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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대표작이다. 국내 창작 그림책으로는 최초로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른 유명한 책이다. <강아지똥> 이야기의 주인공은 '똥'이다. 돌이네 강아지 '흰둥이'가 골목길에 눈, 소달구지 바퀴에서 떨어져 나온 흙덩이가 똥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똥이라며 놀리는 개똥이다. 누구나 더럽다며 손가락질하는, 세상에서 버림 받은 존재이다.

<강아지똥>을 처음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동화의 주인공은 으레 멋지고 아름다운 왕자와 공주가 아니던가. 영웅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지혜와 용기로 난관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동화의 일반적인 줄거리 아닌가. 그런 동화에 더러운 똥이 주인공으로 나오다니 참 낯설었다.

하지만 <강아지똥>을 읽고 나서 느낀 감동은 그 낯섦만큼이나 컸다. 조그만 강아지똥 한 덩이가 생명을 피워내면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는 똥에 대한 생각을 새삼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정말 똥은 더럽고 하찮은가.

똥이 원래부터 더럽고 하찮은 것으로 대접받은 건 아니었다. 시인 김지하는 '흙'이 화자로 등장하는 <똥>이라는 시에서 "똥 보면 베먹고 싶어"라고 노래했다. "오곡이 장차 가득가득히 익어 끝내는 / 열매 열리게 될 터이어설 게"이기 때문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똥을 더러워했지만, 그 똥은 흙에게는 귀한 밥이 되어 사람들의 밥이 될 곡식을 자라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뒷간에 돼지 한 마리를 키웠다. 새끼 돼지를 키워 내다팔아 가계에 보태자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밥을 먹는다 → 똥을 눈다 → 내 똥의 일부는 우리 집 돼지가 간식거리(?)가 된다 → 내 똥으로 배가 불러진 돼지가 똥을 눈다 → 내 똥의 남은 일부와 돼지가 눈 똥은 뒷간 바닥에 깔린 볏짚과 풀의 힘으로 발효되어 영양 덩어리 거름이 된다 → 거름을 두엄더미로 쌓아 두었다가 농사 때에 맞춰 논과 밭으로 옮겨 뿌린다 → 엑기스 두엄으로 힘을 받은 곡식과 채소, 열매들이 쑥쑥 자란다 → 그것들을 먹는다 → 똥을 눈다 → ···

우리 식구들이 누는 똥과 돼지 똥은 두루 철저하게 재활용(?)되었다. 그 리사이클 시스템은 겉으로 보기에 더럽고 원시적지만 놀랍도록 친환경적이었다. '똥→흙→곡식과 채소→밥→똥→흙→곡식과 채소→밥→···'의 무한순환 속에서 똥이 버려지는 일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똥=밥'이라는 등식이 비유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평생 농군으로 살다 가신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똥과 거름을 귀하게 다루셨다. 노란 장다리꽃 피어나는 볕 좋은 봄날이면 겨우내 묵은 돼지막 거름을 마당으로 냈다. 그것은 이른 봄 애벌갈이와 함께 한 해 농사 준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일들 중의 하나였다. 그 일을 할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나와 동생을 부르셨다. 동생은, 아버지와 내가 뒷간 거름을 내는 동안 돼지가 마당에서 얌전히 놀도록 돌보는 일을 맡았다. 그것은 일이라기보다 손에 대작대기 들고 다니며 돼지와 함께 노는 술래잡기였다.

나에게는 굵은 삼지창 쇠스랑이 쥐어졌다. 나는 그것으로 뒷간 바닥에 깔린 볏짚과 풀을 쑤시고 뒤집었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삼지창으로 들어올린 뒤 마당 한켠으로 내와 둥글게 두엄더미를 만들었다. 대개 볏짚과 풀은 인분과 돼지똥이 뒤섞인 채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맨 처음에는 역한 냄새 때문에 코를 싸쥐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을 할수록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지곤 했다. 볏짚과 풀의 발효 작용 때문이었다.

돼지막을 치우고 나면 바닥에 깨끗한 새 볏짚을 푹신하게 깔아 주었다. 새로 단장한 집에 들어간 돼지는 활개를 치며 뛰어다녔다. 돼지는 자는 곳과 노는 곳, 오줌을 누고 똥 싸는 곳을 철저하게 가리는 교양 있는(!) 동물이다. 새로 깐 볏짚이 주는 청신함을 돼지는 그렇게 즐긴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집안의 뒷간 거름만 귀애하신 게 아니었다. 길을 오가다 쇠똥이나 개똥이 있으면 싸리 발채를 얹어 놓은 바지게에 일일이 담으셨다. 아버지 바지게에 담겨 온 똥덩이들은 마당 한켠에 웅장하게 만들어 놓은 두엄더미에 던져졌다. 아버지께서는 <강아지똥>에서 길에 떨어진 흙덩이가 자신의 밭 흙인 줄을 금방 알아보고 주워 담는 소 달구지 아저씨와 같았다.

뒷간 거름을 내다 보면 썩은 똥 짚이 실수로 손에 묻는 일이 예사로 일어났다. 처음에는 더럽다는 생각에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똥거름 덕분에 땅이 기름지게 되고 곡식이 쑥쑥 자라지 않는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더러움을 떨쳐내려는 듯 더욱 바지런히 손발을 놀렸다. 그렇게 땀을 흘리며 일을 하다 보니 똥이 더럽다는 마음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준 500원 짜리 지폐에 묻어있던 사랑

똥에 얽힌 특별한 추억 몇 가지도 똥을 관대하게(?) 바라보는 내 태도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몇 년째 치매를 앓으시던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으로 오셨다. 어머니로부터 수발을 받으면서 말년을 맞기 위해서였다.

외할머니의 치매는 중증은 아니셨다. 하지만 병세가 심각해질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곤 하셨다. 요강에 눈 대변을 밥이라며 밥 그릇에 담아 놓으실 때가 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우리 식구에게 치매 행동에 관한 관용구처럼 쓰이는 '벽에 똥칠'하는 상황도 보여주셨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소풍 가는 날이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정신이 온전해 보이셨다. 그런 외할머니 모습을 보니 그냥 기분이 좋았다.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외할머니께 "소풍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외할머니께서는 자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그러고는 골마리(허리춤) 속에 감추어 둔 헝겊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네셨다. 시커멓게 마른 똥딱지가 두어 개 덕지덕지 붙어 있는 500원짜리 지폐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외할머니께서는 그 이듬해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의 똥 묻은 돈은 내게 치사랑의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외할머니께서는 끝 모를 망각 속에서도 손자 사랑하는 마음만은 결코 잃지 않으셨다. 그런 외할머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가끔 어머니를 대신해 할머니의 똥 묻은 밥 주발을 깨끗하게 씻어 드리기도 했다.

똥은 내리사랑의 애틋함도 알게 해주었다. 나는 원래 갓난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넷이나 되는 누나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조카들을 여럿 경험했으면서도 아기 예쁜 줄을 잘 느끼지 못했다. 아무 때나 빽빽거리며 울어대고, 기저귀에 더러운 똥과 오줌을 내놓는 아기들은 내게 성가시기만 한 존재였다.

그런 내 태도가 바뀐 것은 큰딸이 태어나면서부터였다. 나는 지금도 초등학교 4학년생인 큰딸을 '똥순'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때가 많다. '똥순'은, 큰딸이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예쁜(!) 똥을 잘 싼다고 내가 직접 지어 부른 별명이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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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은 내게 낯설고 신기한 경험을 두루 안겨주었다. 배내똥으로, 갓난아기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애틋함을 느끼게 해 준 것도 그중 하나였다. 큰딸이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은 배내똥은 사랑스러웠다. 조그만 참새 똥만한 크기의 그것은 앙증맞아 보였다. 그것에서는 시큼하면서도 달큼한 향이 났다. 이른 봄 개나리 같은 그 샛노란 색깔은 어쩜 그리도 싱싱해 보였을까. 똥도 아름답고 예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강아지똥은 민들레 싹과 하나가 되어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그것은 눈물겨운 사랑이나 희생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내가 건사한 똥들은 훗날 우리 식구의 밥이 돼주었다. 그 더러움으로 사람 살리는 일을 했으니 성인이 따로 없다. 외할머니와 큰딸의 똥은 어떤가. 그 똥들이 없었다면 나는 가족의 사랑이니 부모로서의 애틋함이니 하는 귀한 감정을 경험하지 못했으리라.

그토록 귀한 똥이 이제는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돼버렸다. 언젠가 한 지인으로부터 요새 사람들이 누는 똥은 썩지도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럴 듯한 근거도 댔다. 가공식품에 첨가되는 각종 화학 첨가물들이 똥과 함께 배출되면서 똥의 분해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농담처럼 한 말이었으나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똥은 원래 우리 생명을 살리는 존재였다. 그런 똥이 이제는 산업 폐기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이런 세상에서 그 어떤 생명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똥과 같이 더러운 것에서 덕을 찾으려던 옛사람의 지혜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다.

저 엄행수가 똥을 지고 거름을 메어다가 그걸 업으로 사는 것이 지극히 깨끗지 못하다고 보겠지만 생활은 지극히 향기롭고, 몸을 굴리는 것이 지극히 더럽다고 보겠지만 의리를 지키는 점은 지극히 높은 것일세. ··· 이로 본다면 깨끗한 가운데도 깨끗지 못한 것이 있고 더러운 가운데도 더럽지 않은 것이 있단 말일세. ··· 대체 선비가 좀 궁하다고 해서 궁기를 떨어도 수치스러운 노릇이요, 출세한 다음 제 몸만 받들기에 급급해도 수치스러운 노릇일세. 아마 엄행수를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거의 드물 것일세.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엄행수를 선생으로 모시려고 하고 있단 말일세. 어떻게 감히 벗으로 사귀겠다고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엄행수를 감히 이름으로 부르지 못하고 예덕 선생이라고 일컫는 말일세. - 연암 박지원의 <예덕 선생전> 중에서;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보리) 70~71쪽에서 재인용함.

똥 냄새 풀풀 나면서도 생활이 향기로운 '엄행수'를 우리 시대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깨끗해 보이지만 뒤를 캐보면 온갖 구린 냄새를 다 풍기는 이들이 세상 권세를 모조리 휘어잡은 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구린 과거를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린다. '더러움의 덕[예덕(穢德)]'을 찾으며 살아가려 했던 연암 선생이 우리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공모' 더러운 이야기' 응모글입니다.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똥, #<강아지똥>, #권정생, #<예덕 선생전>,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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