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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암 가는 길. 쓰러진 고목 너머로 지리능선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상무주암 가는 길. 쓰러진 고목 너머로 지리능선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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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의 사립문을 벗어나면 상무주암 가는 길이다. 이제부턴 그 흔한 세속의 찻길도 없이 오롯이 발품으로만 다녀야 하는 산길이다. 능선을 오르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바위돌길을 한참이나 올라야 하는 비탈길, 시쳇말로 '된비알'이다. 산성의 석문처럼 우람한 바위가 버티고 있는 비티재까지는 숨이 깔딱깔딱 차오르는 길이지만 짙은 녹음과 아름드리 신갈나무 숲이 잠시 가픈 숨을 멈추게 한다.

암자로 가는 길

고개를 오르자 길은 평탄해진다. 황홀한 들꽃이 지천에 피어 있고 싱그러운 흙길에 발걸음이 상쾌하다. 가지 사이를 비집어 내리쬐는 햇빛에 산길은 한층 부드러워진다. 1000고지가 넘는 산중은 봄날이 낳은 꽃들로 곳곳이 선경이다. 눈부신 햇살, 가지를 흔드는 바람에 온몸이 청량해진다.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산 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전망도 좋거니와 산죽과 소나무, 바위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매혹적인 오솔길이다.

2014년 5월 상무주암 가는 길에는 온갖 꽃들로 곳곳이 선경이었다.
 2014년 5월 상무주암 가는 길에는 온갖 꽃들로 곳곳이 선경이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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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암 못 미친 곳, 벼랑 끝 고대가 있다. 10여 명은 족히 앉을 너럭바위 끝으로 쓰러진 고목 한 그루. 그 너머로 천왕봉에서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지리 능선이 손에 잡힐 듯 아스라이 펼쳐지고, 장한 노송 한 그루가 위태하게 서 있다. 일산처럼 펼쳐진 소나무 가지 아래로 방금 지나온 산 능선이 부드럽게 펼쳐지고, 연둣빛 양탄자 깔린 숲에 불쑥 솟은 기암과 소나무 두 그루가 한 폭의 산수화처럼 다가온다. 가까운 산자락의 잘록한 능선 너머로는 희미하지만 장대한 산 능선이 아득히 물결을 이루어 신비감을 자아낸다.

고개를 넘자 울창한 숲 사이로 집 한 채가 언뜻 보인다. 상무주암(上無住庵)이다. 아, 이렇게 느닷없이 나타난단 말인가! 움막처럼 얼기설기 엮은 허름한 산중의 해우소 위로 예전에 보이지 않던 남녀로 구분한 신식 화장실도 보인다. 왼편에는 마대로 출입문을 만든 남자 전용 소변기도 보인다. 산중 암자의 토굴 같은 곳, 하얀 소변기가 낯설다.

암자는 입구부터 소란스러웠다. 적막 같던 예전의 풍경이 아니었다. 암자 한쪽 평평한 곳에는 앞서가던 등산객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암자 아래로 깎아지른 산비탈에 층층 펼쳐진 텃밭은 지리산 능선에 묻힌 듯 아득하다. 보살 아주머니들이 분주히 오가고, 마당에는 초파일을 앞두고 인근 함양에서 온 듯한 대여섯 명의 신자들이 노스님 주위에 서 있었다.

2008년 어느 여름날의 상무주암.
 2008년 어느 여름날의 상무주암.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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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도 되겠는지요."

제주도의 정낭처럼 굵은 나무 두 개를 걸쳐 놓은 입구에는 '사진촬영금지, 출입금지' 글씨가 선명했다.

"아, 저는 주인이 아니오. 저기 스님한테 여쭈어 보시오."

그제야 암자에서 양치질을 하며 나오는 스님과 눈길이 마주쳤다.

"들어오시오."

지리산의 은자 현기 스님이다. 스님은 이곳에서 30년 넘게 수행을 해온 선승이시다. 30여 년 동안의 은둔 수행에서 벗어나 2013년 처음으로 산문을 나와 서울 조계사에서 대중법문을 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수년 전에 뵈었을 때보다 세월이 보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다.

2008년 상무주암을 찾았을 때 지리산의 은자 현기 스님이 암자 앞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2008년 상무주암을 찾았을 때 지리산의 은자 현기 스님이 암자 앞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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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 마당에는 봄빛이 넘쳤다. 경봉 스님이 쓴 '상무주(上無住)' 현판이 선연하다. 비좁지만 햇살이 골고루 비추는 암자 마당. 각운 스님의 사리를 모신 작은 삼층석탑이 불안정하다. 탑을 살짝 돌아가니 제법 널따란 공간이 있다. 평상 하나와 빨래줄, 나무에 매단 철봉과 녹슨 아령. 수행과 휴식, 빨래를 널 수 있는 이 공간이 한없이 넓어 보인다.

이번에는 마당을 가로질러 반대편 바위에 올랐다. 법당 옆 벼랑으로는 작은 산신각이 있고, 솥을 내건 오솔길 끝에는 초입에 봤던 건물이 한 채 있다. 마당 가운데에는 차를 마시거나 좌선하기에 맞춤인 잘생긴 바위 하나가 있고 그 옆으로 평상 하나가 놓여 있다.

법당 앞 댓돌에 서서 햇빛 넘치는 암자 마당을 지그시 바라본다. 경계를 지은 듯 짓지 않은 담장 너머로 펼쳐진 연둣빛 산자락과 반야봉으로 치달리는 지리 능선을 보는 맛이 그윽하니 깊다. 모나지도 둥글지도 않은 반야봉, 번뇌와 무지를 단박에 깰 지혜의 봉우리를 바라보는 이곳이 '천하제일갑지'로 불린 이유를 알 듯하다. 향일암에서 왔다는 노스님이 문득 뜰에 서 있는 불자들에게 '무주'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암자 아래로 깎아지른 산비탈에 층층 펼쳐진 텃밭은 지리산 능선에 묻힌 듯 아득하다.
 암자 아래로 깎아지른 산비탈에 층층 펼쳐진 텃밭은 지리산 능선에 묻힌 듯 아득하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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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제일의 참선하기 좋은 곳

상무주암은 예전 무주암으로 불렸다. '무주(無住)'는 <금강경>의 '장엄정토분'에 나오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基心)'에서 따온 말로,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는 뜻이다. 달마 이후 선불교의 중흥조로 숭앙받고 있는 육조 혜능선사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일자무식의 나무꾼이었다. 어느 날 주막에서 나무를 팔고 문을 나서다 어느 객승이 외는 금강경의 이 구절을 듣고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출가하여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가게 된다.

"무주란 사람의 본성이 찰나마다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찰나마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도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한 찰나라도 얽매이게 되면 모든 찰나에 얽매이게 되니, 이것을 속박이라 한다. 모든 것에서 어떤 찰나에도 얽매이지 않으면 속박이 없으니, 그래서 무주를 근본으로 삼는다."
- <돈황본 육조단경>

상무주암이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기록도 보이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보조국사 지눌이 1198년부터 1200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1198년 봄 지눌은 몇 사람의 선려(禪侶)와 함께 가사 세 벌과 바리때 하나만 달랑 갖고 이곳 상무주암으로 들어왔다.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비명>에는 상무주암을 "경치가 그윽하고 고요함이 천하에 으뜸(甲)이니 참으로 참선하기 좋은 곳"이라고 적고 있다.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비명>에는 상무주암을 “경치가 그윽하고 고요함이 천하에 으뜸(甲)이니 참으로 참선하기 좋은 곳”이라고 적고 있다.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비명>에는 상무주암을 “경치가 그윽하고 고요함이 천하에 으뜸(甲)이니 참으로 참선하기 좋은 곳”이라고 적고 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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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지은 듯 짓지 않은 담장 너머로 펼쳐진 연둣빛 산자락과 반야봉으로 치달리는 지리 능선을 보는 맛이 그윽하니 깊다.
 경계를 지은 듯 짓지 않은 담장 너머로 펼쳐진 연둣빛 산자락과 반야봉으로 치달리는 지리 능선을 보는 맛이 그윽하니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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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년 31세였던 지눌은 대구 팔공산 거조암에서 정혜결사를 결성했다. 그런 그가 꼭 10년 만인 41세에 왜 이곳 지리산 상무주암까지 왔을까? 그 이유로 "보문사에서 지낸 이후 10여 년이 지났는데, 비록 뜻을 얻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허송한 적이 없으나 아직 정견(情見)이 사라지지 아니하여,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원수와 함께 있는 것처럼 항상 꺼림칙해서"라고 했다. 스님은 여기서 모든 바깥 인연을 끊고 오로지 선에만 몰입했다. 갈고 닦아 예리한 지혜를 발하며, 깊이깊이 잠심하여 궁극의 근원까지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혜보각선사의 어록을 보다가 "선이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반연(攀緣)에 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이나 날마다 반연에 응하는 곳이나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선하지 않아야만 홀연히 눈이 열리어서 이것이 다 집안의 일임을 알 수 있느니라"라는 구절에 이르러 뜻이 딱 들어맞아 마음에 깨달으니, 자연히 가슴이 후련해지고 곧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지리산 생활 3년을 끝낸 그는 은둔적 분위기를 벗고 대중과 함께 호흡할 곳을 찾아 나섰다. 예전의 정혜결사가 속세의 명리만을 버리려던 구도결사였다면 이제는 속세에 물들지 않고 현실과 직면하여 현실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행도결사 단계로 나아가는 계기를 이곳에서 고민하고 설계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송광사의 전신인 조계산 길상사에 자리를 잡아 정혜결사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여나갔다.

암자 한쪽에는 휴식을 할 수 있는 고즈넉한 공간이 있다.
 암자 한쪽에는 휴식을 할 수 있는 고즈넉한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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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아령...
 녹슨 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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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신이 솜씨를 아끼지 않은 암자

예부터 지리산에서 장엄하고 화려함은 화엄사가 제일이고, 맑고 깨끗함은 금대암과 벽송암이 제일이고, 기이하고 빼어남은 칠불암, 불일암, 무주암이 제일로 알려져 왔다. 이처럼 기이하고 빼어남이 으뜸인 상무주를 풍수가들은 '어린 송아지가 어미를 돌아보는 형국'이라고 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봉우리들이 병풍을 둘러친 듯, 깃발이 사방에서 나부끼는 듯한 이곳은 이미 제일의 선방 터였다. '형체를 잊고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이곳에 거처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천하제일의 참선하기 좋은 곳이 상무주암이었다.

상무주암은 또한 신성한 외경의 대상이었다. 1860년에 무주암 일대를 유람한 하달홍은 '무주암은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무주로 이름 지었으며 최고의 뜻이다. 하늘 위로 솟구친 암자를 둘러싼 봉우리는 가파르고 뾰족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외경심을 갖게 했다'고 한 뒤 '천지의 신이 이곳을 만드는 데 솜씨를 아끼지 않은 듯하다'라고 적고 있다.

1860년에 무주암 일대를 유람한 하달홍은 상무주암을 ‘천지의 신이 이곳을 만드는데 솜씨를 아끼지 않은 듯하다.’라고 했다.
 1860년에 무주암 일대를 유람한 하달홍은 상무주암을 ‘천지의 신이 이곳을 만드는데 솜씨를 아끼지 않은 듯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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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불자들이 옆 동산으로 가자 암자는 텅 비었다. 가만히 암자 마당을 거닐었다. 고요한 법당. 천왕봉의 신이 신력으로 뚫었다는 샘물이 돌구멍에서 솟아났다.

<지리산일과>에 전하는 상무주
상무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의 <지리산일과>에 전해진다. 1487년 10월 2일, 지리산을 유람하던 남효온은 의신암에 이르렀다. 서쪽 방에 있는 승려 상(像)을 보고 한 승려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는 (허풍이 심해 보이는) 승려에게서 상무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분은 의신조사인데, 이곳에 이르러 도를 닦았습니다. 도가 반쯤 닦여지자, 이 산의 천왕이 조사에게 다른 곳으로 옮겨가길 권했습니다. 그리고는 천왕은 스스로 초료새(뱁새)가 되어 길을 인도했고, 선사는 따라갔습니다. 큰 고개에 이르자 초료새가 수리새로 변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고개를 초료조재라고 부릅니다. 수리새가 또 길을 인도하여 하무주(下無住) 터에 이르렀습니다. 선사가 말하기를 "이곳에서는 며칠이면 도를 이루겠습니까?"라고 하니, 수리새가 "21일이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선사는 너무 더디다고 여겼습니다.

선사는 다시 중무주(中無住) 터에 이르렀습니다. 선사가 말하기를 "이곳에서는 며칠이면 도를 이루겠습니까?"라고 하니, 수리새가 "7일이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선사는 그것도 더디다고 여겼습니다. 수리새는 또다시 상무주(上無住) 터로 인도했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수리새가 말하기를 "이곳에서는 하루면 도를 이룰 수 있으나, 여인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선사는 그곳으로 들어가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승명을 바꾸어 무주조사라 했습니다."

여기서 하무주, 중무주, 상무주는 깨달음의 단계를 상징하는 말로 보인다.



태그:#상무주암, #지리산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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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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