률이나 국가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인양 눈속임하는 것은 정말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수사권'을 운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법무부장관은 수사권이 '수사기관'인 검찰에게만 독점되어야 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런 억지는 이미 1999년 특별검사제가 우리 법제에 터잡음으로써 그나마의 근거를 상실해 버렸다. 검찰이 정치의 시녀가 되어 진실을 은폐하고 법을 왜곡하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벌써부터 검찰이 유일한 수사기관일 수는 없다고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권위주의체제가 척결된 직후인 1988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67건이나 되는 특별검사법안(위원회 대안 포함)이 국회에 발의되었고 그 중 12건에 달하는 특별검사법이 통과되기도 하였다. 검찰이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되면서 수사권은 이미 검찰 밖에서 통용되어 왔던 것이다.

실제 우리 법제에서 애당초 수사권을 경찰이 아니라 검찰에 부여하였던 최대의 이유는 경찰에 대한 불신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기승을 부리던 경찰을 견제하고 수사권을 비롯한 형사사법권이 정치로부터 독립하여 공정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검찰에게 막중한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권위주의체제는 물론 민주화 이후에까지 이러한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수사권을 더 이상 검찰에게만 일임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과거 경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수사권을 검찰에 귀속시키게 하였다면, 현재와 같이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이제 수사권을 검찰로부터 거두어들여 특별검사와 같은 별도의 기구에 귀속시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세월호특별법에서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검찰이 검찰답기를 포기한 현재의 상황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필연이다. 그것은 일종의 특별검사에 다름 아니며 따라서 11건에 달하는 특별검사의 역사로부터 그 정당성을 획득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세월호특별법을 두고 "기존 사법체계와 다른 시스템" 운운하는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발언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검찰 아닌 기구가 수사권을 가진 것이 이미 우리의 제도로 정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그렇고, 사법체계의 외곽에 자리잡은 수사권의 문제를 두고 "사법체계" 운운 하는 것도 그렇다. 나아가 수사권이 어디에 귀속되건 그것은 철저하게 법원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채 "다른"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비리하다. 한 마디로 이런 발언은 검찰과 법무행정을 왜곡하여 왔던 과거와 현재의 과오는 반성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직역이기주의에만 충실한 것일 따름이다.

사실 수사권의 문제는 주로 강제수사의 경우에 발생하며 이는 영장주의의 원칙에 의해 법원이 수시로 개입하는 가운데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 그래서 수사권을 검찰만이 독점해야 한다는 논리는 현실적 타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형사소송법상의 절차와 한계만 지킨다면, 그리고 법원의 감독과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수사를 어떤 국가기구가 하더라도 우리 형사사법체계를 왜곡 시키거나 뒤흔들어 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요컨대 세월호특별법은 어디를 보더라도 "기존의 사법체계와 다른 시스템"이 아니라 "기존의 사법체계와 다를 바 없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이후 '인간'과 '짐승'만 남았다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형사소송법은 검찰로 하여금 공소를 유지하도록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기소권을 검찰에 독점시켜야 한다는 법명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반인도 기소권을 가지고 공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인소추제는 영국의 사례로 유명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대륙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에도 여전히 이런 사인소추제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절대왕정체제에서의 국가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인소추제를 인정하였던 프랑스의 사례나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 사인소추라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는 세월호참사와 같은 우리의 경우에 더욱 유효한 모범사례를 제시한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장악하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사랑하는 아들딸과 가족을 잃어버린 유족들의 아픔을 사법적으로 승화시켜 줄 수 있는 독일의 예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보다 더 절실하게 우리에게 와 닿기 때문이다.

실제 법무부장관의 저 발언은 검찰의 식민지로 전락한 법무부의 현존재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진상조사위원회가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청와대로 쳐들어가는 장면에 몸서리치는 듯한 여당의 저런 입장 또한 권위주의적 통치의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이런 행태 속에서 대한민국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권력만 있고 이익만 있을 뿐, 모든 국민들을 위한 우리 모두의 정치는 소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참사가 바로 이런 국가 공백의 상태에서 야기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1일 국회 본관 앞에서 8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농성장을 지키던 한 유가족이 세월호 국조특위 심재철 위원장이 '특별법 반대글'을 퍼뜨렸다는 기사를 읽고 있다.
▲ '특별법 반대글' 퍼뜨린 심재철 위원장, 기사보는 유족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1일 국회 본관 앞에서 8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농성장을 지키던 한 유가족이 세월호 국조특위 심재철 위원장이 '특별법 반대글'을 퍼뜨렸다는 기사를 읽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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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하지만 세월호참사는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가없는 슬픔뿐 아니라 "이것이 과연 나라인가?" 혹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의문을 야기하였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4월 16일의 상태를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욱더 큰 충격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동안의 정부가 신자유주의니 규제완화니 하면서 수많은 조치들을 남발하면서 국민 모두의 희생위에 소수의 자본과 소수의 권력만 도모하는 와중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음을 이제야 깨달은 우리들의 한탄이 여기에 실려 있을지도 모른다.

SNS의 한 켠에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진보와 보수가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인간과 짐승만이 있다'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온갖 비방을 늘어놓는 저 무지한 인간군상들을 향한 비난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은, 얼토당토 않은 교언들로 세월호특별법을 형해화 시키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짐승되기를 강요하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다. 혹은 어쩌면 그 말은 세상의 빈곤과 공허함을 목도하면서도 생각하고 반성하지 못 한 채 저항의 목소리조차 상실해가는 우리 모두를 안타까와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월호특별법은 이런 한계상황을 법치의 영역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마련한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겠노라는 대한민국의 존재이유를 주권자인 국민들의 손으로 확인하고 재구성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불행히도 삶은 계속되었다"는 <불쏘클(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노래를 들이대며 득의의 미소를 짓는 그들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그 저항의 틈새라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월호특별법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이 사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이 쓴 글입니다.



태그:#세월호특별법, #수사권, #기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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