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들의 항의에 제작 중단된 다큐멘터리 영화 <거위의 꿈>

유가족들의 항의에 제작 중단된 다큐멘터리 영화 <거위의 꿈> ⓒ '거위의 꿈' 추진위원회


세월호 참사를 다루겠다며 제작을 발표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거위의 꿈>이 논란 끝에 잠정 중단됐다.

지난 20일 <거위의 꿈> 제작추진위원회는 블로그를 통해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위해 추진위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며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려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드리겠다"고 밝혔다(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거위의 꿈> 추진위).

<거위의 꿈> 추진위 측은 지난 10일 영화 제작비를 국민성금으로 모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희생자 유가족대책위와 전혀 상의하지 않았음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또, 희생자가 부른 노래 제목을 영화 제목으로 사용했음에도 해당 유가족과 상의하거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들을 단 한 번도 안 만나 보고 참사의 진실을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공감"할 줄 모르면서 무언가 하려고 할 때 반드시 나타나는 오류들을 우리는 지난 석 달 동안 무수히 보아왔고 고스란히 상처로 남아있다"면서 제작 중단을 요구했다.

영화 제목으로 선정된 노래 '거위의 꿈'을 부른 희생자의 유가족 역시 "다른 방송사나 민간 제작사처럼 스스로의 자금으로 제작한다면 모를까 아이들을 빌미로 모금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22일(오늘) 대표자 회의를 열고 향후 활동계획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옳고 그르고를 떠나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이 됐다.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밝혔다. 단 "지금 같은 형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모금 형태를 취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거위의 꿈> 임종태 감독, 다큐계에서도 '생소'

<거위의 꿈>에 대한 논란은 지난 10일 유명 사회운동가 인사들이 참여한 추진위원회가 영화 제작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세월호 사고 직후부터 안산과 진도의 주요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국내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하나같이 "<거위의 꿈>을 제작한다는 임종태 감독(라퓨타 필름 대표)을 현장에서 본 적이 없다"면서 의문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었다.

특히 제작비 4억을 목표로 한 모금액은 다큐멘터리에 있어 상당히 큰 액수라는 점에서 논란을 부추겼다.

최근 대표적으로 흥행한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은 2년 제작 기간 동안 1억을 웃도는 정도의 제작비가 들었다. 배급 비용은 온라인 펀딩으로 3천만 원을 모아 해결했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한 편의 제작비가 1~2억 원 안팎인 점을 감안할 때 제작비 4억은 대작에 속한다.

어떻게 해서 4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나왔을까. <거위의 꿈> 영화 기획안과 임종태 감독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임 감독은 세월호 참사 원인으로 잠수함이나 스텔스 기능을 갖춘 군함과의 충돌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를 확실히 분별할 수 있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참여 인원의 체류비와 인양 인력 비용을 제외하고 필요한 장비와 인력이 하루에 8백만 원 가량 필요하다는 것.

또, 그 작업에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 1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경우 필요한 장비와 인력에만 1주일에 대략 6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봤다. 이후 이를 인양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1주 정도의 기간 동안 인양 인력 비용으로 3천만~4천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밝혔다. 감독은 이미 세월호 3D 모델링 작업에도 1천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들어갔다고 밝혔다.

"스스로 자금 마련하면 모를까 아이들 빌미로 한 모금 원치 않아"

임 감독은 자신의 경력과 관련해서는 3편의 방송 다큐에 기획 프로그래머와 공동 제작으로 참여했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일부 방송계 인사들은 의문스럽다는 반응이다. 한 방송사 피디는 SNS에 올린 글을 통해 "그 사람이 직접 연출자로 올라있는 작품은 한 편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방송계에서 '공동 제작'이라는 말은 함부로 쓰지 못한다"며 "코프로듀싱을 하거나 제작비를 일부 대거나 등등 막중한 롤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제작 참여'와 '공동 제작'은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임 감독이 공동 제작으로 참여했다는 한 다큐에는 연출이나 제작이 아닌 '글/구성'으로 이름이 올라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임종태 감독은 "당시 방송사 직원이 아니어서 연출자로 올라 있지 않은 것이지만, 작품의 실질적인 제작은 연출자 대신 내가 도맡아 했다"며 "두 작품 모두 당사자들의 요청을 받아 공동 작업한 작품들로 당시 제작에 참여한 당사자들에게 문의하면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임 감독은 또한 유가족과 조도 등을 함께 다녔고 다큐에 관한 협의를 했었다며 유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이어 "펀딩은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닌 추진위원회에서 하는 것이고, 지신은 그저 추진위로부터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을 의뢰 받은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대략 4천만 원 정도의 사비를 들여 작업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감독이 영화 협의를 했다고 밝힌 해당 유가족은 "좋은 의도라 생각해 초반에는 참여했지만 감독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며 "그 문제에 일절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얼마 전 감독이 오랜만에 전화를 해 '유가족대책위 쪽 인사들을 소개 시켜 달라'고 부탁했지만 직접 알아 보라고만 했다"면서 "잠시 참여했을 뿐 현재는 그 다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임 감독은 자신에게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 "사회 명망가들이 후원하면서 자체 검증이 있었다는 생각은 안 하냐"는 입장을 보였다. 김세균 교수는 "감독을 잘 아는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존 다큐와는 다른 새로운 다큐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김 교수는 "임 감독이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자기 혼자 진도도 가고 자료도 많이 찾고 준비를 했다. 그가 낸 기획안을 검토했고 저 정도면 다큐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밝혔다. "다큐계에서 얼마나 인지도가 있느냐 하는 것은 고려할 점이 아니었다"고도 덧붙였다.

유가족이나 진도 등에 대한 취재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분들(진도에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낼 수 있는 작품과 우리가 낼 수 있는 거는 다르다. 물론 그 분들의 활동도 소중하지만 우리는 진실 규명에 좀 더 초점을 뒀다. 다큐의 성격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사고 원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열어 놓고 있다. 다큐를 만드는 과정에서 결론짓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추진위원회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다른 인사는 "난 감독에 대해 잘 모른다, 어떤 교수님의 제안으로 이름만 올렸을 뿐 감독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면서 "주변에서 우려를 전해 와 추진위에서 빠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거위의 꿈> 논란과 관련해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양기환 이사장은 "현장에서 열심히 찍고 있는 다큐 감독들이 있는 상황에서 명망가들이 너무 서둘러서 나선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유가족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부분 역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를 제작했던 한 영화관계자는 "기획안이 <천안함 프로젝트>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면서 세월호와 관련된 다큐가 내년부터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인데, 이런 논란으로 괜한 악영향이 있을까 우려된다, 국민펀딩을 통한 제작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위의 꿈 세월호 임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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